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최대 국제공항인 샤를드골공항 2E 터미널. 장거리 승객들이 출국하는 이곳에 사람 키만한 삼성 갤럭시탭 확대판이 있다. 스크린 터치로 이름과 항공편을 입력하면 어느 길을 따라 어느 게이트로 언제까지 가야 하는지 안내가 뜬다. 안내에 따라 길을 가면 다른 큰 전광판이 등장한다. 지금 서 있는 위치에서 내가 가는 탑승 게이트까지 걸어서 걸리는 시간이 표시된다. 빨간색 표지판이 있는 보안 검색대에선 탑승 시간이 임박한 승객들만 따로 줄을 서도록 했다. 비행시간이 많이 남은 승객은 초록색, 중간 정도의 승객은 오렌지색 줄이다.
낡은 시설과 긴 이동 거리, 잦은 짐 분실, 불친절…. ‘세계 최악의 공항’으로 불리던 파리 샤를 드골 국제공항이 달라졌다. 공항 운영사인 ADP가 유럽 최대 허브공항을 목표로 2008년부터 2013년까지 6억유로(약 8500억원)를 들여 리모델링 공사를 벌인 결과다. 2011년 기준 샤를드골공항은 연간 방문객 6000만명(2011년 기준)으로 유럽 2위. 10년 후인 2021년 1위인 런던 히스로공항(6900만명)을 제치고 연 1억명이 오가는 유럽 최대 공항이 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무한 경쟁 모드’ 돌입한 유럽 항공업계
유럽 항공업계가 ‘무한 경쟁 모드’에 돌입했다. 히스로공항(2008년)을 필두로 바르셀로나(2009년)·코펜하겐(2010년)·프랑크푸르트 공항(2011년) 등 유럽 국제공항들이 대규모 자금을 쏟아부으며 확장 또는 리모델링 공사를 벌였다.
이런 움직임은 절박한 위기감에서 나왔다. 2005년 세계 7, 8, 9위 공항에 꼽혔던 샤를드골·프랑크푸르트·스키폴공항 중 프랑크푸르트와 스키폴이 2011년 각각 9위와 14위로 밀려났다. 반면, 10위에도 못 들던 베이징공항이 세계 2위(7740만명)로 치고 올라왔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의 스키폴 국제공항에는 2012년 초부터 공항 측과 KLM 항공이 제휴해 승객 스스로 수하물을 자동화 기기에 넣어 부치는 ‘무인 수화물 위탁(Self Baggage Drop)’ 시스템을 가동 중이다. 대다수 공항이 좌석을 셀프 체크인(self check-in)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만 수하물은 여전히 줄을 서서 직원을 대면한 채 체크인해야 한다.
직항객 수요가 많지 않은 스키폴 국제공항은 생존책으로 색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 환승 대기 시간 동안 잠시 눈을 붙이고 싶어 하는 승객들을 위해 공항 터미널 안에 특급 수준의 호텔 2개를 열었다. 공항 터미널 로비 한복판에 5분당 1유로(약 1400원)만 내면 마사지를 받을 수 있는 ‘셀프 스파 기기’까지 마련했다. 환승객들을 위한 도서관을 마련해 전자(電子)책과 음악을 모두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게 했다.
파리 최대 공항인 샤를드골공항은 루브르·오르세 박물관과 협력한 ‘미니 박물관’을 유치했다. 스키폴공항에는 네덜란드 국립박물관 라익스 박물관이 이미 들어와 있다. 유럽 최대 자산이자 자부심인 문화유산으로 고객을 흡인하려는 전략이다. 히스로공항은 자신의 종교 방식대로 기도를 할 수 있는 ‘멀티 기도방(multi-prayer room)’을, 프랑크푸르트공항은 승객들이 룰렛·블랙잭 등을 즐길 수 있는 카지노를 갖췄다.
박물관·카지노·호텔… 없는 게 없는 공항
컨설팅업체인 ‘코펜하겐이코노믹스’의 마르틴 흐비트 텔레(Thelle) 파트너는 “유럽 공항들이 최근 항공사를 유치하기 위해 치열한 마케팅 전쟁을 벌이고 있다”며 “빈 공항이나 더블린 공항 같은 소규모 공항은 항공사에 공항 이용료를 대폭 할인까지 해준다”고 했다. 더블린 국제공항은 비행시간 7시간이 넘는 장거리 노선 항공사에 대해 공항 이용료를 노선 운항 2년째 10%, 3년째 25%, 5년째에는 75%까지 깎아준다.
유럽 공항이 겨냥하는 공통적인 과녁은 아시아·태평양 탑승객들이다. 프랑크푸르트공항은 2012년 여름부터 중국 승객들을 위한 개인 쇼핑 도우미인 ‘퍼스널 쇼퍼’ 서비스를 마련해 중국인들의 개인 쇼핑을 돕고 있다. 중국 표준어(만다린)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이들이 1 대 1 쇼핑 보조는 물론 공항 보안 검색대 통과와 출발 게이트 안내까지 ‘풀 서비스’를 한다.
아·태지역에 대한 공세는 글로벌 경기 침체 속에서도 이 지역 승객들은 활발하게 늘고 있기 때문이다. 2011년에 아·태 정기 항공기를 이용한 여객은 8억1000만명으로 10년 전(2001년 3억7000만명)보다 220% 증가했다. 반면 유럽 지역은 같은 기간 78% 증가에 그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