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현성(34) 티몬(옛 티켓몬스터) 의장은 2세대 벤처업계의 전설로 꼽힌다. 2000년대 초반 벤처 붐이 꺼지고 한동안 이렇다 할 새로운 창업 기업이 등장하지 않았을 때, 2010년 신 의장의 티몬이 혜성처럼 나타났기 때문이다. 티몬은 국내 첫 소셜커머스 회사로, 자본금 500만원으로 닻을 올렸다. 이후 비슷한 회사가 우후죽순으로 생기면서, 차게 식었던 창업 열풍에 다시 불이 붙었다.
창업 이듬해인 2011년 신 의장은 보유했던 티몬 지분을 미국의 소셜커머스 회사 리빙소셜에 3000억원에 매각했다. 그는 최대주주 자리에서 물러났지만, 최고경영자(CEO) 자리는 유지하면서 계속 회사를 이끌어 나갔다. 리빙소셜은 2년 만인 2013년 경영난을 겪으며 미국 회사 그루폰에 티몬 지분을 넘겼다. 이후에도 신 의장은 CEO 자리를 지키며 티몬을 이끌었다.
지난 2015년 신 의장은 글로벌 투자회사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와 손잡고 그루폰으로 넘어간 티몬 지분 중 59%를 되찾아왔다. 그가 CEO로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도 모회사인 그루폰의 허락을 받아야만 했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계속해서 티몬을 이끌던 그는 2017년 7월 CEO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중장기 전략 수립에만 관여하는 ‘의장’ 직함을 달았다.
신 의장은 이런 굵직한 거래를 하면서도 잠재력 있는 후배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에 대한 투자를 꾸준하게 이어갔다. 티몬 지분을 처음 매각했던 2011년부터 조금씩 스타트업 투자를 시작했다. 신 의장은 2017년 말에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이하 VC) 베이스인베스트먼트를 세웠다. 강준열 전 카카오 최고서비스총괄(CSO), 홍정인 휘닉스 호텔&리조트 실장과 의기투합해 만든 VC다. 지금까지 총 37곳의 창업 초기 기업이 베이스인베스트먼트의 투자를 받았다.
‘이코노미조선’은 7월 서울 성동구에서 신 의장을 만나 스타트업 투자 철학에 대해 물었다. 신 의장은 “투자를 결정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요소는 창업자의 잠재력”이라고 강조했다.
창업자의 잠재력을 어떻게 파악할 수 있나.
“잠재력 있는 창업자를 알아볼 수 있는 몇 가지 힌트가 있다. 잠재력 있는 창업자는 본인보다 뛰어난 사람들을 채용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선다. 가령 사람을 채용할 때, 전부터 알고 지냈던 말 잘 듣는 후배를 끌어들이는 건 편하고 쉬울 수 있다. 하지만 이는 회사의 규모가 100명, 500명, 1000명으로 커질 먼 미래까지 내다보고 내리는 결정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두 번째로, 사고방식이 유연하다. 일관된 비전을 갖되, 그 비전을 실현할 방법은 다양하게 강구한다. 또, 시야가 넓다는 것도 잠재력 있는 창업자의 특징이다. 이들은 한정적인 시장이 아닌 성장 가능성이 큰 시장을 목표로 한다.”
후배 창업자들에게 투자하는 이유는.
“후배 창업자에 대한 투자는 당연한 순서라고 생각했다. 부모님이 나를 낳고, 내가 아이를 낳는 것만큼 자연스러운 것이라는 의미다. 개인적으로 투자가 재미있기도 하다. 내가 회사를 막 창업했을 때 겪었던 문제들과 비슷한 장애물들을 후배 창업자들은 어떻게 해결하는지 지켜보는 것이 흥미롭다. 자금 지원을 넘어 선배 창업자로서 이들이 막막함을 느낄 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 같다. 후배 창업자와 커피 한잔하다, 그의 잠재력에 감탄해 투자를 바로 결정하기도 했다. 투자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 행복하다.”
VC 업계의 트렌드는.
“VC를 창업하는 것이 VC 업계의 트렌드다(웃음). VC의 숫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VC의 숫자가 늘어나다 보니, 잠재력 있는 스타트업을 남들보다 먼저 발굴해서 투자하고자 하는 VC 간 경쟁이 치열하다.”
국내 벤처 투자 규모는 빠른 속도로 불어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해 1~6월 벤처기업에 신규 투자된 금액은 1조8996억원으로 전년(1조6327억원) 대비 16.3%(2669억원) 늘었다. 2014년 1~6월 6912억원에서 5년 만에 3배 가까이 늘어난 것이다. 중기부는 올해 연간 벤처 투자액이 사상 처음으로 4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현재 한국 벤처 투자 시장의 문제점은.
“첫 번째로는 창업자에게 자금 지원 외 도움을 주지 못하는 VC가 꽤 많다. 투자 여부를 결정하는 VC 심사역들은 창업 경험이 없는 경우가 많다. 창업 경험이 없으니 창업자의 말에 공감하지 못한다. 투자해서 수익을 내겠다는 관점으로만 접근하다 보면 창업 기업이 성장하는 방식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갈등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 두 번째로 지나친 투자 쏠림 현상이 있다. 규모 있는 VC가 투자한 회사에는 너도나도 몰려가 투자하겠다고 나서는 경향이 있다. 투자 실패를 피하려는 것이다. 미국 VC들의 경우 실패한 투자에 대한 이야기도 공개적으로 트위터 등 SNS에 올린다. ‘이러한 철학을 갖고 투자했지만, 실수가 있었다’ 하는 식이다. 자신만의 철학을 가지고 투자를 해야 창업자를 열정적으로 도와줄 수 있다. 남들이 유망하다고 하는 곳에 몰려가 숟가락을 얹는 식으로 투자하면, 조금이라도 나쁜 신호가 오면 안절부절못하게 된다.”
베이스인베스트먼트는 창업자를 어떻게 도와주나.
“사업 전략을 구상하거나 인재를 채용하는 것을 도와준다. 내가 창업 경험이 있고, 강준열 파트너도 카카오·네이버 등 굵직한 IT기업에서 20년간 일했기 때문이다. 커머스 분야의 개발자, 기획자를 많이 알고 있어 적합한 인재를 소개해주기도 한다. 또, 인재 채용 시 평판 조회를 해주기도 한다. 투자 후 회사가 성장하면 다음 번에 투자해줄 VC를 소개해줬던 경험도 있다. 투자 대비 수익률만 따지는 VC에서 투자를 받게 되면, 투자받은 회사 대표가 사업적 고민을 터놓고 이야기하기 몹시 어렵다. 그랬다가는 ‘똑바로 하라’는 말만 들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베이스인베스트먼트에서 자금을 투자한 ‘어니스트펀드’의 서상훈 대표가 사업 초반 자신감을 잃었던 적이 있다(어니스트펀드는 2019년 6월 말 기준 P2P대출 업계에서 누적 대출액 기준 규모가 두 번째로 큰 선두 회사다). 서 대표가 내게 찾아와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상훈아, 네가 매우 훌륭해서 너한테 투자를 한 것이고, 지금도 그 생각은 변하지 않았어. 어떤 상황에서도 서상훈이라는 창업자의 잠재력은 변하지 않아’라고 말해줬다. 지금도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다. 창업 선배로서 후배의 고민을 들어줄 수 있어 좋다.”
티몬을 창업했을 때 창업 선배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나.
“도움을 받은 경험은 별로 없고, 부딪혀 가면서 헤쳐나갔다. 그래서 인수·합병(M&A)이나 투자 유치 같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돌이킬 수 없는 실수도 했던 것 같다. 내가 창업했던 2010년에는 그 이전 세대와 창업 공백이 있었다. 원래 현장에서 도움 되는 조언은 경력 차이가 얼마 나지 않는 선배들이 들려주지 않나. 그런데 당시 그런 선배 창업자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내가 창업 전에 거의 미국에서 지냈기 때문에 한국에 인맥이 별로 없었던 것도 도움을 많이 못 받은 이유일 수 있다.”
후배 창업자들에게 아쉬운 점도 있나.
“해외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한국 창업자들이 활동 무대를 한국 내로 한정해 생각하는 점을 아쉽다고 보는 것 같다. 한국 내수 시장의 규모가 작기 때문이다. 한국 창업자들은 한국에서 성공한 모델을 가지고 해외로 나가 글로벌 IT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생각보다는, 한국 시장에서 대체로 만족하는 모습이다. 이 때문에 500억원, 1000억원씩 투자하는 해외 대형 VC 입장에서는 한국에는 투자할 만한 회사가 별로 없다고 보는 것이다. 창업자들이 해외 시장의 문을 두드렸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