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피아나 스파이같이 은밀하게 활동하는 조직이 헝가리의 번영과 안녕을 위협하고 있다. 바로 소로스 네트워크(Soros Network)다. 헝가리 국민들은 이 조직이 누구를 위해, 무엇을 위해 활동하는지 알 권리가 있다.”
빅토르 오르번(Viktor Orban) 헝가리 총리는 지난 4월 헝가리 출신 ‘헤지펀드 황제’ 조지 소로스(87) 퀀텀펀드 창립자를 ‘악의 축’에 비유하며 맹비난했다.
오르번 총리는 “소로스와 그의 단체(열린 사회 재단·Open Society Foundations)가 헝가리를 무슬림 이민자들의 천국으로 만들려 한다. 그들은 현재 헝가리에서 일어나는 모든 혼란의 배후 세력”이라고 비판했다.
동유럽에 소로스 반대운동 확산
오르번 총리의 비난은 말로 끝나지 않았다. 헝가리 의회는 6월 13일 비정부단체(NGO)가 외국 자본의 지원을 받았을 경우 이를 공개하고 외국 기관에 신고토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소로스의 ‘열린 사회 재단’을 겨냥한 것으로 ‘반소로스 법’으로 불린다.
조지 소로스가 유럽의 정치와 사회 혼란을 부추기는 ‘공공의 적’으로 집중 공격을 받고 있다고 뉴욕타임스 등이 최근 보도했다.
데일리 메일도 “반이민 정서에 편승한 동유럽 우파 민족주의 지도자들이 개방적인 이민 정책 등 자유주의 사상의 확산을 추진하는 소로스와 소로스의 ‘열린 사회 재단’에 대한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반대자들은 “미국의 유대인 억만장자, 조지 소로스가 동유럽 이민 위기를 조장하고 마케도니아 쿠데타와 헝가리·루마니아 시위를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다”고 선동하고 있다.
소로스에 대한 공격은 아이러니하게도 모국인 헝가리에서 극심하다. 경기 침체에다 뿌리 깊은 반유대주의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소로스 반대 시위가 빈발하고 있다. ‘헝가리의 트럼프’라 불리는 오르번 총리가 소로스 공격을 주도하고 있다. 소로스는 오르번 총리 집권 이후 “오르번이 헝가리를 마피아 국가로 만들고 있다”고 비난했고, 오르번 총리는 “헝가리에 대한 전쟁 선포”라며 발끈했다.
다른 동유럽 국가들에서도 소로스 반대 운동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 1월 마케도니아에서는 ‘소로스는 마케도니아 분열 공작을 즉각 중단하라’는 대중 시위가 일어났다. 니콜라스 그루에브스키(Nikolas Gruevksi) 마케도니아 전 총리는 “탈소로스화(de-Sorosisation)야말로 마케도니아가 번영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야로슬라프 카친스키(Jaroslaw Kaczynski) 전 폴란드 총리와 루마니아 우파 정치인들도 “소로스가 동유럽을 정체성 없는 사회로 만들려고 한다. 소로스가 악의 세력에 돈과 사상을 지원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소로스를 자유주의 시위의 배후로 지목, 2015년 소로스와 관련된 모든 재단의 활동을 금지했다. ‘열린 사회 재단’의 유라시아 총괄인 레오나르드 베나르도(Leonard Benardo)는 “자유주의에 반대하는 움직임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최근 그 강도가 유례없이 강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우파들도 소로스를 집중 공격하고 있다. 골수 민주당 지지자인 소로스는 미국의 극우 인터넷 매체 ‘브라이트바트 뉴스(Breitbart News)’의 단골 공격 메뉴다. 이 매체의 창립자는 스티브 배넌(Steve Bannon)이다. 배넌은 ‘소로스 저격자’를 자처하며 “위대한 미국의 재건을 막는 거짓 자선 사업가 소로스를 체포하라’는 온라인 청원을 주도해, 무려 6만 명의 지지 서명을 받았다.
트럼프 당선 이후 10억달러 손실
트럼프의 대통령 당선은 소로스에게 뼈아픈 패배다. 2004년 부시 대통령 낙선 운동을 주도한 소로스는 작년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에게 2300만달러(약 260억원)를 지원했지만 트럼프 당선을 막지 못했다.
트럼프 당선 이후 배넌은 백악관 최고전략책임자가 됐고 반이민 정책, 파리 기후 변화 협약 탈퇴 결정 등을 주도하고 있다. 소로스는 트럼프 당선 이후 증시 폭락을 예상하고 주식을 팔았다가 10억달러(약 1조1400억원) 손실을 본 것으로 알려졌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태생인 소로스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홀로코스트)과 소비에트의 헝가리 침공 등 전체주의의 억압에서 살아남은 생존자다.
소로스는 역사상 가장 성공한 ‘펀드 매니저’로 유명하지만 전체주의에 반대하고 자유주의 사상을 옹호하는 ‘행동하는 경제인’이다. 1970년대부터 재단을 설립, 자유주의 사상을 연구하고 지원했다. 옛 소련이 해체되고 동유럽의 자유화 물결이 한창이던 1993년 공산주의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나라들을 돕기 위해 ‘열린 사회 재단’을 설립했다. 재단 이름도 사상적 스승인 카를 포퍼의 명저,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따왔다. 현재 37개국에 지부를 둔 ‘열린 사회 재단’은 창립 이후 동유럽 민주화 운동 등 사회 정의 확립, 교육, 공공 의료, 독립 언론 지원에 110억달러(약 12조5000억원)를 쓴 것으로 알려졌다.
2002년 조지아 공화국, 2004년 우크라이나, 2005년 키르기스스탄 등 옛 소련 국가들을 휩쓴 ‘컬러 혁명(민중봉기)’ 과정에서 민주주의 단체들을 적극 지원했다. 2014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저지하기 위해 10억달러를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유민주주의를 ‘서방 세계의 바이러스’쯤으로 여기는 푸틴 등 러시아와 동유럽 우파 지도자에게는 눈엣가시 같은 존재다.
소로스는 지난 3월 “러시아는 열린 사회와 양립할 수 없는 정부 개념을 가지고 있다”며 푸틴을 비난하고, “타인에 대한 두려움 없는 사회가 어떤 피해를 주는지 나는 알고 있다”며 자신에 대한 공격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6월 20일에는 “영국의 브렉시트 투표는 모두를 패배자로 만드는 결정”이라며 “영국과 유럽이 이혼에 합의하기도 전에 재결합을 원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가장 성공한 펀드 매니저

1930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유대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소로스는 1947년 반유대주의와 소비에트 전체주의를 피해 영국으로 이민 후, 런던정경대(LSE)에서 학사와 석사학위(철학)를 땄다. 당시 런던정경대 교수였던 칼 포퍼의 자유주의 사상에 큰 영향을 받았다. 상업은행에서 경험을 쌓은 뒤 1956년 미국 뉴욕으로 이주했다.
1969년 ‘더블 이글(이후 퀀텀펀드로 개명)’을 설립하고 그 이익으로 소로스 펀드 매니지먼트를 차렸다. 1992년 11월 100억달러(약 11조원)를 동원해 영국 중앙은행을 굴복시키면서 단숨에 10억달러를 벌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퀀텀펀드는 1973년 소로스가 짐 로저스와 함께 설립한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헤지펀드인데, 2011년 이후 소로스의 개인 자산만 관리하고 있다.
소로스의 개인 자산은 244억달러(약 27조8000억원·2017년 6월 현재)로 블룸버그 선정, ‘세계 억만장자 순위’ 28위에 올라 있다.
두 번의 이혼 끝에 2013년 42살 연하인 타미코 볼튼과 결혼했다. 장남인 로버트 다니엘 소로스는 부다페스트의 중앙유럽대학 창립자, 둘째 아들인 안드레아 소로스 콜롬벨은 트레이스 펀드 창업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