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 마포에 사는 회사원 강모씨는 주말마다 집앞 스타벅스 매장에서 책을 읽거나 밀린 업무를 본다. 컨디션이 비슷해도 왠지 모르게 집에서 할 때보다 스타벅스에서 일을 하면 집중이 더 잘 된다고 한다. 강씨는 “이 모든 게 스타벅스에서 흘러나오는 배경 음악 덕분”이라며 “스타벅스에서 선곡한 ‘노동요’ 같은 음악을 들으며 일하다 보면 다섯 시간도 거뜬하다”고 말했다.
#2 ‘수고했어 오늘 하루 칭찬할게 너의 하루 넌 잘했어 최고였어’ 서울 전농동에 사는 워킹맘 권모씨는 매주 금요일 저녁 집앞 롯데마트에서 흥얼거리며 장을 본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매장에 들어서면 배경으로 흘러나오는 음악이 기운을 북돋는 것 같다. 권씨는 “힘내서 장을 보라고 응원해 주는 것 같다”며 “지루한 장보기가 흥이 난다”고 말했다.
소비자들의 귀를 사로잡아 지갑을 열기 위한 유통업체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선곡에 조금만 신경을 써도 매출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음악으로 소비자들의 기분을 조절하기 위해 기업들은 다양한 음악 전략을 짜고 있다.
대형마트들은 매장 음악을 자체 제작하는 편이다. 실제로 이마트는 국내 최고 수준으로 스튜디오를 만들고 유명 작곡가 김형석씨와 계약해 매장에 틀 음악을 따로 제작하고 있다. 이마트는 서울 성수동에 있는 본사 6층에 2년 전 ‘이마트 뮤직스튜디오’를 만들었다. 녹음을 할 때 가장 중요한 요소로 통하는 녹음실 천장 높이가 건물 2층에 해당하는 5m에 달한다. 오케스트라 연주도 울리지 않고 깨끗하게 녹음할 수 있다. 이마트는 여기에서 제작, 녹음한 음원 ‘삼겹살송’ ‘복날송’ ‘그린송’ ‘피코크송’ 등을 주요 이벤트마다 바꿔 튼다.
롯데마트는 여러 분위기로 제작된 다양한 음악을 시간대별로 돌려가며 튼다. 오전엔 활기찬 느낌의 ‘굿모닝 굿데이’부터 나른한 오후 잠을 깨도록 하는 ‘타임 투 타임’, 저녁 시간에는 응원가와 비슷한 ‘토닥토다닥’ 등을 송출한다. 대중 가요 같은 느낌이 강하다.
소비자들의 반응도 좋다. 실제로 10월 3일 오후 서울 이마트 용산점과 롯데마트 서울역사점에서 만난 매장 방문객들은 자체 제작 음악에 대해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이마트를 방문한 회사원 이용진(35)씨는 “멜로디가 신나면서도 단순하고 반복적인 구간이 많아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다”고 했다. 마트의 매장 음악 특성으로 반복되는 구간이 많지만 거부감 없이 듣게 된다는 의견도 있었다. 롯데마트에서 만난 회사원 김소영(42)씨는 “한 번 방문할 때마다 같은 음악이 여러 차례 반복되지만 이게 지겹다기보다는 같이 흥얼거리게 된다”고 말했다.
소비자 맞춤 선곡, 더 전문적으로
매장 음악에 가장 많은 공을 들이는 곳으로는 스타벅스가 꼽힌다. 스타벅스 매장에서는 시간대별로 다른 분위기의 음악이 흐른다. 아침에는 경쾌한 음악, 오후에는 조용한 클래식이 나오는 식이다. 2015년부터는 음악 스트리밍 업체 스포티파이에서 매장에 틀 수 있는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제공받고 있다. 클래식, 재즈, 제3세계 음악 등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매장을 집과 사무실이 아닌 제3의 공간으로 연출하는 것이 전략”이라고 말했다.
이런 음악 전략은 ‘카공족(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양산하고 있다. 실제로 2~3일 방문한 스타벅스 더종로R점, 부천 중동DT점에는 공부와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이 절반 이상이었다. 회계사 시험을 준비 중인 서동현(26)씨는 “잔잔한 배경 음악이 시험에 대한 긴장감과 부담을 덜어준다”고 말했고 “큰 소음은 공부에 집중하기 어려운데, 스타벅스에서 나오는 음악은 집중력을 향상하는 데 도움을 주는 미량의 소음인 ‘백색소음’ 같아 집중이 잘된다”고 말했다.
아예 매장 배경 음악을 알아서 골라 서비스하는 전문 업체들도 성행하고 있다. 매장 음악 서비스 제공 업체 샵캐스트는 롯데백화점을 비롯해 SPC, 아리따움, 관공서 등 300개 회사 3만개 매장에 음원을 제공한다. 업종과 인테리어, 상권, 기업 이미지 등에 따라 맞춤으로 음악을 틀도록 한다. 이 밖에 플랜티넷은 화장품 브랜드 ‘네이처컬렉션’ 등 3만개 점포에, 토마토뮤직은 ‘아트박스’ 등에 매장 음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롯데백화점 음악 선곡을 담당하는 백정은 샵캐스트 PD는 “층별로 다른 음악을 틀고 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롯데백화점 1, 2층은 가벼운 뉴에이지나 재즈 연주곡 위주로, 상층의 식당가나 세일코너는 회전율을 높이기 위해 빠른 템포의 최신 가요 등을 선곡한다.
실제로 음악이 매출로 직결된다는 것은 오랜 연구 결과로 입증됐다. 특히 지난해 스웨덴의 컨설팅사 HUI가 맥도널드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긍정적인 브랜드 이미지를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춘 음악을 만들어 송출한 결과 주문 금액이 10% 가까이 증가했다. 이 밖에도 여성복 매장에서는 느린 템포의 음악이 흐를 때 매출이 많았고, 남성복 매장에서는 좀 더 빠른 템포의 악기 연주가 매출을 늘리는 효과를 가져왔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소비자들의 재방문을 유도하려면 경험의 차별화를 통한 매력도 상승이 중요하다”면서 “업종, 계절 등을 여러 요소를 다각도로 고려해 청각을 자극하는 것이 마케팅 효과가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
15평 매장도 음악 사용료 8월 말 시행…현장은 깜깜
지난 8월 23일부터 면적 50㎡(약 15평) 이상 헬스장, 카페, 주점 등 매장에서 음악을 틀면 추가로 공연권료를 내야 한다. 공개된 장소에서 음악을 틀 때 내는 일종의 저작권료다. 하지만 이 사실을 모르는 자영업자들이 많고, 요금을 내는 게 불합리하다는 반발도 나오고 있다.
공연권료는 업종과 면적별로 달라지는데, 카페나 술집의 경우 면적 50~100㎡ 경우 월 4000원부터 최대 2만원, 같은 면적의 헬스장은 최소 1만1400원부터 최대 5만9600원을 내야 한다. 개정안 시행으로 공연권료를 납부해야 하는 영업장은 전국 14만여개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관련 법 시행에 앞서 공연권료 납부 의무 및 방식 등에 대한 안내 설명서를 영업장에 단계적으로 배포한다고 밝혔으나, 3일 서울시 명동과 경기도 부천시 중동 일대의 소규모 매장을 취재한 결과 안내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도 부천시에서 면적 100㎡의 카페를 운영하는 송모씨는 “음악 스트리밍 업체의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다”며 “이게 저작권법에 저촉되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따로 공지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 중구에서 66㎡짜리 안경점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아직 단속을 받은 바가 없다”면서 “개인적으로 음악 스트리밍 이용권을 구매해서 매장에서 틀고 있다”고 했다.
일부 자영업자들은 면적에 따라 매긴 기준이 불합리하다는 불만을 터트렸다. 한 카페 주인은 “평수가 크다고 해서 장사가 잘 되는 것도 아닌데, 무조건 15평 이상의 매장에서만 공연권료를 내라고 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