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루폰은 공동 구매 방식을 이용해 음식점, 공연, 스파 등의 이용권을 50% 가까이 할인 판매하면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사진 : 블룸버그>
그루폰은 공동 구매 방식을 이용해 음식점, 공연, 스파 등의 이용권을 50% 가까이 할인 판매하면서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사진 : 블룸버그>

“그루폰(Groupon)은 처음부터 넌센스였다. 그루폰의 초기 비즈니스 모델은 공동구매였다. 이는 동일한 재화 또는 서비스를 구매하려는 소비자들을 모아, 그들이 아마존·월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의 바잉파워(거래에서 우위를 차지하는 기업의 구매력)를 형성해 저렴한 가격에 제품을 살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이다. 언뜻 합리적인 서비스처럼 보이지만 애당초 어떠한 타당성도 없는 엉터리 비즈니스 모델이다.” 펜실베이니아대학 경영대학원인 와튼스쿨의 에릭 클레먼스(Eric Clemons) 교수는 그루폰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2008년 미국 시카고에서 시작해 2년 만에 세계 44개국 500여 도시에 진출한 그루폰은 7년 전만 해도 콧대가 하늘을 찔렀다. 그루폰은 공동구매 방식을 이용해 레스토랑, 공연, 스파 등의 이용권을 50% 가까이 할인해 판매하는 ‘소셜딜’ 서비스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사업 초기 구글·야후 인수제안 거절

당시 그루폰은 구글이 60억달러(약 6조7800억원)에 인수하겠다는 제안을 단번에 거절했다. 야후가 제시한 20억달러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루폰은 2011년 기업공개(IPO)로 시가총액 160억달러의 회사가 되면서, 경제 전문지 ‘포브스’로부터 ‘웹 역사상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회사’란 타이틀을 얻게 됐다.

하지만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상장 첫날 공모가 20달러를 40% 웃도는 28달러에 거래되기도 했지만, 주가가 지난해 2.45달러까지 추락했다. 기업가치는 13억달러로 쪼그라들었다. 올해 알리바바의 그루폰 지분 인수 소식이 주식시장에 돌면서 3달러 수준으로 반등했지만 여전히 공모가를 크게 밑돈다. 지속된 실적 부진에 그루폰은 지난해 전체 직원 1만2000여명 가운데 1100여명을 내보냈고, 그리스 등 7개국에서 철수를 진행 중이다. 한국에서는 2014년 철수했다.

이에 따라 증권사에서도 그루폰에 대해 부정적인 전망을 내놓기 시작했다. UBS증권은 지난 3월 그루폰에 대한 투자 의견을 중립에서 매도로 하향 조정했다. 에릭 세리단 UBS 전략가는 “올해와 내년 그루폰의 실적이 모두 예상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며 “구글과 페이스북 등 대형 기업들의 경쟁이 치열해 그루폰의 경쟁력을 더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많은 경제학자들은 그루폰으로 대표되는 ‘소셜커머스(제품과 서비스의 거래를 돕기 위해 소비자의 SNS 인맥을 활용하는 온라인 커머스의 한 형태)’ 자체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소셜커머스 비즈니스 모델 자체가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고, 이 업종이 절대로 성장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해왔다. 비평가들의 예측처럼 그루폰이 무너지는 것은 이제 ‘시간의 문제’로 보인다.

만약 펜실베이니아주 포츠타운에서 배가 고프다면, 그루폰 애플리케이션을 켜고, 몇 번의 클릭으로 ‘버거 소사이어티’ 레스토랑에서 단돈 15달러에 30달러 상당의 음식을 먹을 수 있다. 75달러 상당의 피부관리 마사지는 절반도 안 되는 29달러에 받을 수 있고, 100달러가 넘는 공연을 35달러에 관람할 수 있다. 심지어 미국 애틀랜타에서 멕시코 칸쿤까지 직행 항공편을 199달러에 예약할 수도 있다.


반값 할인 행사, 소상공인은 손해

당시 그루폰은 레스토랑, 피부관리실, 헬스클럽 등 소상공인들에게 새로운 고객을 찾아주는 중개인의 역할을 자처했고, 이는 홍보에 어려움을 겪는 많은 영세 업체들에 유용한 채널이 된 것처럼 보였다. 롭 솔로몬(Rob Solomon) 그루폰 전 최고운영책임자(COO)는 “디지털의 발달이 전통 유통업과 웹의 경계를 어느 때보다 더 많이 허물고 있다”며 “그루폰이 판매업자와 소비자를 효과적으로 연결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에릭 클레먼스 교수의 생각은 달랐다. “기본적으로 그루폰은 판매자가 할인된 가격에 제품을 제공함으로써 새로운 구매자로부터 신제품 체험을 유도하는 방식이다. 만약 다음 세 가지 조건을 그루폰이 충족시켰다면, 소셜커머스는 실현 가능한 비즈니스였을것이다.

첫째, 판매자가 기존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 탁월한 신제품을 가지고 있을 경우. 둘째, 판매자가 50%에 육박하는 할인을 지속적으로 견딜 수 있는 생산 능력을 보유했을 경우. 셋째, 그루폰이 새로운 구매자를 대거 유치할 수 있는 영향력 있는 소비 집단을 연결해줬을 경우다. 이 세 가지 조건 중 하나만 충족해도 그루폰은 영세한 판매자와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중개업자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클레먼스 교수에 따르면 그루폰은 오히려 판매자의 ‘기존 소비자’를 잡아먹는(cannibalizing) 결과를 초래했다. 정가에 해당 서비스를 이용해오던 사람들은 그루폰에서 제공하는 할인된 가격에 열광했지만, 이후 다시는 정가에 지갑을 열지 않았다. 판매자가 손해를 감수하고 지나치게 낮은 가격에 제품을 내놓은 것이지만, 할인 행사를 종료하고 정상 가격으로 변경했을 때 소비자의 반응은 싸늘했다. 판매자는 더 이상 정가에 제품을 판매할 수 없게 됐고, 그루폰 판매에 참여한 많은 상점은 결국 파산했다. 클레먼스 교수는 “정가 이하 판매는 미친 짓”이라며 “처음부터 소셜커머스는 말이 안 되는 모델이었다”고 비난했다.

미국 라이스대학에 따르면 모바일 앱을 통해 소셜딜 프로모션을 실시한 324개 기업에 대한 설문 조사 결과 43% 업체가 금전적 손해를 봤고, 전체 업체 중 80%가 다시는 소셜딜에 참여하지 않겠다고 응답했다. 참여 기업이 뽑은 가장 큰 불만은 소셜커머스 업체의 높은 수수료율과 소셜딜이 종료된 이후 신규 고객 유입이 거의 없다는 점이었다.

전문가들은 그루폰이 전통적 판매자와 신규 소비자를 연결하는 데 큰 효과가 없는 이유가 소셜딜 이용자의 특성에 있다고 지적했다.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부터 2000년대 출생한 세대)가 주를 이루는 소셜딜 구매자들은 어떤 브랜드에도 충성하지 않는다. 이들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를 중시하기 때문에, 저렴한 가격의 비슷한 상품이면 언제든지 다른 브랜드로 갈아탈 준비가 돼 있다. 즉, 그루폰 등 소셜커머스는 ‘가격 민감형 소비자’를 기반으로 성장한 것이다.

피나르 일디림(Pinar Yildirim)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마케팅 교수는 “대부분의 판매업자는 그루폰의 소셜딜에 참여하는 것을 일종의 투자라고 생각해 일단 손해를 보더라도 70~80%의 높은 할인율로 눈길을 끌려고 한다. 하지만 모바일을 통해 서비스를 구매하는 소비자들의 특성상 브랜드보다는 가성비에 따라 구매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해당 제품을 정가에는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라이스대학 연구 결과에 따르면 21%의 소셜딜 소비자가 할인된 가격보다 ‘약간’ 비쌀 경우 재구매할 의향이 있다고 대답했고, 11%는 정가에도 살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대다수인 68%는 소셜딜의 할인된 가격 이상은 지불하지 않겠다고 했다.

심지어 소셜딜 서비스를 이용한 고객들의 불만 접수도 늘어났다. 정가보다 저렴한 가격에 구입했다는 이유로 점원에게 차별받거나, 서비스 질이 떨어진 경우가 있었기 때문이다. 일디림 교수는 “판매자가 반값에 유치한 고객을 일반 고객보다 형편없이 대우하는 경우가 생기면서 소셜딜에 대한 신뢰 자체가 무너졌다.

사업자는 그루폰을 통해 유입된 고객에게 똑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직원에게 강력히 지시했어야 하는데, 급격히 늘어난 고객 수를 감당하지 못했고, 직원들이 예상치 못한 업무 강도에 시달리면서 이러한 부작용이 발생했을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소셜딜을 이용하는 경우 정해진 시간대(예컨대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에만 사용할 수 있거나, 특정 서비스만 선택할 수 있는 등 제약이 많은 점도 발목을 잡았다. 일디림 교수는 “처음엔 높은 할인율로 소비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소셜딜의 인기가 폭발적이었고, 가성비 좋은 상품이라는 긍정적인 이미지가 지배적이었지만, 10년이 지난 지금은 ‘싼 이유가 있는’ 불만족스러운 땡처리 상품으로 전락했다. 소셜딜에서 저렴하게 구입한 서비스를 받으러 매장에 가보면, 막상 추가 금액을 요구하는 등 지속적으로 문제가 발생했다”고 말했다.


그루폰은 2011년 기업공개 당시 시가 총액이 160억달러에 달했다. <사진 : 블룸버그>
그루폰은 2011년 기업공개 당시 시가 총액이 160억달러에 달했다. <사진 : 블룸버그>

기존 잡지·신문 속 할인쿠폰과 유사

소셜커머스의 사업 모델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아주 새로운 것은 아니다. 바로 할인쿠폰북과 비슷하다. 1962년부터 잡지 혹은 신문에 포함돼 있던 할인쿠폰이 앱으로 옮겨온 것에 불과하다.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들은 수십 년간 쿠폰으로 저렴한 가격에 레스토랑, 영화관, 공연장, 호텔 등을 이용해왔다.

이 때문에 그루폰의 실패가 우리에게 주는 명확한 교훈이 하나 있다. 기존의 아이디어를 온라인 혹은 모바일로 옮겨와 확장한다고 반드시 좋은 비즈니스는 아니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더 많은 고객을 불러온다고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예를 들어 신문사가 역사상 가장 많은 독자를 보유하고 있지만, 수익화하는 데는 과거보다 어려움을 겪고 있는 점과 비슷한 맥락이다.

다만 10년 전 그루폰이 빠르게 성장했던 것은 땡처리 할인이 경기 침체기에 유리한 사업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레이브스타인(David Reibstein)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마케팅 교수는 “경기가 어려워지는 국면에는 기업의 가장 큰 문제가 재고 처리다”며 “이 때문에 소셜딜과 같은 대규모 할인 이벤트가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만, 경기가 회복하는 시점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그루폰에 대한 증권사의 기업 가치 평가가 떨어진 것은 그루폰 하나의 문제가 아니고, 소셜커머스 업계 전반이 무너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오히려 레이브스타인 교수 연구에 따르면, 그루폰은 ‘소셜딜만 좇는 소비 인구’를 만들어내면서, 유통 업체의 이익 마진에 부합하지 않는 불량 소비자를 양성했을 수도 있다. “이미 50% 할인된 가격에 미용실 혹은 마사지숍을 이용했던 소비자는 기존 가격이 지나치게 비싸다고 인식할 수 있고, 앞으로 정가 거래는 어떻게든 피하려고 하는 ‘소셜딜족’으로 변하게 된다. 이는 산업 전반적으로 저가 경쟁에만 치중하게 되는 건강하지 못한 흐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리치 윌리엄스 그루폰 최고경영자(CEO) <사진 : 그루폰>
리치 윌리엄스 그루폰 최고경영자(CEO) <사진 : 그루폰>

타깃 소비자군에 집중하라

화려하게 주식시장에서 상장하며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스냅챗 등 다른 모바일 스타트업도 어려움을 겪기는 마찬가지다. 카틱 호사나가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운영·정보 및 결정학 교수에 따르면 소셜미디어 회사의 가장 큰 장애물은 ‘변덕스러운 고객’이다. 그는 “마이스페이스, 포스퀘어 등 소셜 벤처가 무너진 것을 보면 과거에 사람들은 네트워크 효과(특정 상품에 대한 수요가 다른 사람들의 수요에 의해 영향을 받는 효과) 덕분에 사용자가 많아짐에 따라 서비스 가치가 증가한다고 생각했지만, 최근 소비자들의 네트워크 효과는 연령별, 지역별 등 다양한 그룹으로 쪼개져 있다”고 말했다.

즉 나와 가까운 30~40명의 사람이 페이스북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한다면 페이스북을 소중히 여기겠지만, 나와 상관없는 수백만명이 이용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오히려 네트워크 효과는 어느 정도 규모를 벗어나면 독이 될 수 있다. 예컨대 10대의 경우, 자주 이용하던 플랫폼의 네트워크가 성장해 부모와 조부모까지 유입된다면 그들은 해당 플랫폼의 핵심 사용자 그룹을 떠날 것이다. 호사나가 교수는 “결론적으로 플랫폼 비즈니스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10대, 20~30대, 40~50대 등 주요 이용자에 따른 매출을 다변화해야 한다. 페이스북이 라이브 비디오, 가상현실 및 채팅봇으로 진출하는 노력도 같은 맥락이다”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그루폰 역시 매스 마켓(대량 판매, 대량 소비 시장)을 통한 무분별한 성장이 아닌 타깃화된 소비자에게만 소셜딜을 제공하는 식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바꿔야 한다. 가격에 민감한 소비자들을 끌어들여 거래액을 늘리고 파이만 키우는 공동 구매 방식을 버리고, 영향력 있는 소비자들을 끌어들여야 한다. 좋은 제품을 제대로 평가할 줄 알고,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충분히 지불할 의사가 있는 소비자가 늘어나야 그루폰도 판매자에게 충분히 합리적인 가치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클레먼스 교수는 “소비자가 충분히 합리적인 제품을 얻고 판매업자도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을 때, 그루폰은 놀라운 사업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우선적으로 ‘가격 민감형’ 소비자와 그렇지 않은 ‘미래의 충성 고객’을 구별해 낼 수 있는 데이터 분석 능력이 필요하다. 레이브스타인 교수는 “소셜딜의 성공을 위해선 소비자의 데이터를 분류해 개인의 구매 성향과 취향에 적합한 광고 이메일을 보내 판매자와의 접점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루폰은 앞으로 판매자와 소비자의 중개업자보다는 그들에게 서로 필요한 정보만을 선별해 제공할 수 있는 빅데이터 회사의 역할을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본 기사는 ‘이코노미조선’과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온라인 리서치·비즈니스분석 저널인 Knowledge@Wharton의 정식 계약에 따른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