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 이승범>
<일러스트 : 이승범>

‘일자리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약한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인천공항공사로 달려가 ‘비정규직 제로’를 언급했다. 인천공항 사장은 비정규직 1만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새 대통령에게 선물 보따리를 안겼다. 기업들은 바짝 긴장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 기대치는 확 높아졌다. 공공 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주요 정책으로 내세운 새 정부의 일자리 정책이 굴러가기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 1호 지시로 일자리위원회를 설치하라고 했고, 급기야 대선 공약대로 대통령 집무실에 14개 일자리 지표와 4개 일자리 관련 경제지표 등 총 18개 지표를 담은 일자리 상황판도 설치해 언론에 공개했다.

대통령 행차에, 비정규직을 일거에 정규직 화하겠다고 약속한 인천공항의 마법이 우리 사회 전체에 퍼질 수 있을까.


기존 정규직 과보호 장치부터 풀어야

하지만 인천공항을 방문했을 때 문 대통령은 노조를 향해 “노사정 대타협을 통해 함께 고통을 분담하며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야 한다. 노동자들도 한꺼번에 다 받아내려고 하진 말라”고 선을 그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태도로 볼 때 새 정부의 ‘비정규직 제로’가 곧 ‘정규직 100%’라기보다는, 시중에서 흔히 ‘중규직’이라고 부르는 고용 형태 비슷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중규직이란 법적 용어는 아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중간 형태쯤 된다고 해서 나온 말이다. 공공 부문의 무기 계약직을 나타내는 말에서 최근엔 민간까지 넓혀서 쓰고 있다. 비정규직의 고용 불안을 덜어주기 위해 자회사나 공익법인을 설립해 정규직으로 채용하면 직업의 안정성은 높아지되 처우는 본사 정규직에 못미치는 고용 형태가 된다.

인천공항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논의에 들어갔는데, 자회사를 설립하고 그곳에서 기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직접 고용하는 방식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민간 기업쪽에서는 SK브로드밴드가 애프터서비스(AS), 고객 관리 등을 수행하는 103개 홈센터 직원 5200명을 자회사를 새로 설립해서 정규직으로 흡수하겠다고 했다. 이런 방식으로 자회사를 설립해 기존의 간접고용 노동자들을 자회사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방식, 즉 중규직이 새 정부에서는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노조가 이런 중규직 같은 고용 형태에 만족하는 선에서 과연 타협할 것인가가 관건이다. 노동계 요구는 정규직으로 직업의 안정성도 높여주고, 정규직만큼 임금도 올려달라는 것이다.

얼마 전 흥미로운 보고서가 나왔다. 한국노동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정규직 10명 가운데 1명(10.7%)은 스스로를 비정규직이라고 여기는 것으로 조사됐다. 반대로 비정규직 10명 중 2명(18.7%)은 자신을 정규직과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정규직이면서 스스로를 비정규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주당 평균 근로시간은 47.2시간, 월평균 임금은 175만4000원이었다. 그와는 반대로 정규직과 별 다를 바 없다고 여기는 비정규직의 평균 근로시간은 46.5시간, 월평균 임금은 238만3000원이었다. 주당 평균 근로시간이 정규직(46.5시간)과 비슷하고 월급도 정규직(290만6000원)의 80% 선은 받으니 비정규직의 설움을 덜 느끼는 것이다. 결국 근로시간은 긴데 임금을 적게 받는 정규직은 스스로를 비정규직으로 느끼고, 그보다 근로조건이 나은 비정규직은 스스로를 정규직 비슷하다고 여기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 정부가 추구하는 방식의 정규직 전환으로는 여전히 노동계에서는 ‘반쪽짜리 정규직’이라면서 불만이 터져 나올 공산이 크다.

좀 시끄럽고 고통스럽더라도 노동시장 개혁은 정석대로 이뤄져야 한다. 기존 정규직의 과보호 장치부터 풀어야 한다. 성과 따라 월급 받는 게 아니고 오래 근무하면 월급 많이 받아가는 기존 정규직의 연공서열식 철밥통 임금 체계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대신 비정규직이라고 해도 정규직과 동일한 노동을 하면 동일한 임금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노동시장의 차별 구조를 바꾸는 것만이 제대로 된 해법일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