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설립 329주년을 맞는 ‘로이즈 오브 런던(Lloyd̛s of London)’은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보험사다. 로이즈는 ‘자동차보험’을 처음 개발한 보험사로 서구 유럽에선 한때 보험과 동의어로 불렸다. 로이즈는 단순히 역사만 오래된 보험사가 아니다. 2015년 기준 미국 다우존스 상장사의 97%, 영국 FTSE100 상장사의 94%가 로이즈 보험에 가입했다. 

오랜 역사의 거대 보험사인 로이즈의 전신(前身)은 런던 템스 강변의 작은 커피숍이었다. 당시 카페는 사업가, 금융가, 선장, 정치가, 의사 등 각계 인사들이 모이는 런던 사교 생활의 중심지였다. 로이즈 카페는 늘 많은 손님으로 북적였다. 주인인 에드워드가 화물선의 출발 시각이나 도착 날짜, 바다의 날씨와 만조 시각, 해적이 출몰하는 지역 등 중요한 해상 무역 정보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해상정보 중개인 역할을 하던 에드워드는 변수가 많은 뱃사람에 대한 위험 보장의 필요성을 느꼈고, 선원의 사고를 보상해주겠다는 손님과 선원을 연결해주기 시작했다. 이것이 영국 해상보험의 시초다.

위클리비즈가 로이즈의 최고경영자(CEO) 잉가 빌(Beale) 대표를 서울 소공동 조선호텔에서 만났다. GE 보험 계열사와 취리히 보험 등에서 보험 업무를 30년간 해 온 빌은 로이즈 창사 325년 만에 나온 최초 여성 CEO다. 빌 대표는 로이즈 장수 성공 비결에 대해 ‘신속한 보험금 지급으로 쌓은 신뢰’를 꼽았다. 로이즈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빠르게 보험금을 지불하는 것으로 명성이 자자하다. 1912년 타이태닉호 침몰 당시 천문학적인 보상금(140만파운드)을 24시간 안에 바로 지급했을 정도다. 로이즈는 독특한 기업 구조로도 유명하다. 300년 전 상인 협동조합이 발전한 형태의 특이한 구조로 지금까지 명맥을 이어왔다.


300년 넘게 보험 시장을 주도해 왔다. 어떻게 가능했나.
“로이즈는 하나의 기업이 아닌 여러 개별 보험 업자와 보험 중개사들이 모인 ‘시장’ 혹은 ‘조합’이라는 점이 다른 일반 보험사들과 다르다. 일반 회사와 비교해 다양한 시각을 가지고 있고 새로운 리스크를 분석하는 면에서 탁월하다. 로이즈에서 활동하는 개인 보험 업자들은 각자가 특정한 보험 부문에 주력해온 전문가들이다. 일반 보험사는 회사 아래에 전문가를 직접 고용하거나 다른 기관과 협력 체계를 구축하지만, 로이즈는 보험 업자끼리 동등한 위치에서 서로 협력하고 경쟁한다. 하나의 회사가 아니라 각계 전문가로 구성돼 있는 시장이기 때문에 해보지 않은 다양한 사업에 대한 언더라이팅(underwriting·보험 인수)이 가능하다.”

하지만 회원사 각각의 능력이 다른데 문제가 되지 않나.
“로이즈는 개인 보험 업자에 대해서 엄격한 재력 심사를 거친다. 회원사 가운데 지급 불능 사태가 발생한 사례는 단 한번도 없다. 현재 작은 전문 기업부터 대규모 다국적 기업까지 100개 이상의 보험중개회사가 로이즈의 보험중개인으로 등록돼 있다. 로이즈는 회원 자격을 획득하고자 하는 지원자들에게 엄격한 자산 테스트를 매년 시행하고, 각 신디케이트의 지급 능력도 감사한다. 이 감사 요구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기존 회원사도 예탁금을 인상하고 보험 인수를 중단한다.”

로이즈는 거액의 보험금도 곧바로 지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 경우 리스크는 커지지 않나.
“보험금을 빨리 지급할 수 있는 비결은 각 분야에 정통한 전문가들이 있어 사고를 파악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보험 사업에서 보험 업자의 신뢰를 좌우하는 것은 보험금 지급 능력과 보험금 지급과 관련된 의사 결정이다. 보험사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보험금 지급을 거절하거나 축소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로이즈는 ‘합당한 보험금 청구는 결코 거절하지 않는다’는 오랜 전통을 지켜왔다.”

로이즈는 회사 자체가 보험의 역사라 할 정도로 시장을 주도하는 상품들을 내놓았다.
“로이즈가 처음으로 자동차 보험을 내놓았을 때만 해도 ‘자동차’라는 용어가 없어 ‘바퀴가 달린 선박(vessel on wheel)’이라고 지칭했을 정도다.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기술의 리스크를 파악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산업군이 형성돼 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다렸다가는 업계를 선점하긴 늦었다고 본다. 앞으로 산업을 주도할 분야가 무엇인지, 그곳에 어떤 위험이 있고, 어떤 보험을 만들 수 있을지 등을 미리 앞서 내다보고 남들보다 빠르게 진출해야 한다. 로이즈가 명성을 이어올 수 있었던 건 300년 동안 많은 산업 지형의 변화를 거치면서, 새로운 보험 수요를 예측하는 노하우가 생겼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어떤 보험 상품이 새로 나올까.
“과거에 신체, 집, 자동차 등 물리적인 재산 손실에 보험이 집중됐다면, 앞으로는 사이버 공격, 개인 정보 유출 등 눈에 보이지 않지만 큰 자산 손실로 이어지는 사고가 보험 산업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테러와 주식시장 붕괴 같은 경제적, 인적 재난의 중요성도 커지고 있다. 미래의 리스크가 어느 산업에 집중될지 예측할 수 있어야, 우리도 그에 맞는 보험 상품을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특이한 보험 상품이 많은데, 어디서 아이디어를 얻나. 미국의 한 미식축구 선수는 트레이드마크인 긴 곱슬머리에 12억원짜리 보험을 들기도 했다.
“상품 아이디어를 위해서 브레인스토밍이 중요한데, 대부분의 일차적인 아이디어는 각 도시에서 영업하는 브로커들이 제안한다. 상위 경영진보다 직접 고객을 상대하는 그들이 시장 상황에 대해 너무나 잘 알 것이기 때문이다. 경영진은 이들 의견을 가감 없이 듣고 대부분의 제안을 실제로 상품화한다. 자동차, 인공위성 등 신기술이 나올 때마다 항상 로이즈가 가장 먼저 보험 인수를 할 수 있었던 건 새로운 산업을 개척하려는 브로커들 덕분이다.”

300년 전통의 회사를 이끌고 있다. 특별하게 전통을 중시하는 부분이 있나?
“상품과 사업 방향 면에서는 혁신을 추구하지만, 단체의 정체성이라고 할 수 있는 전통의 가치는 지켜나가야 한다. 로이즈가 300년 이상 세계 보험 시장에서 주도적 역할을 해 올 수 있었던 건 전통을 중시하는 영국 국민의 자부심이 부여된 강력한 브랜드 파워가 생겼기 때문이다. 로이즈 본사에는 ‘로스 북(loss book)’이라는 책이 있다. 주요한 대형 사고를 기재하는 책인데, 여전히 백조의 깃털로 만든 펜을 든 17세기 영국식 복장의 직원이 손수 기재하는 등 전통적인 방식을 고수한다.”


▒ 잉가 빌 Inga Beale
로이즈오브런던 CEO, GE보험솔루션 유럽담당 CEO, 스위스콘베리움 CE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