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사진은 1959년 4월 펑더화이가 국방부장 자격으로 폴란드, 헝가리 등을 방문했을 때. 오른쪽은 문화혁명 기간에 펑더화이가 조직을 배반했다는 누명을 쓰고 군에 끌려가는 모습. 사진 앨피
왼쪽 사진은 1959년 4월 펑더화이가 국방부장 자격으로 폴란드, 헝가리 등을 방문했을 때. 오른쪽은 문화혁명 기간에 펑더화이가 조직을 배반했다는 누명을 쓰고 군에 끌려가는 모습. 사진 앨피

나, 펑더화이에 대하여 쓰다
펑더화이|이영민 옮김|앨피
1만8000원|490쪽|10월 10일 출간

펑더화이(彭德懷·1898~1974)는 평생을 군벌 군대, 일본 군대, 장제스의 국민당 군대와 맞서 싸우며 탁월한 업적을 쌓은 영웅이었다. 한국인에게 펑더화이는 6·25 전쟁 당시 중공군 총사령관으로 참전해 한반도의 통일을 막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장본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한국에서보다 미국에서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6·25 전쟁 실상을 오랜 취재와 연구를 통해 1000페이지에 담은 미국의 유명 저널리스트 데이비드 핼버스탬은 그의 유작 ‘콜디스트 윈터’에서 “펑더화이는 부대원들의 필요에 큰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유달리 부하들 사이에 덕망이 높았으며 군인다운 군인으로 인정받았다. (당시 미 제8군 사령관이었던 명장) 매튜 리지웨이에게 맞서기에 펑더화이만 한 적임자가 없었다. 전쟁에 대한 투지나 부대원을 대하는 태도·방법 등은 서로 약속이나 한 듯 비슷한 면이 많았다”고 평가했다.

1950년 6·25 전쟁이 일어나고 그해 10월 마오쩌둥은 당 중앙 회의를 소집해 참전 여부를 검토했다. 당시 대부분의 당 지도자들은 세계 최강국 군대와 맞붙는 것을 두려워했다. 마오쩌둥은 미군이 북·중 국경인 압록강에서 멈추지 않고 계속 진격할 것을 우려했다. 마오쩌둥은 ‘순망치한(脣亡齒寒)’ 즉, 입술(북한)이 없어지면 이(중국)가 시리다는 이유를 들어 마땅히 출병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펑더화이는 마오쩌둥의 뜻을 따르는 것이 애국이자 본인의 직분이라고 판단해 출병을 지지했고, 중공군 총사령관으로 투입됐다. 미군과 달리 공군도, 고사포 엄호도 없는 열악한 병력을 이끌어야 했다.

미국에 의한 한반도 통일을 막아내는 ‘혁혁한 공로’를 세워 국방부장 자리까지 오르지만, 결국 펑더화이는 참담한 말로를 맞았다. 1950년대 후반 농업·공업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루겠다는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으로 경제가 파탄나고 수천만 명이 아사하는 참사가 이어지자 마오쩌둥에게 이 문제를 직언했던 것이다. 그는 하루아침에 반당(反黨)집단으로 몰려 국방부장직에서 해임당했다. 1966년 문화대혁명이 일어나면서 베이징으로 압송돼 특별 심문을 받는 등 온갖 고초를 당했다. 암에 걸려 죽기 직전, 강제 이혼당한 아내를 만나게 해달라는 마지막 소원도 이루지 못했다. 어린 시절 함께 구걸하던 두 동생은 혁명에 투입됐다가 고문을 당한 뒤 살해됐다.


‘군인다운 군인’ 평가에도 참담한 말로

우리에겐 애증의 인물인 펑더화이 전기가 한국에 처음 나왔다. 원본은 펑더화이 사후인 1981년 덩샤오핑의 사면으로 복권되면서 그에 관한 여러 자료들을 취합, 정리해 낸 것을 약 37년 만에 번역한 것이다.

책은 개인의 일생에 대한 평가를 담은 평전도, 자서전도 아닌 ‘자술서’라는 점에서 특히나 의미가 있다. 책은 그가 특별심문조에게 심문받을 때 기록한 내용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고통과 수모 속에서 쓴 글이기 때문에 승리한 수많은 전투는 간략하게 경과를 소개하는 데 그치고, 그 공로는 자신을 비참하게 내친 마오쩌둥에게 돌리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는 ‘펑더화이 영웅화’가 본격화하고 있다. 중국 국가주석인 시진핑의 부친 시중쉰이 펑더화이를 보좌했던 인연 때문이다. 시진핑은 ‘21세기판 마오쩌둥’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최근 다시 중국 현대사의 영웅으로 부각되고 있는 펑더화이가 다시 살아돌아온다면, 그를 그리고 지금의 조국을 과연 어떻게 생각할까.


구소련 미공개 문서 활용한 최초의 평전
설계자 덩샤오핑
알렉산더 판초프·스티븐 레빈|유희복 옮김|알마
4만7000원|840쪽|10월 10일 출간

덩샤오핑(鄧小平·1904~1997)은 중국식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와 공산당 일당지배 체제를 성공적으로 결합시켜 오늘날 중국의 기틀을 잡은 인물로, 중국 개혁·개방의 설계자다. 그는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숨기고 참고 기다린다)’를 앞으로 100년 동안 국가의 지도 지침으로 삼으라고 강조했다. 대외 관계 안정이 중국 경제의 성장에 필요하며, 미국과 반드시 잘 지내는 것이 결국 중국을 위한 일이라는 의미였다.

이 책은 덩샤오핑과 가족의 개인 기록뿐 아니라 러시아 국립문서보관소에서 발견된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펑더화이 등 중국 공산당 핵심 지도자들에 대한 구소련의 미공개 문서 3300여 건을 처음 활용했다. 공산당 핵심부가 국가 경영 모델을 만들어나간 과정 등을 풍부히 담아 기존 덩샤오핑 책과 차별화를 노렸다. 미·중 무역분쟁의 향방을 점치기 어려운 시기, 덩샤오핑을 다시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지 모른다. 중국 공산당원 출신인 대만 망명자 롼밍이 쓴 ‘샤오핑 제국 30년(2016년)’, 동아시아 전문가로 유명한 에즈라 보겔 미 하버드대 교수가 쓴 ‘덩샤오핑 평전(2014년)’과 비교해 읽어도 좋다.


우버가 택시회사와 다른 점
우버 인사이드
애덤 라신스키|박영준 옮김|행복한북클럽
1만6000원|356쪽|8월 27일 출간

차 한 대 없이 창업 10년 만에 기업가치 700억달러를 돌파한 ‘세계 최대 택시 회사’ 우버의 폭풍 성장 비결을 파헤친 책이다. 경제전문지 ‘포천’의 편집국장인 저자는 우버가 기존 택시 산업의 문제를 정확히 진단하고, 이에 대한 해답을 내놓은 것을 핵심 비결로 제시한다. 우버가 스마트폰 앱으로 택시 수요와 공급을 유기적으로 연결해 ‘쉽게 택시를 잡고 싶다’는 문제의식을 해결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러시아워나 술집이 문닫는 시간처럼 택시 수요가 공급을 초과할 때 가격을 인상하는 정책을 도입한 점도 강조한다. 이를 통해 우버는 더 많은 운전사가 도로로 나올 것이고(공급 증가), 서비스 수요는 줄어들 것이며(수요 감소), 이 금액이라도 기꺼이 내려는 고객들은 대기 시간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고, 경제학 원리는 실제로 작동했다.

트래비스 칼라닉 공동창업자 겸 전(前) 최고경영자의 ‘오늘 강박증’도 빠르게 성장한 우버를 설명해준다. 저자는 “칼라닉이 회의 때마다 특정 업무를 ‘오늘’ 당장 실시하라고 지시했으며, 계획과 실행 사이의 공백을 없애는 것이 그만의 방식”이라고 말한다.


1990년대 미국 정치사
레드와 블루
스티브 코르나츠키|에코
29.99달러|512쪽|10월 2일 출간

도널드 트럼프는 대체 어떻게 미국 대통령이 된 것일까. 이 답을 1990년대 미국 정치사에서 찾는 책이 나왔다. 미국 케이블 방송에서 정치평론으로 명성을 쌓은 언론인 저자는 이 시기 민주당의 빌 클린턴 미 대통령과 공화당을 이끌었던 뉴트 깅그리치 당시 하원의장의 정치 격돌로 오늘날의 적대적 당파 정치가 뿌리내렸으며, 그 결실이 트럼프 대통령이라고 말한다. 트럼프의 모습에 클린턴과 깅그리치 그림자가 모두 드리워져 있다는 것이다.

1992년 민주당 대선후보로 나선 클린턴은 당시 걸프전 승리로 지지율이 높았던 조지 부시 대통령을 제압하기 위해 민주당의 공허한 진보 이념에서 탈피, 자유무역을 옹호하는 등 중도파 노선을 택한다. 이후 저명한 흑인 정치 지도자였던 제시 잭슨을 발탁하는 등 민주당의 금기를 깨뜨리기도 했다. ‘섹스 스캔들’처럼 치명적인 문제가 드러났을 때도 탄핵 위기를 이겨내고 자리를 지켰다. 깅그리치는 1994년 중간선거에서 작은 정부를 전면에 내세운 ‘미국과의 계약’으로 40년 만에 상·하원을 모두 장악, 어떤 초당적 협력도 거부하는 극보수주의를 주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