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사망한 로저 아일스 폭스뉴스 전 회장은 ‘보수미디어 제국의 황제’로 불렸다. <사진 : AP 연합뉴스>
최근 사망한 로저 아일스 폭스뉴스 전 회장은 ‘보수미디어 제국의 황제’로 불렸다. <사진 : AP 연합뉴스>

“미국은 오늘 위대한 애국 전사를 잃었다.”(션 헤네티 폭스뉴스 진행자)

“미국을 전체주의 국가로 만든 악의 천재. 성추문 속에 사라지다.”(롤링 스톤)

로저 아일스(Roger Ailes) 폭스뉴스 전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5월 18일(현지 시각) 사망했다. 미망인 엘리자베스 아일스 여사는 “5월 10일 플로리다 팜비치 자택에서 넘어지면서 바닥에 머리를 부딪쳤다”고 밝혔다. 최종 사인은 혈우병. 아일스는 평소 “유전성 혈우병을 앓고 있다. 나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했다.

아일스는 ‘TV 시청률의 마법사’로 불린 ‘보수 미디어 제국의 황제’였다.

1996년 루퍼트 머독과 손잡고 군소 케이블 방송인 폭스뉴스 최고경영자(CEO)에 취임 후, 2002년 CNN 시청률을 추월했다. 폭스뉴스는 15년 전부터 미국인들이 가장 많이 보는 뉴스 채널이다. 경쟁사(CNN·MSNBC)들의 시청자를 다 합친 것보다 많은 200만명의 충성도 높은 고정 시청자를 확보, 작년 한 해 23억달러(약 2조6000억원)의 수입을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 지지층의 40%가 폭스뉴스를 핵심 정보 채널로 지목했다”(퓨 리서치센터)는 조사 결과가 나올 만큼 백인, 남성, 노인 등 공화당 지지층을 사로잡았다.

아일스는 ‘공평하고 균형 잡힌 뉴스’ ‘우리는 보도하고 여러분은 결정한다’ 등의 카피로 공화당 지지자들을 집중 공략했고, 성공했다.

1966년 리처드 닉슨의 선거 보좌관을 시작으로 로널드 레이건, 조지 H.W. 부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선거의 핵심 참모였다. 뉴트 깅리치, 루디 줄리아니, 마이크 허커비, 세라 페일린 등 위기의 공화당 정치인들이 그의 눈에 들기 위해 안달했다.

아일스가 이끄는 폭스뉴스는 민주당엔 악몽이었다.

로저 아일스 전 회장(왼쪽)이 미군 장성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 위키피디아>
로저 아일스 전 회장(왼쪽)이 미군 장성과 악수하고 있다. <사진 : 위키피디아>


노동자의 투사 자처… 공화당 지지층 결집시켜

폭스뉴스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섹스 스캔들, 힐러리 클린턴의 고액 강연료 의혹, 오바마 전 대통령의 출생 관련 의혹을 하루 종일 방영했다. 데이비드 액설로드 오마바 전 대통령 보좌관은 “밤낮으로 오바마 대통령을 악의 황제로 그렸다”고 몸서리쳤다.

인종적, 종교 편향 보도로 이라크전을 선동하고 무슬림계 미국인들에 대한 대중의 의심을 부추겼다는 비판을 받았다. ‘편파 방송’이라는 비판에는 “우리가 우파만 본다면 그건 다른 미디어들이 좌파만 보기 때문”이라고 응수했다.

아일스는 1940년 오하이오주 워런에서 팩커드 전기 회사 현장 감독이던 로버트 아일스와 가정주부인 도나 아일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오하이오대를 졸업하고 지역 방송 프로듀서로 출발, 1993년 CNBC 회장이 됐다.

“뉴욕과 할리우드의 미디어 엘리트들은 자기들이 믿는 것만 믿는다. 여론을 지배하는 그들은 서민들을 촌뜨기, 속물들이라 경멸하고 그들의 애국심을 증오한다. 하지만 나는 그들을 사랑한다.”

“가난해서 컬럼비아대 저널리즘 스쿨에 가지 못했다”고 입버릇처럼 말한 그는 ‘서민의 대변자’ ‘노동자 계급의 투사’를 자처했다.

빌 오라일리 등 보수 논객들을 전면에 배치, 민주당 일변도의 미디어 지형에 불만을 가진 공화당 지지층의 박수를 받았다. 금발 미인을 전면에 내세우고 과감한 그래픽과 현란한 음향을 적극 사용, 정통 뉴스의 틀을 깼다. “뉴스를 예능으로 변질시켰다”는 비판에 대해 “방송은 뉴스와 예능의 경계선 위에 있어야 한다”며 피해 갔다.


“미국 여론 분열의 주범” 비판

그는 흥분하면 외설스러운 욕설을 내뱉고 조종실 벽에 구멍이 생길 정도로 주먹을 휘두르는 다혈질 성격으로 ‘폭군’이라 불렸다. 경쟁사인 CNN을 ‘클린턴 뉴스 네트워크(Clinton News Network)’, CBS를 ‘공산당 방송(Communist Broadcasting Service)’이라 조롱하는 등 거침없는 입담으로 ‘미국 여론 분열의 주범’ ‘선전 기계가 된 방송의 지배자’라는 악명을 달고 살았다.

조지 부시의 선거 책임자였던 리 애트워터(Lee Atwater)조차 “그는 공격과 파괴라는 두 개의 스피드를 가진 사람”이라 말했을 정도다.

트럼프 대통령 선거 자문을 하던 아일스는 2016년 7월 회장에서 물러났다. 해고된 뉴스 호스트 그레첸 칼슨이 “성관계 요구를 거부하자 아일스가 임금을 깎고 해고했다”고 말했고, 전직 여직원 5명이 잇따라 성희롱 피해를 주장했다. 프로그램에서 막 하차한 메긴 켈리는 “10년 전부터 아일스가 승진 대가로 잠자리를 요구했다”고 증언, 결정타를 날렸다. 아일스는 켈리의 주장을 부인했지만 이틀 만에 사임했다. 그레첸 칼슨과는 2000만달러에 합의했다.

그래서일까? 1998년 빌 클린턴 대통령 성추문 사건의 당사자인 모니카 르윈스키는 5월 22일 자 뉴욕타임스 기고를 통해 “폭스뉴스는 24시간 내내 나의 성격, 외모, 일상을 따로 떼내 무자비하게 보도했다. 폭스의 성공을 보고 다른 채널들이 밑바닥 경쟁에 뛰어들었고, TV는 현대판 콜로세움(격투장)으로 변했다”며 "그의 부음이 그가 만든 (선정적이고 편향적인 뉴스) 문화의 부고가 되길 바란다”고 썼다.

뉴욕타임스는 “아일스가 여론은 분열됐지만 미디어는 아직 분열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미디어를 쪼개기로 결심했으며 성공했다”며 “분명 민주당이나 공화당보다 더 큰 정치적 영향력을 가진 인물이었다”고 평가했다.

1998년 CNBC 프로그램 디렉터였던 엘리자베스 틸슨과 세 번째 결혼, 60세 되던 2000년 아들을 얻었다. 향년 77세.


Plus Point

아일스 낙마시킨 메긴 켈리, 6월부터 NBC에서 진행

아일스 퇴진의 주역인 메긴 켈리(Megyn Kelly·47)는 폭스뉴스의 간판 여성 앵커였다. 올버니 소재 뉴욕주립대(SUNY Albany) 법대를 나와 시카고에서 9년간 변호사로 일한 켈리는 2001년 폭스뉴스에 방송 데모 테이프를 보냈다. 언론인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한눈에 켈리의 가능성을 알아본 아일스 회장이 발탁, ‘평생 멘토’를 자처했다.

“여성을 ‘뚱뚱한 돼지’ ‘역겨운 동물’로 부르지 않았습니까?” (켈리)

“로지 오도넬(코미디언)한테만 그랬지요.”(트럼프)

“다른 방송에서도 그랬는데요. 이게 우리가 대통령으로 선출할 남자의 기질일까요?” (켈리)

“….” (트럼프)

켈리는 2015년 8월 2400만명이 지켜본 공화당 대선 후보 첫 TV 토론회에서 트럼프 후보의 여성 비하 발언을 지적, 단숨에 페미니즘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약이 오른 트럼프가 이튿날 CNN에서 ‘빔보(bimbo·섹시하지만 지성이 없는 여성을 비하하는 속어)’라고 비난하자 ‘볼드모트(Voldemort·소설 ‘해리포터’에 나오는 악당)’라고 받아쳤다.

켈리는 2017년 1월 NBC로 이적을 발표했고, 6월부터 방송을 진행한다. 연봉은 1500만달러(약 170억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2016년 11월 출간한 첫 회고록의 사전 원고료가 1000만달러에 달해 화제가 됐다.

바바라 월터스, 오프라 윈프리가 은퇴하고 케이티 쿠릭과 다이앤 소여가 주춤하는 최근 미국의 방송 지형에서 ‘미모·지성·용기의 3박자’를 겸비한, 떠오르는 스타 앵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