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4일(현지시각)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돌비극장에서 열린 제91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기업 ‘넷플릭스’가 제작한 영화와 다큐멘터리가 아카데미상(오스카상) 4개를 받았다. 멕시코 출신인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스페인어 흑백영화 ‘로마’는 감독상과 촬영상,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이란 출신인 레이카 제타브치 감독의 힌디어 작품 ‘피리어드, 더 패드 프로젝트’는 단편 다큐멘터리상을 받았다. 스트리밍 기업이 만든 한 편의 영화가 3개 상을 받은 건 이 영화제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앞서 평단은 ‘로마’를 유력한 오스카 작품상(최고상) 수상 후보로 꼽아왔다. 이 영화는 2018년 9월 8일 이탈리아 베니스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받으며 세계 3대 영화제 역사를 다시 쓴 바 있다. 그러나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고배를 들었다. 로마의 작품상 수상 불발에 대해 이 작품이 넷플릭스 영화이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미국의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넷플릭스 영화는 오스카상 후보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생각을 수차례 밝힌 바 있다. 스필버그의 회사인 앰블린 엔터테인먼트 대변인은 지난 3일 “스필버그 감독은 스트리밍과 극장 상영의 차이를 강하게 느끼고 있다”면서 “그는 (아카데미 시상식을 주관하는)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협회(AMPAS)’ 이사회에서 이 문제가 다뤄지길 원하며, 다른 영화인들도 본인의 캠페인에 동참해주길 바라고 있다”고 밝혔다.
넷플릭스 영화는 일단 극장에서 개봉한 후 일정 시간이 흐른 뒤 인터넷텔레비전(IPTV), 유튜브 등에서 볼 수 있는 기존 영화와는 유통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스트리밍 서비스와 극장 개봉이 동시에 이뤄진다. ‘로마’는 이례적으로 20개국 극장에서 사전에 개봉되기는 했지만, 이는 극장 상영이 목적이라기보다는 극장 상영이 아카데미 시상식 노미네이트(후보작 지명) 조건이기 때문이었다. 당해 미국 LA 상업영화관에서 7일간 이상 상영된 영화만 오스카상 후보에 오를 수 있다.
이처럼 논란이 일어나는 상황은 할리우드에서 넷플릭스의 영향력이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리고 넷플릭스는 사람들이 영화를 소비하는(보는) 방식을 바꾸고 있음은 물론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의 수익 창출 구조도 바꾸려 하고 있다. 커지는 넷플릭스의 영향력으로 인해 변하는 ‘오스카의 경제학’을 5가지 효과로 정리해 봤다.
효과 1│극장 우선 개봉 전략 위기
넷플릭스의 두각은 우선 수십 년 동안 지속돼 온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스튜디오)의 극장 우선 개봉 전략이 붕괴되는 신호탄으로 풀이된다. 이는 일종의 가격 차별 전략이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A 영화를 15달러의 값어치가 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같은 작품을 단돈 1달러짜리로 평가절하할 수도 있다. 영화 선호도는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이처럼 영화에 대한 가치 산정 기준이 제각각인 소비자 그룹들로부터 최대한 많은 총수익을 거두기 위해 노력해왔다. 이들은 오래전에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 영화의 개봉 시기(타이밍)와 품질을 전략적으로 고려해서 많은 돈을 낼 의향이 있는 고객을 우선적으로 공략해야 한다는 점을 알아냈다. 극장 개봉 후 몇 주만 기다려도 여러 유통 경로를 통해 극장의 절반도 안 되는 가격에 영화를 수차례 반복해서 볼 수 있지만, ‘참을성 없는’ 소비자들은 극장으로 달려가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고 영화를 본다.
영화사들은 우선 극장에서 영화를 개봉한 후 과거의 VHS비디오테이프, 디브이디(DVD)를 지나 현재의 IPTV, 유튜브 등에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하는 방식을 택해왔다. 이는 1990년대 이후 ‘강자들의 시장’으로 재편된 미국 메이저 영화사들의 활발한 ‘블록버스터(막대한 흥행 수익을 내는 영화)’ 제작·배급으로 이어졌다. 방학과 휴가철 등 적절한 타이밍에 맞춰 대규모 예산이 투입된 영화를 극장에서 상영해 큰 수익을 꾀하는 것이다.
그러나 극장 상영을 주된 목표로 하지 않는 넷플릭스의 존재감이 점점 커지면서 이 같은 수익 창출 모델에 변화가 예고됐다. 테드 사란도스 넷플릭스 최고콘텐츠책임자(CCO)는 2015년 한 인터뷰에서 “관객은 원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 영화를 볼 자유가 있다”며 “극장 상영 몇 달 뒤에 스트리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식이 깨져야 한다”고 했다. 넷플릭스는 여전히 이런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봉준호 감독의 영화 ‘옥자’가 2017년 6월 29일 넷플릭스와 극장에서 동시에 개봉된 바 있다. 옥자는 넷플릭스가 578억원을 투자해서 제작된 영화다.
효과 2│번들 전략 확산 전망
이런 상황은 번들(bundle·묶음) 판매 전략의 확산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번들이란 말 그대로 여러 개의 제품을 무더기로 판매하는 마케팅 전략을 뜻한다. 넷플릭스는 기존 영화 제작사들과는 완전히 다른 전략을 취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취향이 제각각인 개별 고객에게 개별 영화를 판매하는 사업을 하지 않는다. 가입자로부터 월정액 이용료를 받아 여러 종류의 콘텐츠를 대량으로 공급한다. 넷플릭스는 기존 영화사들처럼 블록버스터를 기획·제작하기 위해 소비자들이 어떤 개별 영화를 얼마나 더 가치 있게 여길지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없다.
번들은 흥미로운 방식으로 작동한다. 판매자가 소비자에게 더 많은 콘텐츠를 제공하고 가입자가 늘어날수록 판매자는 가격 결정에 유리한, 보다 정확한 통계를 만들 수 있다. 넷플릭스는 가입자가 모든 영화(콘텐츠)에 대해 지불할 용의가 있는 평균 가치를 자체적으로 추산한 후 그 가치보다 약간 낮은 가격을 책정해 최대의 수익을 뽑아내려고 한다. 가격이 소비자가 느끼는 효용(인간의 욕망을 만족시킬 수 있는 재화의 효능)보다 높으면 가입자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마이클 스미스 카네기멜런대 하인즈칼리지 경영정보시스템 전공 교수는 “넷플릭스 방식의 장점은 제작사가 기존 스튜디오 방식보다 잃을 것이 적다는 점”이라며 “스튜디오 방식에서는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 영화가 흥행에 실패할 경우 전체 사업이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만약 넷플릭스가 사전에 극장에서 영화를 개봉함으로써 저명한 영화제에서 상을 탈 수 있다면, 당연히 브랜드 홍보 차원에서 좋은 일이다”라며 “하지만 이는 넷플릭스 수익성 측면에서 필수 조건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효과 3│넷플릭스 따라가는 할리우드
물론 넷플릭스의 전략은 기존 영화 제작 비즈니스 모델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하기 어렵다. 존 피티안 전미 극장주협회장은 2018년 11월 “넷플릭스가 극장 개봉을 먼저 하고, 나중에 가입자에게 독점 스트리밍을 제공하면 돈을 더 많이 벌고 훨씬 더 깊은 문화적 유대감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미 번들 전략은 할리우드 메이저 제작사로도 확산되고 있다.
2017년 12월 14일 미국의 월트디즈니컴퍼니는 ‘미디어 황제’ 루퍼트 머독이 소유한 21세기폭스의 영화·TV 사업 부문을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인수 금액이 524억달러(약 57조1000억원)에 이르는 ‘빅딜’이다. 합병 작업은 올해 마무리될 전망이다. 또 미국 워너브러더스는 최근 통신기술(IT) 기업 AT&T와 합병 작업을 마무리했다. 미국 경제 전문지 ‘포브스’는 “이들 회사의 합병은 모두 넷플릭스의 마케팅 전략을 들여오기 위한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이미 이들 회사는 넷플릭스와 비슷한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Over The Top)’ 시장으로의 진출 방침을 밝힌 바 있다.
물론 ‘영화는 스크린에서 봐야 제맛’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많지만, 콘텐츠 소비 형태가 점차 자유로워지는 추세에 따라 향후 번들 전략은 영화계 전반으로 확산될 가능성이 있다. ‘포브스’는 “넷플릭스는 기존 구독자들을 유지하고 새로운 구독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을 유인해 ‘놀라운’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라며 “이는 디즈니와 같은 초창기 넷플릭스 파트너들이 자체적인 스트리밍 서비스를 시작할 움직임을 보이기 때문이다”라고 보도했다.
효과 4│스트리밍 히트작 예고
넷플릭스의 오스카 선전에 따라 스트리밍 히트작 탄생이 예고됐다는 점도 중요한 포인트다. 오스카 작품상은 전통적으로 작품이 벌어들이는 돈에 ‘두 번째 바람’을 불어 넣는 계기가 됐다. 이는 수상이 영화 제작 스튜디오가 IPTV업체 등과의 거래에서 벌어들일 수 있는 금액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의미다. 미국 시장조사기관 컴스코어에 따르면 지난해 오스카에서 작품상을 포함, 4개 상을 받은 영화 ‘셰이프 오브 워터(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경우 작품상 후보에 오른 뒤 기존 박스오피스 수입의 50% 이상을 추가로 벌었다.
이 같은 ‘오스카 효과’는 훨씬 광범위하고 속도가 빠른 넷플릭스 스트리밍 영화에서 극대화할 가능성이 크다. 외신에 따르면 넷플릭스의 오스카 수상을 위한 홍보 활동은 스트리밍 서비스 콘텐츠에 대한 인지도를 높이는 것을 목적으로 한 연간 24억달러(약 2조7000억원) 규모의 전체 마케팅 비용에 비해서는 규모가 크지 않다. 넷플릭스는 오스카 수상을 위한 리스트를 관리하고 있는데, 연간 예산은 2000만달러(약 225억원) 규모다.
다만 전통적인 오스카 효과가 개별 영화로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 증가를 뜻했다면 넷플릭스에서는 가입자 증가를 의미한다는 것은 차이점이다. 넷플릭스는 지난해 전 세계에서 2900만 명의 가입자가 증가했다. 가입자 증가는 수익 확대와 직결된다. 작년 넷플릭스는 158억달러(약 17조8382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거의 모든 수익은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해 1억3900만 명의 가입자(지난해 말 기준)에게 매달 평균 9달러의 사용료를 부과한 데서 비롯됐다. 향후 영화 흥행 여부를 판가름하는 기준이 지금과는 달라질 가능성도 있는 셈이다.
효과 5│다양한 영화 제작 기회 확대
넷플릭스 부상이 가지는 또 다른 의미는 보다 다양한 영화가 탄생할 기회가 많아진다는 점이다. 실제 올해 오스카상을 받은 넷플릭스 수상작 2편은 모두 비영어권 작품이었다. 앞으로는 할리우드 메이저 스튜디오에서 일하지 않아도 오스카에서 최우수 작품상까지 노릴 수 있다는 의미다.
조슈아 엘리아스버그 와튼스쿨 마케팅 전공 교수는 “넷플릭스는 많은 나라에서 현지 ‘생산자’들을 찾아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며 “그들에게 지역적으로 매력적인 동시에 국제적인 매력까지 지닌 이야기를 개발하기 위한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했다. 로마의 감독 쿠아론은 미국 영화 잡지 ‘버라이어티’와 인터뷰에서 “넷플릭스는 전통적인 극장 개봉 방식에서는 결코 만들어지지 않았을 영화를 만드는 것을 허락했다”고 했다.
특히 오스카 수상은 넷플릭스가 영화 산업의 좋은 인재를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수단이 될 수 있으며, 이는 중요한 마케팅 포인트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미 넷플릭스는 할리우드 스튜디오를 인수하고 유명 배우들을 모으고 있다. 미국 영화 컨설팅 회사 리카타컴퍼니의 리치 리카타 최고경영자(CEO)는 “영화 산업에는 혁명적인 변화가 필요하고, 바로 이 일을 넷플릭스가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카데미 시상식 아카데미 시상식(Academy Awards)은 미국 영화업자와 사회법인 영화예술 과학아카데미협회가 수여하는 미국 최대의 영화 시상식이다. 전년도에 발표된 미국의 영화 및 미국에서 상영된 외국 영화를 대상으로 우수한 작품과 그 밖의 업적에 대해 매년 2월 마지막 일요일에 시상한다. 1929년 1회 시상식이 열렸다. 아카데미상은 오스카상으로도 불린다.
오스카 트로피의 경제적 가치는 얼마일까
반짝거리는 오스카 트로피는 사실 도금된 것이다. 제작 원가는 약 400달러(약 45만원)에 불과하다. 이 트로피는 종종 유족들에 의해 미국 뉴욕 소더비 경매에 등장해 몸값이 크게 뛰기도 한다. 2011년엔 영화 ‘시민케인(1941)’의 감독 겸 주연 오손 웰스가 받은 오스카 남우주연상 트로피가 86만달러(9억7000만원)에 낙찰됐다. 물론 오스카상의 가치는 단순히 수상의 명예와 트로피에 국한되지 않는다. 오스카상의 경제적인 가치는 과연 얼마일까.
영화 관련 통계를 제공하는 미국 ‘박스오피스퀀트’ 홈페이지에 따르면 1990~2009년에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의 평균 수익은 1900만달러(북미 시장 기준·215억원) 수준이다. 그러나 같은 시기 오스카 작품상 수상작은 이보다 6배 이상 많은 1억3980만달러(1578억원)의 수익을 기록했다. 이 밖에도 △감독상 1956만달러(220억원) △미술상 1223만달러(138억원)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상 1051만달러(119억원) △편집상 1033만달러(117억원) 등의 수익 창출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집계됐다.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인 IBIS 보고서에 따르면 2009~2013년 오스카 작품상을 수상한 작품의 제작비는 평균 1700만달러(192억원)였지만, 북미 흥행수익은 평균 8250만달러(931억원)였다. 오스카 작품상 수상작은 제작비 대비 평균 네 배 이상의 수익을 올리는 것이다. 이들 작품들이 작품상 후보에 오르기 전까지 올린 수입은 전체 수익의 42.8% 수준이었다. 후보에 오른 후 35.6%, 수상 후 21.6%의 구성이었다. 수익의 절반 이상이 오스카 작품상을 통해 나온 셈이다.
또 다른 분석은 넬슨 랜디 콜비칼리지 교수의 2001년 논문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논문은 오스카상 작품상 후보작들과 이와 같은 시기에 개봉한 영화 중 후보작으로 선정되지 않았으나 높은 흥행 수입을 기록한 영화들을 비교 분석했다. 논문에 따르면 작품상 후보작에 올랐을 때의 경제적 효과는 480만달러(54억원), 작품상 수상의 효과는 1270만달러(143억원) 수준이었다. 국내 정보통신정책연구원 방송미디어연구실이 이 결과를 물가지수를 적용해 2014년 기준으로 환산한 결과 각각 708만달러(79억원), 1873만달러(211억원)에 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