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 최고의 디지털 기업인 페이스북에서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마크 저커버그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는 최고운영책임자(COO), 100만권 이상 팔린 베스트셀러의 저자, 명사들의 무대인 TED 강연을 통해 진취적인 여성상을 제시, 열광적인 갈채를 받은 여성 운동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 100인’에 뽑힌 경영인, 여성들이 가장 닮고 싶은 여성 기업인, 남편과 아들·딸을 키우며 행복한 가정을 일군 수퍼우먼···.
셰릴 샌드버그(Sheryl Sandberg·48) 페이스북 COO는 성공한 경영인의 대명사다. 하버드 대학을 최우등으로 졸업하고 래리 서머스 미국 재무장관 보좌 역을 거쳐 구글과 페이스북 임원으로 초고속 승진, 돈과 명예를 얻고 일과 가정에서 모두 성공했다.
그가 2년 전 남편과 사별한 뒤 감당해야 했던 슬픔과 고독 극복 방법을 담은 ‘옵션 B(Option B)’를 출간했다. 책 제목이 암시하듯 누구나 꿈꾸는 최선의 인생, ‘옵션 A’가 더 이상 가능하지 않을 때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진솔하게 그린 책이다. 4월 24일(현지 시각) 출간하자마자 뉴욕타임스와 아마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샌드버그는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월스트리트 저널, BBC, NPR 등과 연쇄 인터뷰를 통해 그동안 겪은 슬픔과 고독을 털어놓고 고통을 극복하고 기쁨을 찾는 법을 설파하고 있다. 친구이자 세계적인 조직 심리학자인 애덤 그랜트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교수가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2015년 휴가 중 남편 잃어
“데이브(골드버그)가 사경을 헤맬 때 나는 낮잠을 자고 있었어요. 내가 데이브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은 ‘나 졸려, 피곤해’였어요.”
2015년 5월 햇살 따뜻한 멕시코 해변 휴양지에서 단잠을 자던 샌드버그는 체육관에서 운동하던 남편이 급성 심장부정맥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휴가 여행은 남편과의 마지막 이별여행이 됐다. 화려한 성공을 구가하는 ‘수퍼우먼’으로 떠난 휴가에서 슬픔에 찌든, 아이 둘 딸린 중년의 미망인이 돼 집으로 돌아왔다.
“데이브가 세상을 떠난 지 4개월 지났을 때, 한 파티에 갔다가 엉엉 울고 말았어요. 잠시, 아주 잠시, 한 1분쯤이었을까? 다른 사람들과 춤을 추다가 나도 모르게 행복하다고 느꼈어요. 그러다가 ‘어떻게 데이브가 죽었는데 내가 행복할 수 있지?’ 하는 죄책감이 들자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흥겹던 파티 분위기는 나 때문에 엉망이 되고···.”
샌드버그는 “나와 비슷한 아픔을 겪는 사람들과 ‘역경에 대처하고(facing adversity) 회복하고(building resilience), 궁극적으로 다시 기쁨을 찾는(finding joy) 방안’을 공유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슬픔에 맞서 싸우지 말고, 외면하지 말라. 슬픔을 향해 달려들어라(lean in).”
4년 전 첫 저작인 ‘린 인(Lean In)’에서 ‘로켓이 출발하면, 그 위에 올라타라(lean in)’며 진취적이고 도전적인 여성의 역할을 설파했던 그는 슬픔·고독 또한 정면으로 응시하자고 제안한다.
샌드버그는 “친구나 지인들이 ‘어떻게 지내?’라고 물으면 솔직히 ‘여전히 안 좋아. 하지만 그런 말을 함께 얘기할 수 있어서 좋아’라고 대답하라”며 “당신이 말문을 열어야 친구나 지인들도 자신들의 슬픈 감정을 털어놓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샌드버그는 “비극과 슬픔이 (살아 있는) ‘내 잘못’이라고 자책하지 말라. 슬픈 감정을 일기장에 써 보며, 새로운 즐거움을 찾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지 말라”고 충고했다.
“데이브가 원한 것은 당신과 아이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다. 그가 죽었다고 모든 것을 잃을 수는 없지 않느냐.” 샌드버그는 시동생, 랍비의 충고가 많은 도움이 됐다고 털어놨다.
“옵션 B는 인생의 또 다른 기회이자 의무”
성공의 절정에서 사랑하는 남편을 잃었기 때문일까? 샌드버그는 “좋은 직장을 구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승진하는 등 인생의 큰 사건 속에 행복이 있다고 생각했지만, 진정한 행복은 일상의 작고 사소한 것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농구 시합에서 진 아들을 위로하자 ‘괜찮아요 6학년 농구 시합일 뿐인데’라고 아들이 말한 것에서 큰 기쁨을 느꼈다”고 했다.
샌드버그는 그러면서 “세상은 슬픔을 대하는 자원조차 불평등하게 분포돼 있다. 미망인이 된 미국 여성의 30%는 남편과 사별한 뒤 경제적 어려움과도 싸워야 한다. 이런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샌드버그는 “5년 뒤 내가 어디에서 어떤 모습일지는 모르겠다. 다만 아무리 고통스러울지라도 인생에는 다른 선택, ‘옵션 B’가 있다는 것이고 그것이 인생의 또 다른 기회이자 의무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워싱턴포스트는 “샌드버그의 첫 책이 미국 여성들의 직장 문화를 바꿨다면 ‘옵션 B’는 슬픔을 대하는 미국인들의 문화를 바꿀 것”이라고 평했다.
소련계 유대인 가정 출신… 페이스북 흑자 전환의 ‘일등 공신’

셰릴 샌드버그는 1969년 워싱턴 D.C.에서 소련계 유대인 중산층 가족의 셋째 딸로 태어났다. 아버지(에델 샌드버그)는 안과의사, 어머니(조엘 샌드버그)는 대학에서 프랑스어와 영어를 가르치는 교수였고, 집안 대대로 소련 출신 유대인 지원 운동에 적극적이다.
1991년 하버드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은사이자 평생 멘토인 래리 서머스 교수의 추천으로 1년 남짓 세계은행에서 일했다. 1995년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경영학석사(MBA)를 딴 뒤 맥킨지에서 컨설턴트로 근무하다 1996년부터 5년간 재무장관이 된 래리 서머스를 도와 아시아 경제 위기 지원 프로젝트 등에 참여했다.
2001년 당시 신생 기업이던 구글에 입사, 8년 만에 글로벌 온라인 광고와 퍼블리싱 담당 부사장에 올랐다. 워싱턴포스트 이직을 고려하던 2007년 12월, 한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페이스북 창업자 마크 저커버그를 만났다. 그의 능력에 반한 저커버그의 끈질긴 구애를 받아 들여 2008년 3월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로 자리를 옮겼다.
샌드버그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의 온라인 광고를 도입, 적자에 허덕이던 페이스북을 단숨에 흑자로 전환시킨 ‘일등 공신’으로 알려져 있다. 세일즈·마케팅·신사업·인력관리 등 페이스북 경영 전반에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2인자다. 페이스북 주식 1720만주(전체의 0.5%)를 가지고 있는데, 평가액이 10억달러(약 1조1300억원)에 달한다. 월트 디즈니와 스타벅스 사외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2013년 ‘린 인(Lean In)’을 통해 도전적이고 적극적인 여성상을 제시하며 큰 반향을 얻었지만 “엘리트 여성이나 가능한 일을 여성 전체에 일반화했다”는 비판도 받았다. 2015년 남편과 사별한 뒤 비영리단체 ‘옵션 B(optionb.org)’를 만들어 슬픔에 빠진 사람들을 위로하고 극복하는 일을 지원하고 있다. 2016년 셰릴 샌드버그 & 데이브 골드버그 재단을 설립했다. ‘Lean In.org’와 ‘Option B.org’ 등을 통해 여성의 사회활동 지원, 빈곤 퇴치, 교육 지원에 1억달러(약 1130억원) 이상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3년 브라이언 크라브와 결혼했다가 1년 만에 헤어지고 2004년 데이브 골드버그와 재혼, 아들과 딸 하나씩을 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