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무 몰입도가 높고 생산성도 좋은 고성과자가 번아웃 증후군에 걸리게 되면 조직의 전력 차질이 불가피하다.
업무 몰입도가 높고 생산성도 좋은 고성과자가 번아웃 증후군에 걸리게 되면 조직의 전력 차질이 불가피하다.

콘텐츠 제작 업체에서 기획 업무를 맡고 있는 장정연(33) 대리는 회사 안팎에서 인정받는 인재다. 입사 9년 차인 정연씨는 사회 생활 초창기부터 능력을 인정받아 쉼 없이 달려왔다. 어려운 업무는 언제나 ‘일 잘하는’ 정연씨 몫이었다. 그러다 보니 정연씨에겐 고난도 업무뿐만 아니라 신사업 추진, 후배 교육 등 각종 잡무가 몰리기 시작했다. 상사의 신뢰와 후배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정연씨는 최근 갑작스레 찾아온 무기력증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스트레스성 턱 통증이 두통으로까지 번졌다. 그는 “일을 잘한다는 이유만으로 조직에서 끝없이 소비되다 소진되고 있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어 조만간 병가(病暇)를 낼 생각”이라고 말했다.

번아웃 증후군은 신체적·정신적으로 탈진해 분노에 가득 차거나 무기력해지고 심하면 우울증까지 겪게 되는 심리 상태를 말한다. 겉모습만 보고 파악하거나 자각하기 어렵지만 심해지면 신체적 이상 증상이 나타나 위험하다. 영국의 컨설팅 회사 오버리 매니지먼트가 5년간 기업가를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한 결과 번아웃 증후군은 주로 직장 생활 시작 첫 10년 안에 고성과자를 중심으로 발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과잉 성취자(overachiever) 증후군’으로 불리기도 한다.

한국의 직장인들은 열에 아홉은 번아웃 증후군(이하 번아웃)을 겪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한국인에 있어 번아웃은 직종과 회사,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발병했다.

2016년 취업포털 사람인이 103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조사 결과 번아웃 경험자 비율은 대리(94.6%), 과장(90.2%), 사원(86.3%), 부장(85.2%) 등 직급과 관계없이 고르게 나타났다. 임원급에서 번아웃을 겪었다고 응답한 비율도 69.2%에 달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블라인드가 최근 5419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한민국 직장인 10명 중 9명이 ‘최근 번아웃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소속 회사별로 번아웃을 경험한 직원이 많은 회사는 E&Y 한영에 이어 KEB하나은행, 딜로이트안진, 스타벅스, 현대모비스, 셀트리온, BGF리테일, 이랜드월드, 스마일게이트, 아모레퍼시픽순이었다. 블라인드 관계자는 “미국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같은 조사 결과를 보면 회사별 편차가 컸는데 한국은 대부분의 회사에서 번아웃 경험자 비율이 높았다”고 말했다.

문제는 정연씨의 경우와 같이 조직에서 업무 몰입도가 높은 고성과자들이 번아웃에 걸릴 위험이 크다는 점이다. 업무 몰입도는 기업 경영진의 71%가 성장의 핵심으로 꼽는 요소다.

실제로 인사 컨설팅사 에이온휴잇의 연구에 따르면 업무 몰입도가 1%만 올라도 회사의 매출이 평균 2000만달러 증가했다. 하지만 갤럽 조사 결과 노동자 10명 중 7명은 일에 몰입하지 않고 있다고 답하는 등 조직 입장에서는 업무 몰입도를 쉽사리 컨트롤할 수 없다. 이 때문에 조직은 업무 몰입도에만 집중, 직원들의 번아웃 징후를 감지하지 못하는 실수를 하게 된다.

조직 관리자층에서 고성과자의 번아웃을 예방해야 하는 이유는 또 있다. 이들이 빠져나가면 조직의 전력 손실이 크기 때문이다. 헤르만 아귀니스 조지워싱턴대 경영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고성과자들이 내는 생산성은 전체 직원 평균의 400% 이상에 달한다.

일각에서는 일 욕심 있는 고성과자가 번아웃에 빠진 것을 개인적 문제로 치부하기도 한다. 성과가 좋은 사람들이 능력 이상의 업무를 부여받아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성과가 좋은 직원들은 개인적인 약속보다 업무를 우선순위에 놓기도 한다.

전문가들은 여기에 함정이 있다고 말한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에 따르면 고성과자에게 주어지는 업무는 보통 △고(高)난도에 △저(低)성과자 관리를 떠맡고 △주업무에 잡무까지 더해지는 특징이 있다.

매트 플러머 자바나 컨설팅 대표는 “고성과자와 나머지 직원들의 가장 큰 차이점은 고성과자들만 지속적으로 어려운 프로젝트에 투입된다는 점”이라며 “이들에게 소프트볼 같은 (쉬운) 업무는 주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물론 관리자로서는 최고의 전력을 가장 중요한 업무에 투입하고 싶기 마련이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이런 관행은 고성과자들을 번아웃으로 몰고갈 가능성이 커진다.

고성과자들에게 저성과자 관리를 비롯한 다양한 잡무를 떠맡기는 것도 문제다. 조직은 ‘멘토제’라는 이름으로 능력이 좋은 직원과 그렇지 않은 직원을 짝지어 주기도 한다. 플러머 대표는 “고성과자들이 결국 저성과자들의 업무까지 가져와 처리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고성과자들은 여러 자잘한 일회성 업무에 자신의 시간이 얼마나 허비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된다”면서 “더 많은 일들로 보상을 받게 되는 것에 대한 불만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몰입도 끌어 올려야 번아웃 예방

최근 미국 예일대 정서지능 센터 연구진들은 ‘몰입도와 번아웃의 상관관계(Highly engaged but burned-out)’ 논문에서 몰입도와 번아웃 가능성이 모두 높은 직원을 조직이 어떻게 관리해야 하는지를 분석했다. 먼저 연구진은 미국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였다. 대상자 중 40% 정도에 해당하는 사람들은 몰입도가 높으면서도 번아웃에 걸릴 가능성이 낮은 ‘최적의 몰입자(optimally engaged)’들이었다.

연구진이 주목한 쪽은 전체의 20%에 해당하는 ‘기진맥진한 몰입자(engaged-exhausted)’들이다. 몰입도가 높아 성과가 좋지만 번아웃에 걸릴 가능성이 큰 사람들이 노동자 5명 중 1명꼴로 나타난 것이다. 이들은 일에 대한 열정과 흥미가 많았지만 동시에 스트레스와 좌절도 많았다. 기술 습득에 대한 열망도 높았지만 이직 욕구도 높았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는 “회사 입장에서 보면 동기 부여가 확실하고 열심히 일하는 직원 중 일부를 잃을 위험에 처해 있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연구진은 양쪽의 특징을 구분하기 위해 직장 내 경험을 두 가지 측면에서 측정했다. 보상·조직의 인정·자기확신·동료들과의 우정 등 조직의 지원을 말하는 ‘자원(resource)’과 작업 부하·관료주의·일의 집중 등 조직의 ‘요구(demand)’다. ‘최적의 몰입자’군(群)과 ‘기진맥진한 몰입자’군은 모두 조직 자원의 경험도가 높았다. 양측을 나눈 것은 조직의 요구 부분이었다. ‘기진맥진한 몰입자’군은 작업량은 물론 조직 내 관료주의를 경험한 사례가 많았으며 본인에게 조직의 관심이 집중되는 부담을 느꼈다.

줄리아 뮐러 독일 라이프치히대 심리학과 교수는 “관리자들은 여기에서 힌트를 얻어야 한다”면서 “번아웃을 최대한 피하면서 몰입도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조직의 요구’를 줄이고 ‘조직의 자원’을 높이는 데 힘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렇다면 조직은 고성과자들의 번아웃을 어떻게 예방해야 할까. 예일대 연구진의 제안과 자바나 컨설팅이 소개한 방법을 종합해 소개한다.


<고성과자들의 번아웃 예방법>

팁 1│ ‘조직의 요구’ 줄이기

‘해피니스트랙’의 저자 에마 세팔라 스탠포드대 신경외과 교수는 직원들의 목표치를 현실적으로 조정하고 업무를 고르게 재분배해 ‘조직의 요구’를 줄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를 위해서는 업무를 고성과자 스스로 선택하도록 유도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업무에 의욕적인 태도를 보이는 고성과자의 특성상 원하는 업무를 맡게 되면 몰입을 통해 원래 컨디션을 되찾을 가능성도 커진다. 잡무 부담도 줄여줘야 한다. 주 업무와 관련없이 주어지는 잡무들은 번아웃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팁 2│ ‘조직의 자원’ 확대하기

돈, 각종 복지 등 보상뿐만 아니라 조직은 고성과자의 업무 외 시간을 보장하는 모습도 보여야 한다. 업무 중간 규칙적인 휴식을 장려하고 주말을 보장하는 등이다. 세팔라 교수는 “관리자들은 조직 내의 문제를 해결하고 균형을 잡으려 하고 있다는 일관적인 메시지를 보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팁 3│ 고성과자끼리 파트너십 맺기

조직은 업무 성과를 조절하기 위해 고성과자를 중심으로 저성과자들을 배치한다. 하지만 이 경우 일은 고성과자에게 집중되게 된다고 전문가들은 조언한다. 비슷한 직급의 고성과자끼리 업무를 진행하도록 하면 서로에게 자극을 받아 더 높은 성과를 낼 가능성이 커진다.

플러머 자바나 컨설팅 대표는 “이런 방법들이 단순하면서도 소소하다는 시각도 있다”면서도 “작은 팁과 개선법이 축적되면 고성과자들이 번아웃에 빠질 가능성이 작아질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창업 전문 사이트 앙트레프레너닷컴도 “고성과자와 끊임없이 소통하면서 과중한 업무 부담을 줄여주는 등 직원의 시간과 노력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관리자들은 고성과자뿐만 아니라 조직 전체의 번아웃도 관리해야 한다. 최근 미국 딜로이트의 조사 결과 미국 직장인 1000명 중 69%은 ‘조직에서 번아웃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21%는 ‘조직이 스트레스 경감 프로그램을 제공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딜로이트가 제시한 조직 전체의 번아웃을 막는 방법을 소개한다.


<조직 전체의 번아웃을 막는 방법>

팁 1│ 클린 브레이크(CLEAN BREAK)

독일의 자동차 회사 다임러는 2013년 ‘메일 온 홀리데이(Mail on Holiday)’라는 제도를 도입했다. 휴가자의 메일함에서 새로 온 메일이 자동으로 삭제되는 시스템이다. 발신자는 메일이 삭제됐다는 알람과 함께 긴급한 사안일 경우 같은 메일을 휴가자의 동료에게 다시 보내거나 휴가자가 업무에 복귀하면 다시 보내기로 하는 두 가지 옵션 알람을 자동으로 받게 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파일럿 정책이었지만 긍정적인 사내 반응을 바탕으로 정식으로 도입됐다”고 전했다.

부하 직원들의 ‘진짜 주말’과 ‘진짜 휴일’을 보장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젠 피셔 딜로이트 웰빙부문 디렉터는 “번아웃이 발생하는 이유 중 하나는 직원들이 일에서 ‘진정한’ 단절을 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휴식과 같이 업무 외적인 부분에 집중하면서 에너지가 충전 될 수 있다.

딜로이트의 미국 직장인 대상 설문 결과 ‘주말까지 지속적으로 장시간 일을 하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은 30%에 달했다. ‘휴가를 모두 소진했다’고 답한 사람은 43%에 불과했다. 주말 근무를 계속 하거나 휴가를 다 쓰지 못한 이유에 대해 응답자들은 ‘업무 단절 시간에 오히려 이슈가 더 커질 까봐’ ‘마감 기한을 못 맞출까 봐’ ‘상사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 할까 봐’라고 답했다.


팁 2│ 서로를 인정하는 문화 만들기

서로 인정해주는 사내 문화를 정착하는 것도 관리자들이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다. 상사의 인정은 고래도 춤추게 만든다. 미국 직장인 10명 중 3명은 번아웃에 걸리게 된 이유 중 하나로 ‘상사의 지지(support)나 인정(recognition)이 부족했던 점’을 꼽았다.

전문가들은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 사이, 동료 사이에 서로 ‘고맙다’는 인사를 자주 하라고 조언한다. 피셔 디렉터는 “타인을 인정해주는 문화가 정착된 회사일수록 이직률이 낮고 조직 성과가 좋았는데, 이는 스트레스를 덜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고맙다는 표현을 많이 할수록 직원 입장에서 새로운 과업을 전달받았을 때 잘 대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딜로이트는 작년 크리스마스에서 신년으로 이어지는 일주일과 올해 2월 창립자 생일을 맞아 각각 일주일간 일괄적으로 회사 문을 닫았다. ‘집단 단절(collective disconnect)’이라는 일종의 포상 휴가인 셈이었다. 딜로이트 관계자는 “직원 노고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고 전했다.


팁 3│ 정신 건강 관련 복지 제도 마련하기

육아 휴직, 유연 근무제 등 각종 복지 제도가 직원들의 번아웃을 효과적으로 예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이 나뉘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직원들이 이를 통해 심리적인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전문가들은 사내 건강 관련 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리프레시 휴가, 회복 휴가 등 정신적인 건강을 챙길 수 있을 만한 프로그램을 만들라고 조언한다. 미국의 보험회사 애트나는 마크 베르톨리니 최고경영자(CEO)가 관련 지원에 적극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회사는 무료로 사내 요가 교실, 명상 교실을 운영하고 있다.


Keyword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
의욕적으로 일에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감정적·정신적·신체적 피로감을 호소하며 무기력해지는 현상. 다 불타서 없어진다(burn out)고 해서 소진(消盡) 증후군이라고도 불린다.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일에 대한 흥미와 동기 부여를 잃는 것은 물론 일상생활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Plus Point

번아웃 증후군 셀프 테스트

자료 : Mind Tools

Plus Point

20분 일하고 5분 휴식
일 관련없는 취미 만들어야

업무 중간 규칙적으로 휴식을 취하고, 운동 등 취미 생활을 찾는 게 번아웃을 경감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업무 중간 규칙적으로 휴식을 취하고, 운동 등 취미 생활을 찾는 게 번아웃을 경감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자가 테스트 결과 번아웃이 의심된다면 전문가를 찾기에 앞서 우선 실천해 볼 수 있는 대처법이 있다. 뉴욕타임스(NYT)가 추천한 번아웃 예방법을 국내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정리했다.


집중 호흡법 스트레스와 긴장·불안감이 몸속 교감신경을 활성화시키면 얕고 거친 호흡을 빠르게 하게 된다. 배만 움직이는 깊은 호흡을 해 부교감 신경을 활성화시키자.

자주 휴식 취하기 책상에 앉아 있는 시간이나 업무에 집중한 시간이 20분이 흐르면 5분씩 휴식을 취하자.

편안한 환경 만들기 인체 공학적으로 설계된 의자나 책상을 이용하자. 최근에는 앉거나 서서 일할 수 있는 스탠딩·높이 조절 책상 등이 시중에 있다. 여의치 않다면 근처에 작은 화분 하나라도 놓자.

믿을 만한 멘토를 찾자 업무에 대해 터놓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 토론을 통해 여러 전략을 세워보자.

취미를 갖자 크로스핏·꽃꽂이·디제잉 등 업무와 관련없는 취미 생활을 만들어 휴식 시간에 일로부터 벗어나는 기회를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