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타와 밀리오레가 이끄는 소매상권이 일반인이 즐겨 찾는 패션 상권으로 성장하면서 주변에 새로운 상가의 개발로 이어졌다. 사진 트위터 캡처
두타와 밀리오레가 이끄는 소매상권이 일반인이 즐겨 찾는 패션 상권으로 성장하면서 주변에 새로운 상가의 개발로 이어졌다. 사진 트위터 캡처

1990년대 후반에 발생한 아시아 외환위기(IMF 금융위기)는 동대문 패션 클러스터의 체질을 바꿔놓았다.

경기 불황으로 대기업에서 퇴사한 디자이너들이 동대문 패션 클러스터에 진출하기 시작한 것이 이 무렵이다. 수준 높은 디자이너들의 유입은 동대문 패션 산업 생태계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IMF 금융위기와 그에 수반된 환율 폭락은 공황에 버금가는 충격이었다. 하지만 환율 폭락은 동대문 패션 클러스터에는 새로운 기회이기도 했다. 다른 화폐 대비 원화 가치가 급락해 동대문 의류 가격이 이전보다 훨씬 저렴해졌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이전엔 동대문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고객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외국인 보따리 상인들이 그들이다.

경제 위기가 패션 클러스터의 의류 생산자 측면(디자인 포함)에서는 품질 향상으로 이어졌고, 수요자 측면에서는 새로운 글로벌 고객 유입을 불러온 것이다.

이런 변화는 동대문 시장의 상권을 세분화하는 데 일조했다. 신규 소매시장권의 등장인데, 1990년대 개발된 두타와 밀리오레, 2000년대 헬로APM과 굿모닝시티 등 거대한 쇼핑몰들이 대표 사례다. 이들은 공간적으로 동대문을 남북으로 가르면 장충단로의 서편에 있는데, 대개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의류를 판매하는 일종의 소매시장이다. 결과적으로 동대문 패션 클러스터는 장충단로를 중심으로 서편의 소매시장과 동편의 도매시장으로 나뉘게 됐다. 서편의 소매시장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의류를 판매하는 곳으로 새로운 유형의 고층 쇼핑몰이며, 동편의 도매시장은 국내 소매상인과 해외 바이어를 대상으로 하는 쇼핑몰이다.

두타와 밀리오레가 이끄는 소매상권이 일반인이 즐겨 찾는 패션 상권으로 성장하면서 주변에 새로운 상가(2002년 헬로APM, 2006년 라모도, 2007년 패션TV, 2008년 굿모닝시티 등)의 개발로 이어졌고, ‘동대문 쇼핑몰’ 스타일을 표방하는 상가형 쇼핑몰 개발이 전국을 휩쓸었다.

그러나 새로운 유형의 대형 상가 등장에도 쇼핑몰 내부를 구성하는 개별 소매상들은 상품 구성에서 기존 대형 쇼핑몰 소매상들과 뚜렷한 차별성이 없었다. 같은 유형의 상품을 판매하는 (어찌 보면 특색 없이 유사한) 쇼핑몰들이 반복 재탄생한 것이다. 그리고 이는 상권의 과잉 공급으로 읽히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2000년대 온라인 쇼핑 확대와 분양형 상가의 구조적 문제점 등이 복합적으로 엮이면서 소매상권이 위기에 처하게 됐다.

일부 상가는 미분양과 폐업 등 심각한 상황에 직면했고, 장기간 공실에 허덕이다가 최근에 대기업 주도의 임대형 상권(롯데피트인과 현대프리미엄아울렛 등)으로 바뀌었다.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반 상당한 인기를 끌던 소매상권이 짧은 성공기를 뒤로하고 침체에 들어선 데 비해, 도매상권은 꾸준히 성장하고 변화했다.


동대문 평화시장의 야경. 사진 트위터 캡처
동대문 평화시장의 야경. 사진 트위터 캡처

온라인 쇼핑몰이 도매시장 성장에 일조

2010년대 이후 유니클로, 자라와 같은 SPA 브랜드의 성장과 온라인 쇼핑의 활성화로 인해 동대문 시장이 위기에 처했다는 기사를 많이 접하곤 한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이야기다.

동대문 시장은 위에서 설명했듯이, 소매시장과 도매시장이 공존한다.

그리고 온라인 쇼핑몰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의류를 판매하기에 도매시장보다는 동대문 소매시장과 경쟁한다. 따라서 소매시장은 온라인 쇼핑몰이 급격히 성장할수록 위기에 빠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도매시장은 상황이 다르다. 온라인 쇼핑몰은 자체적인 의류 제작 역량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동대문 도매시장에서 판매되는 의류를 본인 쇼핑몰에 올려서 판매하는 경우가 많다. 온라인 쇼핑몰의 활성화가 동대문 도매시장의 성장에 일조할 수 있는 구조다. 그렇다 해도 온라인 쇼핑몰의 부상으로 동대문 도매시장의 수익 구조가 과거보다 나빠졌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

이러한 변화로 도매시장 내 도매상인의 세분화도 가속화했다. 대략 세 가지 그룹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 그룹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인식하는 도매상으로 제품을 자체적으로 기획·디자인하고 봉제공장에 외주를 주는 ‘원도매상’이다. 이들은 대형 패션 기업과 같은 사업 구조를 갖고 있다. 두 번째 그룹은 ‘중도매상’이라 불리는 일종의 패션 유통 업체인데 원도매상으로부터 물건을 매입한 후 도매상에 재판매한다. 마지막으로 원도매와 중도매를 병행하는 일종의 하이브리드 그룹이 있다. 원도매상처럼 본인이 직접 제품을 제작하기도 하고 다른 도매상 물건을 떼다 팔기도 한다. 이들은 ‘병행업체’라 불린다.

동대문 패션 클러스터는 판매 기능(동대문 시장)과 생산 기능(창신동 포함 주변 봉제공장)이 공존하는 거대한 산업 생태계다. 동대문 시장은 도매시장과 소매시장으로 구분되며, 도매시장은 원도매와 중도매, 병행업체 세 가지로 세분화된다.

우리가 바라보는 동대문 시장은 화려한 겉모양 뒤에 매우 복잡한 생태계가 살아 숨 쉬는 곳이다. 그리고 이러한 복잡한 생태계인 동대문 패션 클러스터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거대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 이번 칼럼은 한구영 서울대 도시계획학 박사의 학위 논문 ‘클러스터의 진화: 동대문시장 패션클러스터를 중심으로’를 참조했다.


▒ 김경민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부원장, 공유도시랩 디렉터,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회 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