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간의 삶에서 과연 운(運)이란 존재하는가. 운이 있다면 얼마나 작용하는가. 운은 과연 하늘의 이치인가, 아닌가. 아니면 인간이 개척할 수 있는가. 어떤 이는 카르마(karma·업), 다른 이는 신의 섭리로 풀이한다. 그런가 하면 ‘운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며 강한 개척의지를 드러내는 이도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운명, 특히 불운에 대한 관심은 깊었다. 사람들이 뜻하지 않은 운명의 횡포에 휘둘리거나 넘어지곤 했다. 사마천의 ‘사기열전’ 중 백이열전 부분을 보자. “하늘의 이치는 사사로이 친함이 없어 늘 착한 사람과 함께한다고 한다. 백이, 숙제와 같은 사람은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은가. 이들은 어진 덕을 쌓고 품행이 바르고 곧았는데도 굶어죽었다. (중략) 행동하는 것이 규칙을 따르지 않고 남에게 못할 일을 범한 이들은 오히려 즐겁게 살고 부귀가 대대로 이어져 끊이지 않는다. 이런 사실은 나를 당혹스럽게 한다. 만약 이것이 하늘의 도리라면 이것이 과연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사마천의 피울음이 지금도 귀에 들리는 듯하다. 지당하다고 하지만 내겐 부당하기만 한 운명의 길을 어떻게 헤쳐 나가야 할 것인가. 그저 운명의 폭주를 맥없이 바라보기만 할 것인가, 바람개비를 이용해서라도 맞설 것인가.
운명 결정론 vs 개척론
동서양 모두 운의 존재는 인정하지만 개척과 극복 가능성 또한 열어놓고 있다. 먼저 동양부터 살펴보자. 운칠기삼(運七技三)의 고사성어에서 볼 수 있듯 운명 개척 가능성에 30% 여지를 준다. 운명의 고삐를 인간이 30% 정도는 잡고 조종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서양에서는 근대에 들어와 인간의 주도적 의지가 부쩍 강조된다. 마키아벨리는 ‘군주론’에서 인간의 운명 개척 가능성을 50% 내외로 본다. 그는 포르투나(fortuna·운)를 군주의 조건으로 언급한 바 있지만 전적으로 운에 기대지 말 것을 주문한다. “운명의 여신은 인간의 자유의지를 박탈하지 않기 위해 우리 행동의 절반에 대해서만 결정권자 역할을 한다. 나머지 절반은 인간이 통제하도록 허용한다. 비르투(virtu·덕)를 가지지 않은 포르투나는 오래 가지 못한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의 클레이튼 크리스텐슨 교수는 운명 개척론과 결정론을 아우르는 균형론적인 의견을 표한다. 그는 “인생 여정에서 어느 지점에 있느냐에 따라 전략이 다르다. 의도적 전략으로 기회를 만들 수도,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전혀 색다른 기회를 만날 수도 있다. 분명한 동기를 찾았다면 의도적으로 전략을 세워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때그때 도전과 응전의 전략을 펼쳐야 한다는 얘기다. 자, 이 글을 읽는 당신은 결정론, 운명론, 균형론 중 어떤 입장인가. 운명에서 인간의 주도성은 어느 정도라고 보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불운과 불행은 다르다. 운과 불운을 결정하는 것은 신의 몫이지만, 불행을 결정하는 것은 인간의 몫이다. 예컨대 사마천이 흉노에 투항한 이릉 장군을 변호하다 황제의 분노를 사 궁형을 당한 것은 불운이다. 만일 궁형의 불운이 없었다면 불후의 걸작인 ‘사기’를 쓰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신이 그려놓은 운명적 팔(8)자를 무한대(∞) 도전으로 역전시킬 수 있는 인간의 가능성은 30%든 50%든 분명 존재한다.
운과 불운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히고 꼬여 있다. 가까이서 보면 행운이었던 것이 돌이켜 보면 불운이기도 하고, 그 반대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운명에 굴복하지 않고 진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운과 관련된 영어단어 기회(opportunity), 때(occasion), 우연한 행운(serendipity) 등의 어원을 통해 살펴보자.
기회(opportunity)는 ‘나서지도 나대지도 말고 때를 기다리라’고 풀이할 수 있다. opportunity는 ob portu(항구 밖에서)에서 비롯됐다. 고기를 잡은 어부들이 항구 밖에서 대기하다 밀물 때를 기다려 항구로 돌아오던 것과 관련돼 있다. opportunity란 운을 기다리는 태도다. 이는 운이 아직 오지 않았거나 불운일 때 견디고 버티는 ‘마음의 자세’로 해석할 수 있다. 때가 올 때까지, 환경이 성숙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역경에 좌절하지 말고 지치지도 말고 때를 기다려라. 사막에서 차바퀴가 빠졌을 때 빠져나오는 방법은 바람을 빵빵하게 넣는 것이 아니라 빼는 것이다. 시련을 탓하거나 버둥거리기보다 힘을 차곡차곡 비축하라. 불운의 억울함과 지루함을 견뎌라.
본업 충실하면 운명 통제 가능
때(occasion)는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해석할 수 있다.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준비된 역량이다. 로마 신화에는 운명의 신이 둘 존재했다. 포르투나와 오카시오(occasio)다. 오카시오는 때, 상황을 의미하는 occasion의 어원이다. 오카시오의 앞 머리칼은 무성해 알아보기 어렵고 뒤쪽은 민머리이며 발에는 날개가 달려 있다고 한다. 무성한 앞머리 때문에 발견하기 어렵지만, 잘 발견하면 그 머리채를 잡아 행운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기회를 놓치면 뒷머리가 없어서 잡기도 힘들고 특히 날개가 있어서 재빨리 사라져버려 다시는 붙잡지 못한다고 한다. 당신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필요한 역량을 준비하라. 준비한 자만이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봉변은 기회를 갖지 못해서 당하는 게 아니다. 준비를 안 했기 때문이다.
우연한 행운(serendipity)은 ‘기회를 계획’하는 것이다. serendipity의 사전적 정의는 뜻밖의 발견, 우연한 행운이다. serendipity는 영국 작가 호러스 월폴이 페르시아 우화 ‘세렌딥(스리랑카)의 세 왕자’에 근거해 만든 말이다. 섬 왕국 세렌딥의 세 왕자가 보물을 찾아 모험을 떠난다. 이들은 비록 보물을 찾지는 못했지만 힘든 모험을 하면서 우연히 세상의 지혜와 용기를 깨달을 수 있었다. serendipity는 우발적 사건과 전략적 사고의 만남에서 발생한다.
비제이 고빈다라잔 다트머스대 터크 경영대학원 교수는 이를 ‘계획된 기회주의’라 말한다. 그는 “신이 정해준 운명의 말(馬)과 인간의 자유의지의 말, 둘 다 존재한다. 통제할 수 없는 운명의 말을 관리하는 효과적인 방법은 통제할 수 있는 말에 집중해 통제 가능한 자유의지의 가능성과 기회를 키우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이는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과도 통한다. 세상에는 3가지 일이 있다. 내가 할 일, 상대가 할 일, 하늘이 할 일이다. 우리는 상대와 하늘의 일은 신경쓰지 말고, 지금 여기에서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치열하고 치밀하게 하면 된다. 자기 일에 전력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운명을 통제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다.
▒ 김성회
연세대 국문학 석사, 서울과학종합대학원 경영학 박사, 저서 ‘성공하는 CEO의 습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