
법무법인(로펌) 율촌 조세그룹은 ‘역전의 명수’로 불린다. 이런 명성답게 율촌 조세그룹은 지난해 1월 수천억원의 부가가치세 소송에 휘말린 KT를 구해내며 한 해를 열었다. 국세청은 1심부터 이례적으로 국내 최대 로펌 김앤장을 앞세웠지만 ‘재판 불패’의 신화 김앤장의 자존심은 율촌의 벽 앞에서 무너졌다.
기업이 세무당국과 대립각을 세워봤자 좋을 것은 없지만 KT는 통신 보조금이 에누리인지 여부를 놓고 세무당국과 한판 승부를 벌였다. KT와 인연이 깊은 태평양이 1심을 맡아 승소했지만 2심에선 패소했다. 궁지에 몰린 KT는 3심에서 율촌을 구원투수로 투입했다. KT의 선택은 옳았다.
율촌 조세그룹은 지난해 마지막 소송에서도 승전보를 전했다. 지난해 12월 15일 율촌은 한국가스공사를 대리한 820억원대 관세 등 부과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승소했다. 1, 2심에서 김앤장을 대리인으로 세웠으나 패소한 한국가스공사가 3심에서 율촌을 기용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법조계에선 ‘조세 소송=율촌’이라는 공식이 통한다. 율촌은 태생부터 조세 소송에서 강했다. 1992년 김앤장을 나와 개인 사무소를 차린 우창록(64·사법연수원 6기) 대표변호사를 비롯해 윤세리(64·10기), 강희철(59·11기), 정영철(62·13기), 한봉희(59·16기), 한만수(59·13기) 변호사가 1997년 뜻을 모아 ‘법률가의 마을’이란 의미의 율촌을 세웠다.
당시는 기업의 조세 소송이 많지 않았던 시기였지만 우창록, 윤세리, 한만수 변호사는 조세 분야에서 명성을 얻고 있었다. 우창록 변호사는 현대그룹의 1300억원대 세무 소송에서 승소를 이끌어 주목받았고, 검사 출신인 윤세리 변호사는 미국 로펌 ‘베이커&맥킨지’에서 1986년부터 3년간 국제투자와 조세업무를 맡으면서 국제 조세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이들의 이름만으로 조세 소송은 율촌에 몰렸다.
소순무(66·10기), 강석훈(54·19기) 등 대법원 재판연구관실 조세팀장들이 연이어 합류하면서 율촌은 조세 분야의 강자 타이틀을 얻게 됐다. 1993~97년 대법원 재판연구실 조세팀장을 지낸 소 변호사는 다른 보직을 맡게 되자 조세 소송을 더 하고 싶다는 생각에 법복을 벗고 율촌에 둥지를 틀었다. 강 변호사는 2003~2005년 대법원 재판연구관실 조세팀장을 맡았다. 지난해에는 2011~2015년 대법원 조세팀장을 지낸 조윤희(50·25기) 변호사도 율촌에 합류했다.
이로써 소 변호사(1990년대), 강 변호사(2000년대), 조 변호사(2010년대) 등 30년에 걸쳐 대법원 논리를 꿰뚫어 볼 수 있는 드림팀이 완성됐다. 유독 율촌 조세그룹이 다른 대형로펌에서 진 사건을 대법원에서 뒤집는 역전승을 많이 거둔 배경에는 이들이 있었다.
관세사, 세무사, 회계사 등의 비법조 전문가들도 율촌 조세그룹의 보배다. 관세청에서 30여년 근무한 관세청 차장 출신의 박상태 고문과 국제 조세 분야의 권위자로 인정받는 이경근 세무사 등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박 고문은 관세와 통상 분야의 기업 자문과 소송에 폭넓게 관여하고 있다. 이경근 세무사는 율촌의 조세 사건 승소에서 숨은 공로자로 평가받는다.
특히 GE 계열의 한국 자회사가 미국 모회사에 지급한 배당소득 원천징수와 관련한 한․미 상호합의(2012년), 조세심판원을 상대로 LG전자와 LG화학이 제기한 지급보증수수료 과세 불복 소송, 한국 루이뷔통 이전가격 과세조정 결과에 대한 조세심판원 불복 사건(2009~2012), SK종합화학 관련 한․중 APA(Advance Pricing Agreement) 자문 및 대리(2010~2012), 삼성중공업과 LG전자의 인도조세소송에 대한 자문(2011) 등에서 이들의 활약상은 두드러졌다.
77명으로 구성된 율촌 조세그룹
율촌 조세그룹은 관세팀, 국내조세자문팀, 국제조세팀, 조세진단팀, 조세형사팀, 조세쟁송팀, 세제팀 등 77명으로 구성됐다. 변호사 30명, 외국변호사 5명, 공인회계사 13명, 세무사 16명, 관세사 7명이다. 비법조인의 비중이 절반을 넘는다.
율촌 조세그룹의 또 다른 경쟁력으로는 소송 자료 전산화와 협업 등 시스템을 꼽는다. 2000년대만 해도 산더미 같은 ‘서류’와 이를 검토하기 위해 손가락에 끼는 ‘골무’로 대변되는 법조계에선 소송 자료 전산화는 먼 미래의 일로 치부됐다.
그러나 율촌은 2005년부터 일찌감치 조세 소송 자료 전산화 작업에 나섰다. 그 결과 현재는 인트라넷에서 1000만건 이상(10TB)의 자료를 검색할 수 있다.
율촌의 전산 시스템에는 단순히 판결문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객의 의뢰서와 자문 과정, 승소와 패소의 이유 등이 담겨 있다. 새로 영입된 변호사라 해도 이 시스템을 이용해 선배들의 땀과 눈물을 확인할 수 있다.
율촌 조세그룹은 협업을 중시한다. 매주 금요일 저녁 ‘프라이데이 나이트 피버(Friday night fever)’라고 불리는 모임에서 식사와 함께 조세 분야 정보와 아이디어를 공유한다. 매주 수요일 조세그룹 팀미팅에선 조세 이슈를 점검한다. 해결책을 찾기 어려울 때는 전산 공유 시스템에 자료를 올리고 어느 부분에서 막히는지 공지를 하면 비슷한 경험이 있는 선후배, 동료가 의견을 준다.
율촌에서 협업이 원활한 배경에는 합리적인 수익배분 구조가 자리한다. 다른 대형로펌에선 보통 전문성보다는 소송 사건을 따낸 파트너 변호사를 중심으로 사건이 배당된다. 율촌은 다르다. 해당 사건에 가장 전문성이 있는 변호사가 소송을 주도한다. 또 사건을 수임한 공보다 사건을 처리한 공을 더 쳐준다. 한 개인보다는 율촌 조세그룹 브랜드를 보고 사건을 맡겼다는 공감대가 있다.
우창록 대표변호사가 이런 분위기를 조성했다. 그는 자신을 믿고 맡긴 사건이 대부분이었던 설립 초창기부터 이를 자신의 몫으로 돌리지 않고 ‘율촌을 보고 온 사건’이라며 공동의 성과로 배분했다.
법조계에선 율촌 조세그룹이 역전승의 명수답게 전문성과 시스템을 구축했지만 1심부터 사건을 수임할 수 있는 영업력도 함께 갖춰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또 국내 법조시장 개방에 따른 영미 로펌의 공략 강화, 다른 로펌보다 일찍 진출한 베트남 법무시장을 둘러싼 국내 로펌 간 경쟁 심화 등도 해결 과제로 거론된다.

율촌 조세그룹 인력
변호사, 검사·법관 출신, 조세 전문가로 드림팀 구성
율촌 조세그룹 인력은 크게 세 가지 축으로 이뤄졌다. 대표변호사인 우창록 변호사를 필두로 한 순수 변호사 출신 그룹, 검사 출신인 윤세리 대표변호사와 소순무·강석훈·조윤희 변호사로 이어지는 법관 출신 변호사 등 전관(前官) 그룹, 장재형(48) 세제팀장(세무사), 정운상(60) 관세팀장(관세사) 등으로 구성된 비법조 전문가 그룹이다. 변호사들은 모두 서울대 법학과 선후배 사이다.
율촌 대표변호사는 우창록·윤세리·윤용섭(62) 3인이다. 이 중 우·윤 대표변호사가 조세그룹에서 활동하고 있다. 우 대표변호사는 사법연수원 6기로 경주 문화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으며 미국 워싱턴대 대학원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1979년 김앤장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그는 1992년 개인 법률사무소인 우창록 법률사무소를 세우고 독립했다. 우 대표변호사는 1997년 율촌 설립 때부터 대표변호사를 맡고 있다. 사법연수원 동기로는 국민의당 박주선 국회 부의장, 2014년 퇴임한 양창수(65) 전 대법관, 정계성(66) 김앤장 대표변호사, 이주흥(65) 화우 대표변호사, 이태운(69) 원 대표변호사 등이 있다.
대표변호사 2명이 조세그룹 활동
경상북도 안동 출생인 윤 대표변호사는 검사 출신으로 국제 조세 전문가다. 그는 대구 경북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부산지방검찰청에서 검사로 법조인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임용된 지 1년 만에 안정적인 검사자리를 박차고 나와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에서 법학석사, 캘리포니아대 해스팅스 로스쿨에서 법학박사를 받고 미국 로펌 ‘베이커&맥킨지’에서 일하면서 국제 조세 업무를 배웠다. 1989년 귀국해 우방종합법무법인에서 일한 뒤 1997년 우 대표변호사와 함께 율촌을 세웠다.
1993년 우 대표변호사 개인사무실 시절부터 조세 소송을 맡아온 김동수(54) 변호사도 율촌을 대표하는 조세 전문 변호사다. 김 변호사는 강석훈 변호사와 함께 조세그룹 공동 그룹장을 맡고 있다. 김 변호사는 서울 휘문고와 서울대 법학과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1986년 사법시험 28회에 합격한 뒤 군법무관 시절 우 대표변호사의 소개로 김앤장에 합류하기로 했다가 우 대표변호사가 독립하자 그를 따랐다.
2002년 소 변호사가 율촌에 합류하면서 법관 출신 변호사들이 활약하기 시작했다. 우 대표변호사는 당시 소 변호사에게 조세그룹을 맡겼다. 소 변호사는 2006년 중복세무조사에 의한 과세가 위법하다는 대법원 판결을 최초로 이끄는 등 조세 소송 분야에서 명성을 얻었다. 그는 전북 전주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고 서울대 법과대학원 법학석사를 취득했다.
조세그룹 공동 그룹장인 강 변호사는 대구 대륜고와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조지타운대 로스쿨에서 법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1990년 서울남부지법 판사를 시작해 2007년까지 서울고등법원, 대법원 등에서 판사로 재직했다. 지난해 율촌에 합류한 조 변호사는 소 변호사와 강 변호사에 이어 대법원 재판연구관실 조세팀장 출신이다. 조 변호사는 광주 광덕고를 나왔고 역시 서울대 법대 출신이다.
이론·실무 겸비한 전문가 두루 영입
세제팀장을 맡고 있는 장 세무사는 행정고시 35회 출신으로 1995년부터 2011년까지 기획재정부 세제실에 근무했다. 그는 서울 휘문고,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했고 미국 뉴욕대 회계학 석사, 고려대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는 한국 세무사와 미국 공인회계사 자격을 보유하고 있으며 법인세, 국제조세 분야의 이론과 실무에 정통하다.
관세청 등에서 근무하면서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정 관세팀장(관세사)은 관세심사사건, 관세형사사건, 관세통상 컨설팅 등을 담당하고 있다. 정 관세사는 관세청과 서울세관, 부산세관, 인천세관, 인천공항세관 등 일선 세관에서 근무했다. 정 관세사는 서울 경동고, 성균관대 영문학과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 대학원 행정학 석사, 경희대 대학원 경영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6년 율촌에 합류했다.
관세청에서 30여년 근무한 관세청 차장 출신 박상태(66) 고문은 행정고시 13회 출신으로 이론과 실무에 정통한 관세전문가로 손꼽힌다. 박 고문은 경북 김천고, 한양대 법학과를 졸업했고 성균관대 행정경영대학원 행정학 석사, 태국 방콕대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건국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그는 2014년 율촌에 합류했다.
interview 김동수 조세그룹 공동 그룹장
“과거 자료 유형별로 분류해 전산화… 비용 줄고 승소 기반될 것”

김동수 율촌 조세그룹 공동 그룹장은 “율촌이 보유한 방대한 자료를 전산화해 기업에 합리적인 가격에 상시적인 세무컨설팅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김 변호사는 “병원에서도 교수가 진료하면 특진비가 붙듯 경험이 많은 변호사가 자문이나 소송을 담당하면 가격이 높아진다”며 “율촌이 진행 중인 전산화 작업은 20년 차 대학병원 교수에게 받을 수 있는 진료를 일반 의사에게 내는 비용으로 가능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율촌이 진행 중인 과거 소송 자료 관련 전산화 작업은 단순히 종이 서류를 전자화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변호사들을 투입해 유형별로 분류하고 율촌이 그동안 새로운 주장을 내세워 승소한 사건의 과정 등 비법이 담긴다.
이러한 세세한 작업 때문에 율촌 조세그룹의 전산화 작업은 10년 넘게 걸리고 있다. 김 변호사는 “2005년 시작해 2015년 율촌 법인 차원의 전산화 시스템은 만들었지만 조세그룹의 경우 자료가 방대해 시간이 더 필요하다”며 “창립 20주년인 2017년 작업을 끝내는 게 목표”라고 했다.
김 변호사는 “변호사 초년시절 1년에 200건 넘는 소송 사건을 맡았다”며 “데이터베이스가 없을 때는 우왕좌왕했지만 유형별로 판례를 정리했더니 3000건의 유형에서 벗어나는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전산화 작업을 마치면 기존 법률서비스의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것은 물론 율촌 내 리서치 조직인 ‘미래와 법 연구소’와 협업을 통해 새로운 시장을 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율촌이 보유한 자료를 토대로 과거에 조세당국이 새로운 조세법안을 도입하면서 어떻게 조치했고 관련 소송은 무엇이었는지를 연구해 기업과 공공기관에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 기법을 제공한다는 구상이다.
김 변호사는 “법률시장은 소송이 생겨야 로펌을 찾는 구조이기 때문에 통상 레드오션이라고 생각한다”며 “하지만 율촌은 고객이 찾기 전에 찾아가는 서비스를 도입해 블루오션을 개척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김 변호사는 1993년 우창록 법률사무소에서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율촌 조세 분야의 산증인 중 한 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