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서린동에서 30년째 영업 중인 ‘우정낙지’는 최근 대표 메뉴인 낙지볶음 가격을 1만8000원에서 1만9000원으로 1000원 올렸다. 직원은 9명에서 6명으로 줄였다. 최근 3년 사이 낙지값이 두 배 가까이 오른 데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건비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우정낙지의 홍모(50) 사장은 “이 동네에서 잔뼈가 굵은 식당이기는 하지만, 요즘 사람들이 외식을 잘 안 해 식당이 텅텅 비었다”며 “사장 혼자 서빙할 수는 없으니 사람은 써야 하고 결국 남는 게 없다. 내년에는 낙지볶음을 2만원으로 올려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근처 식당들의 상황은 대체로 비슷했다. 중구 무교동에 있는 중식당 ‘만복림’에서 짜장면 곱빼기에 공깃밥 한 그릇을 비벼 먹으면 무려 1만원을 내야 한다. 짜장면 곱빼기가 7000원에서 8000원으로, 공깃밥이 1000원에서 2000원으로 각각 1000원 인상돼서다.
내수 침체에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제 등으로 인건비가 늘어나면서 자영업자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다. 이런 가운데 11월 30일 올해 마지막으로 열리는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올릴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어, 자영업자들의 한숨은 커지고 있다. 금리 인상은 시중에 돌아다니는 돈줄을 죄는 효과가 있기 때문에 가뜩이나 침체돼 있는 소비가 더 위축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1월 초 공개된 통계청의 10월 소비자물가지수를 보면, 이 기간 소비자물가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0% 상승했다. ‘물가 상승률 2%’는 한국은행의 관리 목표치다. 올 초만 해도 1% 초반대에 머물던 물가가 목표치에 도달한 만큼 금리 인상을 위한 조건이 만들어진 것이다. 여기에 미 금리 인상에 따른 한·미 금리 차 확대와 이에 따른 자본 유출 우려 등도 기준금리 인상에 힘을 싣고 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최근의 물가 상승이 진짜 경기가 좋아져서가 아닌 만큼 섣불리 긴축 통화정책을 펴는 데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학부 교수는 “금리를 올리기 위해서는 소비가 늘어나 물건값이 올라야 하는데(수요가 견인하는 물가 상승), 최근의 물가 상승은 최저임금 인상 등 공급자 측의 비용이 반영된 것(공급이 견인하는 물가 상승)”이라고 설명했다.
소비자물가 중에서 가격 등락이 심한 농산물과 식료품, 에너지 품목을 제외한 ‘근원소비자물가(OECD 기준)’ 상승률은 올해 1% 초반대를 벗어나지 못했고, 10월에는 0.9%까지 주저앉았다. 소비자물가 상승에 농산물과 유가 급등이 결정적으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실제 이 기간 쌀이 24.3% 올랐고, 파(41.7%), 무(35.0%), 고춧가루(18.8%) 등 김장 재료가 두 자릿수대로 줄줄이 급등했다. 서울 동대문구의 재래시장을 찾은 한지희(48)씨는 “김장하려고 재료를 사러 왔는데, 파·뭇값이 생각보다 비싸서 시기를 좀 늦출까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글로벌 유가 상승세에 따라 휘발유, 경유도 각각 10.8%, 13.5% 올랐다.
이근태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근원소비자물가 상승률이 둔화했다는 것은 수요 측면, 즉 소비와 자영업이 부진하다는 것으로, 그만큼 경기 활력이 떨어지고 있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근원소비자물가는 소비가 주도하는 물가 상승 상황을 파악할 수 있는 지표로, 통상 경제가 성장세에 있고 소비가 진작될 때 가파르게 오르는 경향이 있다.
KDI도 “통화 정책 완화 유지해야”
최근 정부 측에서도 경기가 어렵다는 판단이 공식적으로 나오고 있다. 강신욱 통계청장은 지난 12일 기자간담회에서 “지난해 2분기(4~6월)가 경기 정점이었던 것으로 보인다”는 지적에 “그림이 그렇게 나타난다. 몇 월인지 확정할 수는 없지만 그 언저리가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KDI(한국개발연구원)도 최근 발표한 ‘2018년 하반기 경제 전망’ 보고서에서 “내수 증가세가 둔화되고 수요 측면 물가 상승 압력이 낮은 것을 감안해 당분간 통화 정책의 완화 기조를 유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상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국책연구기관이 이에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은 그만큼 경기 가 어렵다고 판단하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 경제학자 사이에서는 한국 경제가 단기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에 빠질 수 있다는 분석도 조심스럽게 내놓고 있다. 오일쇼크처럼 공급 측면에서 물가가 올라가는 현상이 흔하지는 않지만, 현재 최저임금 인상 등이 물가에 영향을 주고 있는 만큼 기준금리마저 올리면 경기 침체를 더 가속화해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 스태그네이션(stagnation·경기 침체)과 인플레이션(inflation·물가 상승)의 합성어로 불황이지만 물가가 급등하는 경제 현상. 단순히 두 가지 현상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고 해서 스태그플레이션이라고 정의하는 것은 아니다. 통상적으로는 공급 측 요인으로 가격이 급등(물가 급등)해 수요를 위축시키고 경기 불황에 빠지는 상황을 뜻한다. 1970년대 ‘오일쇼크’가 대표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