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로운 해결사(Mr. Fixit)’가 비틀거리는 GE를 구원할 수 있을까?’
125년 역사를 가진 미국의 간판 기업 제너럴일렉트릭(GE)의 제프리 이멜트(61) 회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물러난다. 2001년 ‘수소폭탄 잭’으로 불린 잭 웰치 전 회장의 후계자로 화려하게 등장한 이멜트 회장은 16년간 GE를 이끌며 미국 S&P 500대 기업 최장수 CEO로 군림했다.
GE는 6월 17일 “존 플래너리(55) GE 헬스케어 부문 대표가 오는 8월 1일부터 이멜트 회장의 뒤를 잇는다. 플래너리 대표는 내년 1월 1일 GE 회장직도 맡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GE는 “이번 인사는 2011년부터 진행 중인 승계 계획의 결과”라고 밝혔지만 ‘포브스’ 등 주요 외신은 최근 부진한 GE의 주가에 불만을 품은 일부 주주들의 공격 때문이라고 전했다.
퇴임이 결정된 이멜트 CEO 겸 회장은 “플래너리는 GE를 이끌 적임자다. 강인한 리더십, 탁월한 판단력, 유연성을 갖췄다”며 “비즈니스는 완벽의 게임이 아니라 진전의 게임”이라는 덕담을 건넸다.
이멜트 회장은 어찌 보면 비운의 경영자다. GE의 전성기를 이끈 잭 웰치 전 회장의 후계자인 탓에 잭 웰치 전 회장과 끊임없이 비교당하며 저평가되는 수모를 겪었고, 잭 웰치 전 회장이 친 사고들을 수습하기 위해 정력과 시간을 쏟아야 했다.
경제 호황기였던 1980년대부터 20년간 GE를 이끈 잭 웰치 전 회장은 재임 중 1700건 이상의 기업 인수·합병(M&A)을 진두지휘하면서 미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이란 명성을 쌓았고, 주가도 한껏 끌어올렸다.
하지만 문어발식으로 확장한 사업들은 잭 웰치 전 회장이 물러나기 이전부터 삐걱대기 시작했고, 이멜트 회장이 취임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이멜트 회장은 결국 수익성 나쁜 기업들에 대한 고강도 구조조정을 진행하면서 거대 기업 GE를 구할 새 사업을 발굴해야 하는 난제를 떠안았다.
‘비운의 황제’ 이멜트 회장, 쓸쓸한 퇴장
이멜트 회장은 2005년 보험 부문을 68억달러(약 7조7500억원)에 팔고 100년 전통의 가전 사업부를 중국 하이얼에 매각했다. 한때 GE 이익의 절반을 가져다 줬던 GE캐피털을 2015년 웰스파고 은행에 팔았다. 이멜트 회장 손으로 처분한 자산 규모가 2600억달러(약 296조원)나 된다. 이멜트 회장이 언론과 인터뷰를 통해 “내가 물려받은 회사의 3분의 2 정도를 판 것 같다”고 한탄했을 정도다.
이멜트 회장이 새 성장 동력으로 발굴한 분야는 디지털 정보처리, 신재생에너지, 생명과학이다. 2016년 GE 매출의 90% 이상이 항공 엔진, 에너지, 헬스케어, 발전, 재생에너지 등 신사업에서 나왔다. 덕분에 ‘굴뚝 기업’의 대명사로 불리던 GE는 이멜트 회장 체제하에서 하이테크 기업으로 탈바꿈하는 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하지만 상당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미끄러지는 주가를 되돌리지는 못했다. 2001년 취임 당시 40.98달러였던 주가가 2016년 6월 12일 28달러대로 떨어졌다.
올해 S&P 500 지수가 8.6% 상승하는 동안 GE 주가는 12% 하락했다. 결국 ‘이멜트 회장이 GE를 이끈 16년간 회사 주가가 38%나 하락했다. 쇄신이 필요하다’는 주주들의 사임 압력에 굴복했다.
뉴욕타임스는 “이멜트 회장은 요란했던 전임자 잭 웰치의 광채에 가려 재임 내내 저평가됐다. 하지만 그가 더 단단한 GE를 만들었다는 데 누구도 이의를 달 수는 없다”고 평했다.
이멜트 회장의 후계자로 지목된 존 플래너리 차기 CEO는 1987년 GE에 입사, 30년 만에 정상에 올랐다. 사내에서 ‘해결사(Mr. Fix-it)’ ‘주술사(rainmaker)’로 불릴 정도로 탁월한 성과를 냈다고 GE는 밝혔다.
플래너리 차기 CEO는 제프 베른슈타인 최고 재무책임자(CFO), 스티브 볼스 GE 전력 부문 CEO, 로렌조 시모넬리 GE 석유·가스 부문 CEO 등 쟁쟁한 경쟁자들과 함께 혹독한 내부 평가를 받았고 경험, 리더십, 대인관계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아 이사회의 최종 낙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플래너리 차기 CEO는 1962년 버지니아주 알렉산드리아에서 연방예금보험공사(FDIC) 간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983년 페어필드대 둘란 비즈니스스쿨을 졸업하고 1987년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받고 GE에 입사한 뒤 줄곧 GE에서만 근무한 ‘정통 GE맨’이다.
입사 초기에는 GE캐피털에서 저평가된 자산을 매매하거나 사업 리스크를 분석하는 업무를 주로 맡았고, 기업 구조조정과 M&A에서 수완을 발휘했다고 한다.
한국 등 해외 경험 풍부, 성과 탁월
1997년 이후 아르헨티나, 칠레 등 라틴 아메리카에서 근무했고 2002년 GE에쿼티 CEO에 임명됐다. 2005년 GE캐피털의 아시아·태평양 담당 본부장으로 일본, 한국, 호주, 인도 사업을 총괄했다. 일본에서 100%, 한국에서 30% 수익을 늘리는 등 실적을 올리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2013년 이후 GE의 기업 인수 역사상 최고액인 170억달러(약 19조원)짜리 프랑스 알스톰 전력 사업 인수를 주도했다.
2014년 10월 GE헬스케어 CEO로 임명된 뒤 자기공명영상(MRI), 컴퓨터단층촬영(CT) 등 의료 기기 판매 중심이던 회사를 종합 의료 컨설팅 회사로 성공적으로 변신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플래너리 차기 CEO는 임명 발표 직후 “회사 전체를 새로운 시각으로 살펴보겠다. 절박한 심정으로 철저히 검토하겠다”며 “직원, 투자자, 파트너 등 사람들을 두루 만나는 일부터 시작하겠다”고 밝혔다.
메이저리그 야구팀인 보스턴 레드삭스와 록 그룹 올 맨 브러더스 밴드의 열성 팬으로 알려져 있으며, 부인 트레이시 플래너리 여사와의 사이에 2남1녀를 두고 있다.
이멜트 축출 주역은 넬슨 펠츠

GE를 16년간 이끈 이멜트 회장의 장기 집권을 끝낸 인물은 넬슨 펠츠(75·Nelson Peltz) 트라이언펀드매니지먼트 CEO라고 ‘포브스’ 등 주요 외신이 전했다.
뉴욕에 본사를 둔 트라이언펀드는 2015년 이멜트 회장의 권유로 GE 주식 25억달러(약 2조8000억원)어치를 매입했다. 하지만 투자 이후 주가가 오르지 않자 “이멜트 회장으로는 안 된다”며 이멜트 회장을 몰아붙였고 결국 항복을 받아냈다. 이멜트 회장은 트래비스 칼라닉의 사임으로 자리가 빈 ‘자동차 공유 기업’ 우버 CEO로 거론되고 있다.
130억달러(약 14조8000억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트라이언펀드는 뉴욕 멜런은행, 듀폰, 멘데레스 인터내셔널 등의 주요 주주다. 2016년 트라이언펀드가 보유한 대형 레스토랑 체인 시스코 주식이 37%, 웬디스 주식이 27% 오른 반면, GE 주가가 떨어지자 이멜트 회장 교체를 추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트라이언펀드는 최근 프록터 앤드 갬블(P&G) 주식 보유를 30억달러(약 3조4000억원)로 늘려 경영진을 압박하고 있다고 ‘포브스’는 전했다.
공격적인 투자로 유명한 펠츠의 개인 자산은 15억달러(약 1조7000억원)로 미국 부자 순위 432위에 올라 있다. 펠츠는 세 번의 결혼을 통해 8명의 자녀를 두고 있는데 딸 니콜라 펠츠(22)와 아들 윌 펠츠(31)가 영화배우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