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이승범>
<일러스트 : 이승범>

삼성이 3월 1일 자로 그룹 경영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온 미래전략실을 전격 해체했다. 최지성 미래전략실장과 장충기 차장, 팀장 7명 등 총 9명이 사퇴했다. 나머지 임직원 200여명은 각 계열사로 발령났다. 최순실 국정 농단을 수사 중인 특검이 지난달 28일 뇌물 공여 등의 혐의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삼성 수뇌부 5명을 일괄 기소하자 삼성이 이 같은 경영 쇄신안을 발표했다.

미래전략실 해체는 그룹을 지탱해온 핵심 조직과 인력을 없애는 것이다. 사실상 ‘그룹 해체’를 선언하는 강도 높은 쇄신안이다. 그룹의 컨트롤타워 없이 앞으로는 삼성의 각 계열사가 대표이사와 이사회 중심으로 자율적인 독립 경영을 하겠다는 것이다. 매주 수요일 개최하던 그룹 사장단 회의도 폐지된다. 그룹에서 주관하던 사장단 및 임원 인사도 앞으로는 각 계열사에서 임원 추천위원회를 구성해 결정하겠다고 한다.

삼성 미래전략실의 뿌리는 1959년 창업주인 이병철 회장이 만든 비서실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병철의 경영을 특징 짓는 조직이 회장 비서실이었다. 처음엔 직원 20여명으로 삼성물산의 일개 ‘과’로 시작했다. 그룹 규모가 커지면서 비서실도 급성장했다. 1967년에는 비서실 안에 그룹 감사실이 생겨 위상과 권한이 확대됐다. 삼성 비서실을 그룹의 명실상부한 컨트롤타워로 만든 인물은 1978년 비서실장이 된 소병해였다. 소 실장은 기존의 6개 팀에 인사·경영관리·홍보 등을 더해 15개 팀 250여명으로 막강 비서실 진용을 갖췄다. 이병철 회장은 비서실을 통해 그룹 전반을 장악했다. 특히 신규 사업을 위한 투자를 할 때 비서실에 철저하고 완벽한 사업 평가를 요구했다. 비서실 인력은 계열사에서 인사고과 성적이 뛰어난 인재로 충원했다. 출신 계열사에 적을 두고 원래 자기 부서에 소속된 상태에서 3년 정도 비서실에서 경험을 쌓은 뒤 다시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인사 방식이었다. 오늘날 ‘인재의 삼성’ ‘관리의 삼성’이 된 것도 ‘이병철 회장 비서실’에서 비롯됐다.


이재용 뉴 삼성 2기 개막

1987년 이병철 회장이 사망하고, 이건희 회장이 경영권을 물려받았지만 3년간은 인사권을 적극 행사하지 않았다. 서울 태평로 삼성 본관으로 출근하는 대신 주로 신라호텔에 머물렀다고 한다. 이건희 회장의 은둔 3년 동안 소병해 비서실장이 실질적인 삼성의 총수 역할을 했을 정도였다. 그러다 이건희 회장이 비서실에 칼을 들었다. 소병해를 비서실장에서 내보내고 비서실 15개 팀을 10개 팀으로 축소했다. 비서실장 권한도 줄였다. 1991년 이수빈을 비서실장으로 임명하면서 20명의 비서실 임원 대부분을 새 사람으로 바꿨다. 비서실이 생긴 이래 최대 규모의 물갈이였다. ‘이병철 체제의 비서실’을 개편하면서 각 계열사 자율 경영의 폭을 넓혔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정부가 구조조정과 빅딜을 추진하자 삼성도 그룹 내 사업 재편을 위해 비서실을 해체하고 구조조정본부를 신설했다. 그러다 2005년 불법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진 X파일 사건으로 2006년 구조조정본부를 없애고 전략기획실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삼성 비자금 특검으로 2008년 이건희 회장이 퇴진하면서 이마저 해체하고 사장단 협의회와 이를 지원하는 10여명의 업무지원실만 남겼다. 그러다 2010년 이건희 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면서 미래전략실이라는 이름으로 조직을 부활시켰다. 하지만 최순실 사태로 7년 만에 해체의 길을 걷게 됐다.

이제 59개 계열사에 50만 임직원이 몸담은 매출 400조원의 대한민국 최대 그룹이 컨트롤타워 없는 항해를 시작한다. 삼성전자·삼성물산·삼성생명이 세 기둥 역할을 하겠지만 총수가 비서실의 지원을 받아 그룹 전체를 장악하던 기존의 삼성과는 전혀 다른, 그야말로 새로운 삼성이 시작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