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맏사위인 자레드 쿠시너 백악관 수석 고문이 러시아 커넥션으로 위기에 몰렸다. <사진 : 블룸버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맏사위인 자레드 쿠시너 백악관 수석 고문이 러시아 커넥션으로 위기에 몰렸다. <사진 : 블룸버그>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맏사위 자레드 쿠시너(Jared Kushner·36) 백악관 수석 고문이 ‘러시아 커넥션’ 의혹의 핵심 인물로 떠올랐다.

워싱턴포스트는 5월 26일 “쿠시너가 지난해 말 키슬랴크 주미 러시아 대사와 극비 회동, 미국과 러시아의 비밀 채널을 구축하자고 제안했다”고 보도했다. 뉴욕타임스는 “최소 세 명의 관리로부터 쿠시너가 키슬랴크 대사와 만난 사실을 확인했다”며 “만약 미국 첩보원이었다면 반역죄로 처벌받았을 것”이란 존 맥라클란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대행의 코멘트를 소개했다. 로이터통신은 5월 27일 “쿠시너가 2016년 4월부터 1년간 두 번의 전화 통화를 포함, 최소 세 차례 러시아 대사와 접촉한 사실이 추가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민주당은 “쿠시너를 해임하라”며 트큼직막럼프를 압박하고 있다.


“러시아 인물 접촉한 뒤 보고 안 해”

쿠시너는 대통령직 인수위원이던 2016년 12월 세르게이 고르코프 브네시코놈뱅크(VEB) 회장, 세르게이 키슬랴크 주미 러시아 대사와 만나고도 정부에 보고하지 않은 혐의를 받고 있다. 브네시코놈뱅크는 국제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 국영은행이다. “외교 행사에서 잠시 만난 것일 뿐”(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 “부동산 투자를 논의했다”(고르코프 회장)는 해명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을 수사 중인 특검 수사를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백악관 수석 고문, 대통령 직속 미국 혁신위원회 위원장을 겸하고 있는 쿠시너가 트럼프 정권의 인사·정책·정보를 쥐고 있다는 분석에는 이견이 없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 지명, 대통령직 초대 인수위원장이던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의 인수위 축출, 심지어 시리아에 대한 미사일 공격도 쿠시너 작품이란 분석이 나온다. 제임스 코미 연방수사국(FBI) 전 국장의 전격 경질도 쿠시너의 입김이 작용한 ‘기획 작품’이란 의혹이 일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사우디아라비아의 1000억달러(약 113조원) 무기 거래 협상 당시 쿠시너가 록히드마틴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레이더 가격을 조금 낮춰달라’고 요청한 뒤 막혔던 거래가 뚫렸다”고 했다.

194㎝의 훤칠한 키에 잘생긴 외모의 쿠시너는 1981년 미국 뉴저지 리빙스턴에서 유대인 부동산 억만장자인 찰스 쿠시너와 셰릴 쿠시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제2차세계대전 당시 유대인 대학살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였던 친할아버지 조셉 쿠시너는 1949년 소련 벨라루스에서 미국으로 이민, 뉴욕에 정착했다.

정통 유대인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쿠시너는 1999년 하버드대(행정학 전공)에 입학했다. 아들의 대학 입시를 한 해 앞둔 1998년 부친이 250만달러(약 28억원)를 하버드에 기부한 사실이 알려져 ‘돈을 주고 입학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가디언은 “평범한 학생이었던 자레드의 하버드 입학은 뉴저지에 2만5000개의 아파트, 사무실, 공장을 소유한 억만장자 아버지의 엄청난 기부 덕분”이라고 보도했다. 쿠시너는 2007년 뉴욕대에서 법학박사(J.D)와 경영학석사(MBA) 학위를 받고 뉴욕 검찰청에서 잠시 인턴 생활을 했다.

쿠시너는 대학 재학 중에 부친 등의 도움을 받아 매사추세츠주 빌딩에 투자해 2000만달러(약 226억원) 이익을 냈고, 이 돈으로 2006년 ‘뉴욕 옵서버’를 1000만달러(약 113억원)에 인수했다.


옛 소련계 부동산 억만장자 출신

당시 뉴욕 옵서버 편집장 피터 카플란은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도 모르는 애(guy)가 회사를 샀다”며 회사를 떠났다. 쿠시너가 인수한 뉴욕 옵서버는 “경쟁 부동산 회사를 공격하는 선전 도구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쿠시너는 올 초 백악관 수석고문으로 부임할 때까지 발행인 자리를 지켰다.

2004년 든든한 후원자였던 아버지 찰스 쿠시너가 탈세, 불법 기부 혐의 등으로 체포돼 2년형을 선고받는 등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찰스 쿠시너는 매춘부를 고용한 뒤 자신의 불법 행위를 증언하려는 매형에게 접근시켜 비디오를 촬영해 이를 누이에게 보낸 혐의(증언 조작)도 받았다. 2006년에는 그의 삼촌도 수사를 받고 3년형을 선고받았다.

2007년에는 뉴욕 맨해튼 5번가 666번지, ‘티시먼 빌딩’을 18억달러(약 2조원)에 구입했다가 금융 위기의 여파로 자금난을 겪었다. 일부 지분을 10억달러에 매각, 간신히 위기를 넘겼지만 9000만달러의 손실을 봤다고 현지 언론은 보도했다.

2014년 뉴욕과 볼티모어에서 1만1000개 이상의 사무실과 아파트를 구입하고, 2015년 5월 ‘광고 빌딩’으로 유명한 뉴욕 타임스퀘어 지분 51%를 2억9500만달러(약 3300억원)에 구입했다. ‘헤지펀드의 황제’ 조지 소로스와 골드만삭스 등 유대인 자본이 자금을 댔다.

평생 민주당원이었지만 선거에 참여한 적이 없었던 쿠시너는 지난 대선에서 트럼프 진영의 디지털과 소셜미디어 선거전을 지휘했다. 실리콘밸리의 인재 100명을 스카우트, ‘알라모 프로젝트’를 운영하면서 트럼프를 외면한 주류 미디어 대신 유권자들을 직접 공략했다.

운 좋은, 억만장자 상속자에 불과(?)했던 쿠시너가 거대한 권력 폭풍의 한가운데로 간 계기는 트럼프의 딸 이반카 트럼프(36)와의 만남이었다.

2005년부터 공개 데이트를 하던 두 사람은 2008년 쿠시너 부모의 반대로 한때 결별을 선언하는 등 우여곡절 끝에 2009년 10월 결혼했다.

침례교인이던 이반카는 유대교로 개종했고 아들 둘, 딸 하나를 뒀다. 쿠시너 부부 재산은 7억4000만달러(약 8400억원)로 알려져 있지만 “10억달러의 부채를 숨기고 있다”(워싱턴포스트)는 보도도 있다.

뉴욕은 ‘유대인의, 유대인을 위한, 유대인들에 의한 도시’로 자주 언급된다. 유대인 이민자들이 맨해튼을 건설했고, 유대인 자본이 월스트리트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소련 이민자 출신, 임대 사업으로 돈을 번 유대인 부동산 재벌 등 쿠시너의 러시아 커넥션 의혹은 음모론이 자라기 좋은 토양을 제공한다. 쿠시너 집안과 러시아 유대인 지배층의 연계, 트럼프와 푸틴의 밀월 관계 등은 다인종 사회인 미국에선 폭발력이 강한 뇌관이다. “유대인에 대한 낡은 편견과 신화를 이용하지 마라”는 거센 반격이 나오는 이유다.

헨리 키신저는 “쿠시너는 아주 똑똑한 청년”이라며 “태양 주위를 가까이 나는, 어려운 일에 성공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권력의 정점에서 추락한 그리스신화 속 이카루스의 비극을 극복할지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Plus Point

운명의 맨해튼 5번가 666번지

쿠시너 가문이 매입한 ‘티시먼 빌딩’ .
쿠시너 가문이 매입한 ‘티시먼 빌딩’ .

쿠시너 가문이 유명세를 탄 것은 2007년 맨해튼 5번가 666번지 빌딩을 18억달러에 구입하면서부터다. 티시먼 부동산 회사가 1957년 건축, ‘티시먼 빌딩’으로 불리는 이 빌딩은 연면적 14만㎡(약 4만2000평)에 41층이지만 맞은편에 록펠러센터가 있는 등 위치가 좋아, 거래 당시 뉴욕의 부동산 거래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다.

유명 건축가 이사무 노구치가 건축에 참여했고, 1990년대 일본의 스미토모상사가 록펠러센터와 함께 구입했다가 2000년 티시먼그룹에 되팔았다. 올 3월 자하 하디드 건축이 2025년까지 120억달러(약 13조6000억원)를 들여 40층을 증축하는 리노베이션 계획을 밝혔다. 중국 보험사가 28억5000만달러에 사겠다고 제안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차이나 커넥션’의혹도 불거졌다. 오랫동안 건물 외벽에 붙어 있던 큼직막한 ‘666’ 로고로 유명했으나 ‘악마의 저주를 연상하는 숫자(666)’라는 지적이 많아 2002년부터 시티그룹 로고로 바꿨다. 시티그룹이 최대 임차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