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창업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화합보다 갈등을 옹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진 : 블룸버그>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 창업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화합보다 갈등을 옹호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사진 : 블룸버그>

“불길하다. (세계적으로) 감정적 갈등이 격화되고 있다. 이런 추세가 부정적인 나선형 궤도를 그리면서 세계 경제에 악영향을 줄까 정말 걱정된다.”

‘헤지펀드 제왕’ 레이 달리오(Ray Dalio·58)가 최근 트럼프 미 행정부와 국제 정세에 대해 우려하는 발언을 부쩍 자주 쏟아내고 있다.

달리오는 6월 9일 링크드인 포스트를 통해 “세계의 경제, 사회, 정치가 양극화로 치닫고 있다. 부와 기회의 불평등으로 인한 경제적 스트레스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제2차세계대전 직전 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달리오는 “이는 갈등을 부추기는 포퓰리스트가 출현하기 좋은 토양”이라며 “역사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독재가 출현하고 전쟁이 일어난 적도 있다”고 우려했다. 달리오는 “미국의 여러 상황과 (보수당이 패배한) 영국의 총선 결과는 비능률적인 정치가 갈등을 증폭시키고 있음을 보여 준다”고 우려했다.

달리오는 “새 대통령이 사람들의 야성적 충동에 불을 붙이고 생산적인 자본을 끌어들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가 2016년 11월 대통령에 당선되자 그는 “트럼프가 당선되면 금융 시장이 위축될 것”이라는 이전의  부정적인 전망을 바꿨다.

“트럼프 행정부가 ‘공격적이고 사려 깊은’ 정부가 될지, ‘공격적이고 무모한’ 정부가 될지는 아직 모르지만 앞으로 4년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흥미진진할 것”이라는 단서를 달았지만 ‘투자 부적격’ 전망을 철회하고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았다.

달리오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을 (민주당) 지미 카터가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으로 바뀐 것에 비유했다. 달리오는 “트럼프의 집권은 1979~82년 마거릿 대처, 로널드 레이건, 헬무트 콜 등 자본주의자들이 영국, 미국, 독일에서 사회주의자들을 물리치고 집권한 것과 같다”고 했다. 미국과 유럽이 1970년대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 1980~90년대 장기 호황으로 진입한 역사적 변곡점이 될 수 있다는 기대였다.


“코미는 십자가에 못 박힌 영웅”이라며 분개

달리오의 희망이 절망으로 바뀐 계기는 트럼프 대통령의 파리 기후변화 협약 탈퇴 결정과 ‘러시안 커넥션’ 수사를 주도하던 제임스 코미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전격 경질로 보인다.

달리오는 6월 5일 “트럼프는 화합보다 갈등, 전체(미국 경제)의 이익보다 편협한 이익(제조업)을 옹호했다. 미국 전체를 대표해야 하는 대통령직을 망가뜨렸다”며 “포퓰리스트적인 결정”이라 비판했다.

코미 경질 직후(5월 10일)에는 “제임스 코미와 2년 반 동안 함께 일했다. 그는 고결한 영웅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고 했다.

달리오는 “코미는 저급한 환경에서 일한 고결한 사람이었다. 이런 경우 통상 영웅이 십자가에 못 박히고 희생양이 된다”고 분개했다.

FBI 국장이 되기 이전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고문(2010~2013년)으로 일한 코미는 “브리지워터 근무는 매우 힘들었다. 최고로 똑똑한 사람들이 모인 회사에서 어떤 경우에도 진실만 말해야 하는 문화였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달리오는 1600억달러(약 180조원)를 굴리는 세계 최대 헤지펀드사인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의 창업자이자 최고투자자(CIO·Chief Investment Officer)다. 연금, 기금, 보험 등 기관 투자자들을 주로 상대하기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투자자들의 감탄과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인물이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의 단골 연사이자 글로벌 금융 엘리트 네트워크의 중심을 차지한 ‘수퍼 허브’로 꼽힌다. 1975년 회사 창립 이후 해마다 경이적인 수익을 올려 기관 투자자들이 항상 그의 발언에 눈을 반짝인다.

달리오는 2008년 글로벌 경제 위기를 예측, 리먼브러더스 등 월스트리트의 내로라하는 투자자들이 퍽퍽 나가떨어질 때 나홀로 고수익을 올리며 승승장구했다.

2010년 구글, 이베이, 야후, 아마존의 수익을 모두 합한 것보다 더 많은 이익을 냈고 2011년 수익 138억달러(약 16조6000억원)를 올려 조지 소로스를 제쳤다.

큰 키에 친근한 인상이지만 경제 현상에 대한 예리한 통찰과 카리스마 넘치는 경영 스타일로 알려져 있다. 소수의 가치주에 집중 투자하는 워런 버핏과 달리 상관 관계가 적은 수십 개의 투자 대상에 대한 분산 투자로 수익률을 시장 평균보다 5배까지 높인 것으로 유명하다.

회사 본사를 뉴욕 월스트리트가 아닌 코네티컷주 웨스트포트의 나무가 우거진 숲에 두고 매일 20분씩 명상을 하며 경제, 기업, 사람의 움직임을 기계 작동에 비유하는 사상을 피력, ‘철학적 투자자’로 불린다. 카리스마 넘치는 스타일, 숲 속에 본사를 둔 특이한 결정, 독특한 기업 문화를 들어 ‘사교 집단의 교주 같다’는 비아냥대는 말을 듣기도 한다.


녹화·전화 녹음 등 직원 감시 논란

특히 ‘극단적 투명성’을 강조하는 브리지워터의 기업 문화는 논란의 대상이다.

사무실 천장에 달린 카메라가 직원들의 행동을 녹화하고 직원들의 이메일도 감시 대상이다. 직원들의 통화는 전부 녹음되고 ‘투명성 도서관’에 저장돼 다른 직원들이 녹음 내용을 들을 수 있다.

직원들이 말한 이견은 ‘쟁점 노트’에 기록되고 평가돼 ‘신뢰성 지수’가 만들어지고 상사, 동료, 부하를 비난하거나 소문을 만들거나 유포하는 행위는 철저히 금지된다. 대신 직원들은 공개 회의에서 도전적인 질문을 통해 동료들의 관점을 공격하도록 요구받는다. 중앙정보국(CIA)과 국가안보국(NSA) 출신 직원들이 빅데이터 회사 팔란티어가 개발한 프로그램의 도움을 받아 직원들의 행동을 일일이 분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광범위한 감시 환경 때문에 입사 18개월 이후 퇴직률이 25%나 되지만 한 번 적응하면 회사를 거의 떠나지 않는다고 한다. 오히려 넉넉한 보상과 어디에서나 통하는 화려한 경력을 따기 위해 최고 대학 출신 엘리트들이 입사하려고 안달이라고 한다.


Plus Point

생전에 재산 절반 기부 서약

레이 달리오는 나무가 우거진 숲에 있는 사무실에서 명상하는 것을 즐긴다.
레이 달리오는 나무가 우거진 숲에 있는 사무실에서 명상하는 것을 즐긴다.

레이 달리오는 뉴욕 퀸즈의 잭슨하이츠에서 재즈 뮤지션인 마리오 달리오의 아들로 태어났다. 마리오 달리오는 맨해튼 재즈클럽인 코파카바나 등에서 색소폰과 클라리넷을 연주했다.

레이 달리오는 12살 때 노스이스트항공 주식에 300달러를 투자, 3배 넘는 수익을 남기는 등 어려서부터 주식 투자에 재능을 보였다. 롱아일랜드의 C.W.포스트 칼리지(1971년 졸업)와 하버드 경영대학원(MBA·1973년 졸업)에서 공부했다.

뉴욕 증권거래소, 도미니크 앤드 도미니크 등에서 경험을 쌓은 뒤 1975년 코넷티컷 웨스트포트의 작은 아파트에서 브리지워터 어소시에이츠를 설립했다.

1976년 바버라 달리오와 결혼, 아들 넷을 두고 있다. 장남 폴 달리오는 영화감독, 둘째 아들 매튜 달리오는 스마트폰 소프트웨어 회사인 엔드레스 모바일 회장이다.

개인 재산 168억달러(약 18조9000억원·2017년 2월 기준)로 ‘포브스’ 선정 미국 부자 순위 26위, 세계 부자 순위 54위다.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사 100인’(2012년)에도 선정됐다.

명상을 즐기고, 소박한 생활로 유명하며 부인과 함께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주도의 ‘기부 서약(Giving Pledge)’ 운동에 동참, 생전에 재산의 절반을 기부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