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5년 개봉한 윌 스미스, 마틴 로런스 주연의 ‘나쁜 녀석들(Bad Boys)’은 빠르게 진행되는 이야기 속 화려한 볼거리가 가득한 영화다. 마이애미를 배경으로 젊은 남자들의 삶이 극명하게 대비되며 펼쳐지는데 그 중심에는 자동차가 있다. 선과 악을 상징하며 대립하는 ‘포르쉐(964) 터보’와 ‘쉘비 코브라 427’이다.
영화의 압권인 마지막 자동차 추격전은 긴 직선을 달리는 단순한 플롯이지만, 짧은 편집과 색감으로 생동감이 극대화됐다. 특히 마이클 베이 감독은 이 장면을 포르쉐 터보와 쉘비 코브라의 대결로 풀어낸 덕분에 끝까지 팽팽한 긴장감을 이어갈 수 있었다.
포르쉐야 요즘은 대중적인(?) 스포츠카로 불리지만, 악역 상대 쉘비 코브라는 여전히 생소한 차다. 동글동글한 바디에 지붕이 없는 로드스터 형식의 코브라는 요즘 자동차들과는 그 모양도 확연하게 다를뿐더러 국내에서는 구경조차 하기 어려운 모델이다. 최근 한 국내 업체가 쉘비 코브라와 모양이 같은 차로 한창 프로모션을 하고 있긴 한데 그 차를 코브라로 부를 수 없다.
쉘비 코브라는 생각보다 계보가 복잡하고 오리지널보다 레플리카(복제차)가 훨씬 많은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또한 포드에서 생산하는 스포츠카인 머스탱에도 코브라 버전이 있을 정도로 쉘비 코브라, 쉘비 머스탱, 머스탱 코브라 등 파생형이 상당히 많다.
쉘비 코브라는 미국의 레이서이자 튜너인 캐롤 쉘비가 영국 스포츠카 전문 업체 AC 카즈와 함께 만들었다. 1950년대 영국에서 경량 섀시의 진가를 맛본 캐롤 쉘비는 경량 스포츠카를 생산하던 AC 카즈의 2인승 경량 로드스터 에이스를 모델로 선택했다.
문제는 엔진이었다. 쉘비가 내세운 특별한 조건은 ‘엔진은 미국에서 조달할 것’이었다. 당초 쉘비는 쉐보레 콜벳의 V8 스몰블록 엔진을 사용하려고 했지만, 레이스에서 경쟁자가 늘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던 쉐보레는 제안을 거절했다. 결국 쉘비는 AC 카즈와 협력 관계에 있었던 포드의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초기 코브라에는 포드의 V8 260 큐빅인치(약 4.3ℓ) 스몰블록 엔진이 탑재됐다. 이후 개량을 거듭하면서 1965년 엔진 크기는 V8 427 큐빅인치(약 7.0ℓ)까지 커지고 출력도 450마력까지 올라갔다. 코브라 427이라고 불리는 최종형이 가장 유명하고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는 모델이다.
하지만 AC 카즈의 상황은 안 좋았다. 판매량 감소를 버티지 못하던 AC 카즈는 1970년대 말 최종 파산했다.
오리지널과 흡사한 수퍼포먼스 Mk.Ⅲ
이후 쉘비 코브라는 소규모 생산 업체들에 의해 다양한 버전의 레플리카로 등장했다. 워낙에 오리지널 모델인 AC 코브라의 생산량도 적었지만 미국과 영국 양쪽에서 같은 차를 생산하다 보니 상표권이나 판매권이 애매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427엔진을 탑재한 1960년대 오리지널 모델의 가격은 최소 20억원 가까이 되지만, 수많은 레플리카 업체에서 만든 모양만 비슷한 복제차들의 가격은 1억원 이하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레플리카임에도 오리지널 쉘비 코브라 다음으로 대우받는 회사도 있다. 미국 소규모 자동차 회사인 수퍼포먼스가 제작한 차들이다. 이 차들은 AC 카즈의 디자인과 제작 방식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사실 오리지널 쉘비 코브라는 먼발치에서 구경만 해도 운이 좋은 편이다. 대부분 개인 컬렉터들이 가지고 있는 데다, 비싼 가격에도 매물이 나오자마자 사라지기 때문이다. 반면 오리지널을 제대로 재현했다는 평가를 받는 수퍼포먼스의 코브라는 상대적으로 접근이 쉽다. 아쉽게도 쉘비나 코브라라는 이름을 사용할 수는 없지만, 쉘비 코브라를 찾는 사람들에게 현실적인 대안이기도 하다.
몇 년 전 운 좋게 수퍼포먼스의 Mk.Ⅲ를 시승할 기회를 얻었다. 코브라 427의 복각판인 Mk.Ⅲ는 스틸 파이프로 짠 프레임에 알루미늄 패널을 사용했으며 엔진 역시 쉘비가 튜닝한 포드 427FE를 사용했다. 빵빵하게 불려 놓은 리어펜더나 또랑또랑한 앞모습, 미국 스타일로 휠 하우스를 꽉 채운 17인치 휠, 미끈한 굴곡을 가진 사이드 뷰까지, 우람한 근육질 바디와 관능적인 섹시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다.
50년 넘게 지나도 이 디자인은 요즘 디자인에 전혀 주눅들지 않는다. 스틸 프레임에 알루미늄 패널을 올린 외관은 흠잡을 곳 없이 완벽한 비율을 자랑한다. 최근에는 FRP(섬유강화플라스틱)로 성형한 패널을 사용해 무게를 줄인 버전도 있지만 코브라는 알루미늄 패널이 정석이다. 가격도 알루미늄 패널 쪽이 훨씬 높으며, 일본 내에서는 최소 900만엔(약 9300만원)부터 시작한다.
Mk.Ⅲ는 요즘 차들과는 전혀 다른 차다. 엔진을 제어하는 ECU(전자제어장치) 대신 기계식 카뷰레터가 있고 전자 장비는 전혀 없다. 무거운 클러치와 낮은 시트 포지션, 불편한 운전석 등 편의성이라고는 전혀 찾을 수 없으며 심지어 안전벨트도 요즘의 버클식과 다르다. 운전자를 시트에 묶는 방식에 가깝다.
실내는 매우 단출하다. 거의 90도에 가까운 대시 보드에는 rpm(분당 회전수) 게이지, 속도계, 유온계, 수온계 등 간단한 것들만 있다. 차체 중앙에 자리 잡은 시프트 노브는 상당히 긴 편이며, 구조가 최근의 것들과는 상당히 다르다. 도어 안쪽의 패널은 과감하게 생략됐으며, 탄탄한 느낌의 시트도 클래식한 멋이 가득하다. 얇은 프레임의 윈드 스크린과 윈드 스크린 아래쪽에 자리 잡은 룸미러도 오리지널 사양을 그대로 가져왔다.
미국 엔진답게 427엔진은 초반 토크가 매우 강하다. 변속하는 타이밍을 놓치면 3단에서도 휠 스핀이 발생할 정도로 다루기가 어렵다. 천장이 없는 로드스터, 가벼운 차체, 590마력의 폭발적인 출력까지 고려하면 Mk.Ⅲ를 운전하기 위해 운전자는 많은 것을 배우거나 포기해야 한다.
불편하고 번거로운 것이 많지만 이 차는 운전석에 앉아 차를 출발시키면 모든 단점을 잊을 수 있다. 낮은 차장 너머로 불어오는 맞바람과 기분 좋은 배기음, 토크 스티어만 주의하면 착착 감기는 손맛까지 오감만족이 따로 없다. 물론 이런 차를 일상 주행용으로 사용하기에는 매우 불편하다. 그럼에도 코브라는 반세기 넘는 시간 동안 많은 자동차 마니아들이 꿈꾸는 멋진 차다.
이런 차를 타게 되면 단순히 비싼 차와 좋은 차의 기준이 보다 명확해진다. 요즘에야 워낙에 성능이 떨어지거나 문제가 있는 차는 거의 없고 출력도 예전에 비하면 두 배 이상 높아졌다. 여기에 다양한 편의 장비까지 기본 제공되니 메이커만 다를 뿐 개성이나 차별성 같은 것은 점점 옅어지고 있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편하고 빠른 차를 살 수 있는 세상이다.
반면 좋은 차의 기준은 사람마다 여전히 조금씩 다르다. 어떤 사람은 불편함을 감수하더라도 개성 있는 디자인의 차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디자인은 포기하더라도 폭발적인 성능을 가진 차를 선호하기도 한다. 그러나 확실하게 얘기할 수 있는 건 비싼 차는 돈만 있으면 살 수 있지만 좋은 차는 시간을 두고 천천히 이해할수록 즐길 수 있는 즐거움이 더 커진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