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Artificial Intelligence) 기술의 선두 주자는 누구일까?’
‘4차 산업혁명’의 성패를 가를 핵심 기술로 꼽히는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 돈과 인재가 몰리고 있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삼성, 마이크로소프트(MS), IBM, GE, 테슬라, GM 등 글로벌 거대 기업들이 사활을 건 기술 전쟁을 벌이고 있다.
영국 옥스퍼드대의 닉 보스트롬 교수 등 인공지능 전문가들은 “인공지능 기술 전쟁에서 가장 선두를 달리는 기업은 구글의 딥마인드(DeepMind Technologies)”라고 입을 모은다.
딥마인드가 개발한 인공지능 바둑프로그램 ‘알파고(AlphaGo)’는 2016년 ‘천재 기사’ 이세돌, 2017년 ‘바둑 황제’ 커제를 연파했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대결은 2억8000만명이 지켜봤고 3만5000개의 기사가 쏟아졌다. 딥마인드는 서울 한복판에서 벌어진 ‘세기의 이벤트’를 통해 인공지능이 더 이상 공상과학 속의 기술이 아님을 입증했다.
헬스케어와 기후 변화 등에 인공지능 도움
인간계 최고수들을 연파하고 ‘바둑의 신’이 된 ‘알파고의 아버지’는 데미스 허사비스(Demis Hassabis·41) 딥마인드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다. 영국의 유력지 ‘가디언’은 그에게 ‘인공지능계의 수퍼 영웅’이란 영예로운 칭호를 달아줬다.
“인간 정신의 심오한 비밀을 풀려면 인간 뇌에 대한 연구와 인공지능 기술을 결합해야 한다.”
허사비스는 경영자이기 이전에 세계적인 인지신경과학자이자 컴퓨터 공학자다. 그는 최근 유명 학술지 ‘뉴런 투데이(Neuron Today)’에 “인간의 뇌에 대한 연구가 인공지능 기술이 다음 단계로 도약하는 열쇠”라며 “인간의 지능을 연구하는 신경과학자(neuroscientist)와 인공지능 연구자들이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허사비스가 말하는 ‘인공지능의 다음 단계’는 ‘범용 인공지능(general artificial intelligence)’이다.
지난 6월 알파고가 커제와 중국 프로기사 연합군을 제압한 뒤 허사비스는 알파고와 바둑 기사의 대결은 더 이상 없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면서 알파고와 알파고가 대결한 기보 50개를 전격 공개했다. 세계의 프로 바둑 기사들은 ‘외계에서 온 비급’이라는 찬사를 던지며 알파고 기보 연구에 몰두하고 있다.
허사비스가 이후 던진 말은 더 충격적이었다. 허사비스는 “알파고가 똑똑한 것 같지만, 결국 인간이 시킨 일을 하는 것일 뿐”이라며 “앞으로의 과제는 인간이 명령한 과제만 수행하는 인공지능이 아니라 과학적인 발견을 하고 새 지식을 창출하는 범용 인공지능 연구가 될 것”이라고 했다.
허사비스는 7월 19일 정보기술(IT)전문 매체 ‘더 버지’와 인터뷰에서 “인간의 두뇌야말로 범용 지능의 증거”라며 “인간의 뇌 연구를 통해 머신 러닝(기계학습), 인공지능 기술 개발에 쓰일 영감을 얻고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발견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허사비스는 “현재 인공지능 기술은 (바둑처럼) 주어진 명령만 수행하는 단계”라며 “혁신적인 아이디어나 과학 발견을 위해서는 상황 적응 능력과 응용 능력을 갖춰야 한다. 이는 범용 인공지능만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허사비스는 “그러기 위해서는 인공지능이 물질 세계를 우리와 같은 방식으로 느끼고 사고하는 능력, 즉 구현된 인지(embodied cognition) 능력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상상력과 창의력을 갖춘 인공지능을 개발하려면 인간의 뇌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동시에 인공지능 기술이 뇌 연구에 유용한 모델을 제공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헬스케어와 기후 변화 등 인공지능이 인류에게 도움되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머신 러닝과 시스템 신경과학 분야의 기술을 활용한 범용 학습 알고리즘을 구축해야 한다는 뜻이다.
보헤미안 분위기에서 자란 과학 천재
허사비스는 1976년 영국 런던에서 그리스 키프로스 출신 아버지와 중국계 싱가포르인 어머니의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가정 환경은 전혀 과학적이지 않았다. 허사비스는 “부모님들은 컴퓨터에 관심이 없었다. 보헤미안 같은 분들이었다"며 “가족 중 누구도 수학이나 컴퓨터에 관심이 없었는데 나 같은 사람이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의 여동생은 피아노를 치고 작곡을 하며 남동생은 글을 쓰고 있다.
하지만 허사비스는 과학과 컴퓨터에서 일찍 천재성을 드러냈다. 네 살 때 아버지와 삼촌이 하는 체스 게임을 어깨너머로 배운 뒤 2주 후 아버지를 이겼다. 여섯 살 때 ‘8세 이하 런던 체스 대회’에서 우승했고 열세 살에 ‘14세 이하 세계 유소년 체스 대회’에서 2위를 했다.
여덟 살 때 체스 경기에서 이긴 뒤 받은 상금 200파운드로 산 컴퓨터는 그의 인생을 바꿨다. “창조성을 발휘할 마법 같은 기계임을 직관적으로 깨달았다”고 허사비스는 회고했다.
15세에 케임브리지대 입학 허가를 받았지만 나이 제한(16세)에 걸려 1년을 기다려야 했다.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해서 인공지능을 배웠다.
컴퓨터 천재가 가장 먼저 시작한 사업은 비디오 게임 개발이었다. 열일곱 살 때 수백만 개가 팔린 시뮬레이션 게임 ‘테마 파크(Theme Park)’를 개발했고 대학 졸업 이후에는 비디오 게임 회사 엘릭서 스튜디오(Elixir Studios)를 설립, MS·비방디 유니버설 등 글로벌 판매사와 협업으로 여러 게임들을 출시했다.
잘나가는 게임 회사 경영자로 이름을 알린 허사비스는 2005년 돌연 영국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UCL)에 입학해 인지신경과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는다. 허사비스는 “인간의 뇌에서 새로운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위한 영감을 찾기 위한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인간 기억과 상상력에 관한 허사비스의 연구는 2007년 ‘사이언스’가 선정한 ‘올해의 10대 과학적 발견’에 선정되기도 했다.
허사비스는 2010년 딥마인드를 창업했고 2014년 1월 4억파운드(약 5800억원)를 받고 구글에 팔았다. 당시까지 유럽 최대의 정보기술 기업 인수·합병이었다. 현재 런던 킹스크로스에 본사를 둔 딥마인드에서는 400여명의 직원이 일하고 있다.
허사비스는 딥마인드 CEO일 뿐 아니라 구글 엔지니어링 부사장 자격으로 인공지능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딥마인드 초기 투자한 머스크 “인공지능 선제적 규제” 역설

“인공지능 기술은 인류 문명을 파괴할 수도 있다. 인공지능이 문제가 된 뒤에 규제를 도입하면 너무 늦다. 선제적인 규제가 필요하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회장은 지난 5월 17일 미국 주지사들이 모인 회의에서 “인류는 언젠가 멸망할 것이고 인공지능 등 과학 기술이 멸망의 한 원인을 제공할 것”이라며 인공지능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역설했다.
전기자동차, 화성 정복 등 우주 개발 프로젝트, 하이퍼루프 건설 아이디어 등으로 ‘혁신의 아이콘’으로 부상한 머스크 회장의 발언을 의외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테슬라 자동차에 탑재된 자율주행 기능은 현재로서는 가장 앞선 기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하지만 머스크 회장이 딥마인드의 초기 투자자란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머스크 회장은 “돈을 벌겠다는 생각보다 인공지능 개발 속도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사람들의 생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인공지능 기술이 개발되고 있다”고 말했다. 머스크 회장은 ‘오픈인공지능’ 등 비영리단체 공동의장으로 활동하고 있고 2015년 인공지능과 미래 인류의 운명에 대해 연구하는 민간 재단에 1000만달러를 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