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리 특파원 시절, 여름휴가로 체코 프라하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다. 한국서는 ‘프라하의 연인’이라는 드라마가 방영돼 그전까지 멀게만 느끼던 동유럽으로 패키지여행을 가는 것이 막 인기를 얻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이국적 풍경이라 그런지 국내 인터넷 후기에는 프라하 여행에 대한 찬사가 넘쳐났다. 파리에서 건너간 나로서는 도무지 그런 감흥을 느낄 수가 없었다. 비슷비슷한 유럽식 건물은 질리도록 본 터라 그림엽서처럼 찍히는 사진 몇 장만으로 마음이 들뜰 상황은 아니었다. 오히려 작은 도심에 어딜 가나 관광객이 북적이니 여행의 즐거움보다는 짜증이 앞설 때가 많았다. 프라하의 상징이라는 600년 된 카를교(橋)도 관광객과 상인들로 꽉 차 발걸음 옮길 때마다 어깨가 부딪힐 정도였다. 서서 지그시 강변을 바라볼 수조차 없었다. 프라하의 운취에 심취할 시간적, 공간적 여유가 허용되질 않았다. 그렇게 만족도 낮은 프라하 여행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왔을 때 갑자기 그전까지 살던 파리가 다르게 보였다.
전 세계가 ‘파리, 파리’ 하지만 생활공간으로서의 파리는 점수를 그리 높게 줄 수가 없다. 불편할 때가 많다. 하루에도 몇 번씩 보는 에펠탑에 관광객처럼 마음이 들뜰 리도 없다. 타사의 특파원 선배는 “남들은 몇 백만원 비행기값 들여서 여행 오는 곳에 살고 있으니 에펠탑 한 번 볼 때마다 비행기값 벌었다 생각하고 불평불만 참고 살자”고 말한 적도 있다.
하지만 평소와 달리 8월의 파리는 한적한 공간이 많다. 프랑스 사람들이 대거 휴가를 떠나 도시가 텅 빈다. 상가도 한달 가까이 문 닫는 곳이 많다. 몇몇 관광지만 혼잡하니 관광객 발길이 뜸한 파리의 이곳저곳을 산책하면서 아름다움과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휴가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왔는데 오히려 그 순간 휴가 온 듯한 기분에 잠겼다.
관광객 때문에 삶의 질 떨어지는 지역주민
파리 인구는 외곽까지 합하면 1000만명도 넘지만 시 경계 안쪽은 200만명쯤 된다. 면적은 서울의 6분의 1 정도다. 파리 도심의 인구 밀도도 미어터진다는 서울 못지않다. 거기에다 한 해에 6000만명도 넘는 관광객이 프랑스를 찾는다. 관광객이 프랑스 인구만큼 많다. 그중 상당수가 파리를 찾을 테니 파리는 늘 만원이다. 관광지에서 돈 버는 상인 입장에서야 관광객 붐비는 게 반갑지, 일반 거주민 입장에서 관광지는 그리 쾌적한 생활공간은 못된다.
도시 전체가 관광지가 된 베니스의 경우, 그곳에서 장사하고 일하는 사람도 거주는 베니스 외곽에 한다. 관광지라 집값은 점점 비싸지는데, 삶의 쾌적도는 점점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관광지에 공동화 현상도 생겨난다. 급격한 관광지화로 이런저런 부작용이 수반되는 현상을 ‘투어리스티피케이션(touristification)’이라고 한다.
이런 고민을 할 기회가 별로 없었던 서울에도 투어리스티피케이션 현상이 생겨나고 있다. 서울에서 ‘뜨는 동네’로 꼽히는 서촌이 요즘 몸살을 앓고 있다 한다. 한옥이 밀집돼 옛 모습을 간직한 덕분에 관광객이 몰리면서 관광명소가 됐다. 종로구는 인근 필운대로 구간에 차량 273대를 세울 수 있는 대형 지하주차장 건립을 추진 중이다. 서촌 주민들은 지하주차장 건설에 반대한다. 오래된 집이 많은데 지하주차장 공사를 했다가 자칫 건물이 붕괴될 위험도 높아지고, 널찍한 주차장이 생기면 관광차량이 더 몰려들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외국인 관광객만 작년에 1700만명 넘게 한국을 찾았다. 역대 최고치다. 관광이 ‘굴뚝 없는 산업’이라고 하니 나라 경제를 생각하면 쌍수 들고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관광지에 사는 주민 입장에서 보자면 꼭 ‘굴뚝 없는 친환경 산업’인 것만도 아니다. 상당한 불편과 번잡함을 감수해야 한다. 우리도 그 지역 주민들의 삶의 질이 급격히 저하되지 않도록 관광지 개발 계획도 세워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