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 이지선(30)씨는 새해가 되자마자 서른 살이 된 본인에게 주는 선물로 처브라이프생명의 유방암보험을 들었다. 유방암 진단 시 500만원이 지급되는 상품이다. 보장 기간은 5년, 보험료는 1년에 5660원. 한 달에 470원꼴이다. 이씨는 모바일로 10분 만에 보험 가입을 끝냈다. 이씨는 “유방암 가족력이 있어 걱정했는데, 일반 암보험에 가입하자니 유방암 말고 다른 암에 대해서도 보험료를 내야 해 부담스러웠다”면서 “게다가 괜히 설계사를 만나 상담을 하면 필요 없는 보험까지 가입하라고 권할 것같아 일부러 온라인 미니보험을 찾아 가입했다”고 말했다.
보험사들이 ‘미니보험(소액단기보험)’을 잇달아 출시하고 있다. 미니보험은 △보장하는 손해와 질병의 범위는 한 두가지로 작고 △보장 기간은 특정 시기에 국한되며 △월 보험료는 1만원 이하로 저렴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석영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소비자들의 소득 수준이 정체되기 시작하면서 저렴한 가격에 필요한 위험만 보장하는 보험을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분석했다.
미니보험은 또 보험 가입을 위해 설계사를 만나 서류를 주고받지 않고도 모바일로 간단하게 가입할 수 있다. 주요 고객층은 모바일 환경에 익숙한 밀레니얼 세대다. 처브라이프생명이 지난해 1월 출시한 유방암보험 가입자 연령대를 살펴보면 20대가 20%, 30대가 37%였다. 처브라이프생명 관계자는 “일반 암보험 가입자 연령이 대부분 35세 이상임을 감안하면 유방암보험은 젊은 고객들의 가입 추세가 두드러졌다”고 설명했다.
올해 1월 7일부터 미니보험 가입 서비스를 시작한 간편 송금 앱 ‘토스’에서도 이런 경향이 눈에 띈다. 토스를 통해 미니보험에 가입한 고객 중 20대는 38%, 30대가 28%로 합하면 총 66%였다. 밀레니얼 세대를 고객으로 맞이한 보험 산업의 변화 양상을 짚어봤다.
전문가들은 ‘미니보험’의 인기 요인으로 ‘종신보험(가입자가 사망해야 보험금이 나오는 상품)’에 대한 부담을 꼽았다. 종신보험은 대개 보험료가 월 10만원 이상으로 비싸다. 종신보험이 본인이 죽고 난 후 가족들만 혜택을 볼 수 있는 상품이란 점도 시장에서 외면받는 이유 중 하나다. 부양가족에 대한 부담이 적은 1인 가구가 늘어나는 사회 변화와는 맞지 않다는 분석이다.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지난 2017년 30대의 생명보험 신계약 건수(그해에 새로 보험 계약을 맺은 건수)는 전년 대비 2.25%(3만6831건) 줄어든 160만1201건이었다. 같은 기간 40대의 생명보험 전년 대비 신계약 건수 감소율(-1.38%)보다 더 가파르게 줄었다.
30대의 생명보험 신계약 건수는 2016년 163만8032건, 2015년 173만5276건으로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20대의 생명보험 신계약 건수는 지난 2016년에 전년 대비 1.25% 줄었다가, 2017년 소폭 늘며 오르락내리락했다.
이런 추세를 반영해 보험사들이 미니보험을 본격적으로 출시한 시점은 지난 2017년 말쯤부터다. 필요한 보장만 골라서 가입하는 미니보험은 주로 MG손해보험, 처브라이프생명, 교보라이프플래닛 등 소형 보험사들이 먼저 출시했다.
가장 먼저 화제가 됐던 상품은 MG손보의 월 1500원짜리 운전자보험이었다. 별다른 홍보 없이도 현재까지 꾸준한 판매량을 유지하고 있는 인기 상품이다. MG손보가 판매하는 운전자보험, 여행자보험 등 미니보험들의 지난해 12월 한 달 가입자 중 40%가 20·30대로 집계됐다.
미니보험이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자 현대해상, 삼성생명, 한화생명, 미래에셋생명 등 대형 보험사들도 잇달아 상품을 출시했다. 삼성생명이 지난해 9월 출시한 ‘미니 암보험’은 4개월 만에 1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했다. 암 진단금에 대한 보장만 담아 보험료를 30대 남성 기준 월 665원 수준으로 낮췄다. 삼성생명 관계자는 “다른 보험에 비해 판촉을 강하게 하지 않았는데, 입소문으로 팔렸다”고 설명했다.
설사 부양가족을 위한 보험을 찾더라도, 밀레니얼 세대는 종신보험보단 보장 기간을 줄인 미니 생명보험, 즉 정기보험에 주목한다. 정기보험은 일정 기간 내에 사망하면 보험금을 지급하고, 그렇지 않으면 보험금이 사라지는 상품이다. 개인별 맞춤 보험을 추천해주는 인슈어테크(InsurTech·보험과 기술의 결합) 스타트업들은 종신보험의 대안으로 정기보험을 추천한다.
보험 추천 플랫폼 ‘디레몬’은 고객이 나이와 성별, 혼인 여부 등의 정보를 입력하면 필요한 보험 상품을 추천해주는 ‘레몬클립’ 서비스에서 종신보험은 아예 빼버렸다. 레몬클립은 가족 부양을 위한 상품으로 종신보험 대신 정기보험을 추천한다. 명기준 디레몬 대표는 “같은 조건일 때 종신보험을 드는 것보다 정기보험을 드는 것이 월 납입 보험료가 10분의 1 수준으로 저렴하다”면서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일정 기간(10~20년)으로 한정해 가입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설명했다.
설계사 만남은 부담…모바일 선호
보험을 들기 위해 설계사를 만나지 않아도 된다는 점도 밀레니얼 세대가 미니보험에 주목하는 이유다. 직장인 김재송(31)씨는 스키장에 가기 전 1500원으로 에이스손해보험의 하루짜리 온라인 스키보험에 가입했다. 김씨가 이 상품을 선택한 이유는 ‘모바일 간편 가입’이라는 문구 덕이었다. 김씨는 “예전에 보험사 홈페이지에서 보험료를 조회해보려고 개인 정보를 입력했는데 나중에 설계사한테 전화가 와서 만나자 하더라”면서 “그렇게 해서 만나면 다른 보험도 가입하라고 권하는 경우가 있어서 가능한 한 설계사를 만나는 건 피하고 있다”고 했다.
김씨의 이야기는 보험사들이 현장에서 듣는 젊은 고객들의 의견을 보여주는 사례다. 처브라이프생명은 최근 유방암보험에 가입한 20대 가입자들을 만나 이 상품에 가입한 이유를 들었다. 이때 만난 20대 고객들이 공통적으로 꼽은 보험 가입 이유는 “설계사를 만날 필요 없이 마음껏 상품 설명을 살펴보고 가입할 수 있어서였다”고 한다.
설계사 입장에서도 미니보험은 취급할 이유가 없다. 월 납입 보험료가 너무 싸기 때문이다. 설계사의 수익인 판매수수료는 보험료의 일부를 떼어 지급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험료가 비싸야 설계사도 돈을 번다. 한 달 납입 보험료가 1만원도 안 되는 상품을 팔아봤자 손에 쥐는 돈이 적다.
게다가 상품 구조가 단순하다는 점도 설계사들이 미니보험을 취급하지 않는 이유다. 예전처럼 종신보험을 주계약으로 하고 실손의료보험, 암보험 등 이런저런 특약을 추가하는 상품은 구조가 복잡하다. 설계사의 설명에 의지해 고객이 보험을 이해하는 방식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미니보험은 한두 개의 위험만을 보장하므로, 굳이 설계사를 통하지 않고도 보장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