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하는 뉴욕 증시와 50년간 최저 수준의 실업률. 사람들은 여기에 눈이 멀어 미국 경제 정책의 타당성에 감히 의문을 던질 생각조차 안 하는 것 같다. 객관적이고 절제된 분석의 엄격함은 순간의 만족감에 무뎌졌다. 큰 실수다. 빗나간 타이밍에 내놓은 재정 부양책, 공격적인 관세 부과 그리고 연준에 대한 전례 없는 수준의 공격. 이 모든 것을 따졌을 때 지금 트럼프노믹스(트럼프의 경제 정책)에 대한 비판의 수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
정치인과 전문가들은 항상 정책적 논쟁 상황을 선전 도구로 활용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지지자들의 선전술은 지금 새로운 레벨로 넘어갔다. 이들에겐 연방정부 적자가 10년 안에 ① 1조5000억달러까지 부풀어 오른다거나 나라 부채가 GDP의 92%, 즉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대 수준에 달할 것이란 사실이 문제 되지 않는다는 것은 명백하다. 이들에겐 감세도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 만들 방법의 하나로 합리화된다.
또 이들은 관세를 소비자 가격 인상의 주범, 글로벌 공급망 효율성을 막는 장애물로 보지 않는다. 이들에게 관세는 교역 상대국들이 미국에 대한 ‘태도’를 바꾸도록 강제할 수 있는 ‘무기’일 뿐이다.
연준 독립성에 대한 트럼프의 공격도 고용 극대화, 물가 안정이라는 중앙은행의 두 가지 목표 달성을 위협하는 행위로 인식되기보다는 대통령이 사안을 자기 입맛에 맞게 선전하는 특권 행사처럼 비친다.
트럼프의 경제 정책 접근법에는 기본적으로 세 가지 결함이 있다.
첫째, ‘의도’와 ‘그에 따른 영향’ 사이의 단절이다. 이들은 대규모 감세가 미국 경쟁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법인세 감세로 시중에 돈이 풀렸지만, 정부 적자와 부채 규모는 여전히 크다. 세금 감면으로 세수가 감소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세금 부담 주체를 경제 한 부문에서 다른 부문으로 이전하는 식의 재정 정책이 실질적 개혁에 더 가까웠을 것이다.
게다가 4.1%로 사상 최저 수준 실업률(지금은 3.6%)을 기록했던 2017년 말 재정 부양책을 도입한 것도 문제였다. ‘가장 필요 없을 때’ 도입된 이 정책으로 시장과 경제에는 거품이 끼었고, 나중에 경제가 둔화할 때 추가로 부양책을 도입할 여지마저 없앴다.
마찬가지로 트럼프 관세 정책은 20세기 가장 큰 정책 실수 중 하나로 알려진 1930년 ② ‘스무트-홀리법’의 교훈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이 정책 탓에 1932년 기준 세계 교역액은 이 법의 시행 이전보다 60% 정도 급감했다. 사실 그때보다 지금의 미국이 무역으로 인한 경제 붕괴에 훨씬 더 취약하다. 1929년 11%에 불과했던 GDP 대비 외국과 교역액 비중은 지금 28%까지 늘었다. 또 당시에는 미국이 순 채권국이었지만 지금은 채무국으로 전락했다.
관세 전쟁을 벌여 소비자·기업의 부담을 가중시킨 장본인 트럼프는 관세를 ‘아름다운 것’이라고 극찬한다. 이는 ③ 1928년의 고통스러운 기억을 상기시킨다. 당시 공화당은 관세를 “이 나라 경제생활의 근본적이고 필수적인 원칙, (중략) 국가의 지속적인 번영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트럼프는 그때의 교훈을 무시하는데, 이는 매우 위험한 것이다.
최근 트럼프의 연준 때리기도 마찬가지다. 1970년대 대공황 이후 중앙은행의 정치적 독립성을 지키는 것이 물가 안정을 위한 ④ 유일한 돌파구라는 점은 널리 알려진 상식이다. 미국에서는 1978년 ⑤ ‘험프리-호킨스 법안’ 통과 덕분에 폴 볼커 당시 의장은 ‘쓰라린’ 통화 긴축 정책을 도입할 수 있었고, 이를 통해 두 자릿수 물가 상승세에서 탈출할 수 있었다. 볼커에게 자유가 없었다면, 그는 당시 지도자들의 정치적 함수 관계에 따라 제약받았을 것이다. 지금으로 치면 트럼프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의 정책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말이다.
트럼프 경제 정책의 결정적 결함 두 번째는 적자 예산과 관세, 통화 정책 간의 연결고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고(故) 마틴 펠드스타인은 오래전부터 적자 예산이 이미 낮아질 대로 낮아진 국내 저축률을 더 쪼그라들게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 무역 적자가 커질수록 그 공백을 잉여 해외 저축으로 메워야 한다고 했다. 이 관계를 부정함으로써 미국은 스스로 자초한 무역 적자를 중국 탓을 하며 비난하게 됐다.
그러나 관세가 부과되면 미국의 공급망은 중국의 저비용 생산 업체에서 다른 고비용 생산 업체로 이전될 것이다. 미국 소비자는 세금 인상과 맞먹는 수준의 타격을 받게 될 것이고, 결국은 물가 상승 위험도 높아질 것이다. 특히 후자의 경우가 현실화하면 미국의 통화 정책이 바뀔 수 있다. 물론 연준의 독립성이 더는 훼손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말이다.
마지막으로 정책 도입에 따른 영향을 평가할 때 명심해야 할 것은 시차(時差)다. 적자 예산 규모가 커진다고 해도 저금리 상황에서는 부채 비용에 대한 단기적 압박이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이런 경향이 장기간 계속될 것이란 보장은 없다. 특히 이미 증가하고 있는 GDP 대비 연방정부 부채 비중은 향후 10년 동안 약 14%포인트 상승할 것으로 예상된다. 부채 비중이 장기간에 걸쳐 더 커지는 것이다.
관세와 통화 정책 변화에 따른 ‘파괴적인’ 효과가 완벽히 모습을 드러내기까지는 12~18개월 정도가 걸린다. 그러므로 정치인과 투자자들이 현재 정책의 성과를 평가하려면, 2020년 후반의 경제 상황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선전에 현혹돼서는 안 된다. 특히 트럼프는 자신보다 사안에 대해 더 잘아는 사람과 붙었을 때조차 전혀 밀리지 않는다. 1990년대 초 ‘정직한 브로커’ 역할을 하기 위해 설립돼 주요 정책 현안에 대해 토론하고 의견을 조율해 온 국민경제협의회(NEC)는 이제 기능 장애에 빠졌다. 오랫동안 자유무역주의자 역할을 자임해온 래리 커들로 NEC 위원장은 이제 트럼프의 관세와 연준 때리기를 옹호하기 위해 끙끙 앓고 있다. 전통적으로 자유무역 옹호자였던 공화당의 내부 상황도 똑같이 복잡하다.
트럼프의 보복성 고함지르기는 역사의 교훈을 무시하고, 현대 경제 분석 결과를 거부하며, 정책 결정 과정의 제도적 건전성을 훼손하고 있다. 트럼프의 정책 실기가 그동안 방대한 서사시 수준으로 쌓였고, 이제 그 정책 실수는 하나의 규칙이 되고 있다. 다가오는 결과를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① 미국 의회 예산국(CBP)에 따르면 2020~2029년 미국의 예산 적자 규모는 9조9000억달러로 예상된다. 법정 최대치보다 1조5000억달러 낮은 수준이다. GDP 대비 부채 규모는 2019년 78%에서 2029년 87%까지 비중이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② 1930년대 대공황은 1929년 10월 뉴욕 주식시장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실제로 악화시킨 것은 증시 폭락보다 ‘스무트-홀리법’이다. 스무트-홀리법은 대공황 초기인 1930년 미국이 자국 산업 보호 명분으로 2만여 수입품에 평균 59%, 최고 400% 관세를 부과한 법이다. 이 법은 세계 각국에 보호무역 도미노를 일으켰고 대공황을 심화시킨 원흉으로 지목받는다.
③ ②번 팁에서 설명한대로 대공황은 1929년 뉴욕 증시 폭락이 단초가 됐지만, 1930년 스무트-홀리법으로 수입 관세를 인상하면서 상황이 악화했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허버트 후버와 공화당은 관세가 “지속적인 번영을 위한 필수 조치”라고 주장했다.
④ 알베르토 알레시나 래리 서머스 하버드대 교수는 1993년 ‘중앙은행 독립성과 거시경제 성과에 대하여’라는 논문에서 중앙은행이 독립적일 때 인플레이션을 통제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관료가 중립성을 보장받아야만 통화 정책을 효과적으로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⑤ ‘완전 고용과 균형 성장에 관한 법’인데 최초 발의자 이름을 따서 험프리-호킨스법이라고도 불린다. 연준의 설립 목적에 △잠재 성장률에 걸맞은 경제 성장 △높은 고용 수준 △물가 안정 △낮은 수준의 장기 금리 등이 추가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