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형 수퍼카의 표본인 라 페라리. V12엔진 출력 마력에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161마력을 더해 950마력의 최고 출력을 낸다. 사진 황욱익
21세기형 수퍼카의 표본인 라 페라리. V12엔진 출력 마력에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161마력을 더해 950마력의 최고 출력을 낸다. 사진 황욱익

수퍼카는 자동차 분야에서 최정점에 있는 희소한 모델을 뜻한다. 1920년대 한 신문광고에서 처음 사용된 이 용어는 말 그대로 성능이나 디자인 등 모든 면에서 일반적인 양산차를 초월하는 차를 뜻한다.

수퍼카라는 개념은 사실 정확하게 ‘어떻다’라고 정해진 것은 없다. 다만 누구나 가질 수 있고 흔하게 볼 수 있는 차를 수퍼카라고 부르지는 않는다. 과거 기술 경쟁의 정점에 있었던 수퍼카는 자동차 제조사가 가진 철학과 전통, 기술적 차별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디자인, 상상을 초월하는 성능을 지니고 있어야 했다. 돈만 있다고 누구나 딜러에게 달려가 구입할 수 있는 차들은 제외되며 철저하게 자동차 회사가 소비자를 고르는 시스템을 고수하고 있다. 지금은 기술의 상향 평준화로 인해 과거 수퍼카를 상징하던 V12 엔진(실린더가 12개 있는 엔진)이나 정지에서 100㎞/h 가속에 걸리는 시간, 최고 출력이나 최고 속력에 대한 의미가 많이 퇴색됐다. 하지만 아직도 자동차 회사들은 암암리에 이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려 노력하고 있다.


미우라의 뒤를 잇는 쿤타치도 수퍼카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차다. 사진 황욱익
미우라의 뒤를 잇는 쿤타치도 수퍼카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차다. 사진 황욱익

1963년 람보르기니 미우라로 시작

이탈리아의 자동차 디자이너 마르첼로 간디니가 디자인한 람보르기니 미우라(1963년 출시)는 20세기 수퍼카 전쟁의 시작을 알린 모델로 유명하다. 운전석 뒤에 엔진을 배치한 미드십 레이아웃, 최고 출력 350마력(지금은 평범한 수치지만 당시 100마력이 넘는 차가 거의 없었다), 한정 판매 등이 화제가 됐다. 당시 지구상에서 미우라를 소유할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미우라 등장 이후 ‘수퍼카=미드십 레이아웃’이라는 암묵적인 기준이 정립되기도 했다. 람보르기니는 미우라 이후에도 쿤타치를 내놓으며 수퍼카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한다. 물론 람보르기니가 수퍼카만 제작하는 회사는 아니기 때문에 수퍼카가 아닌 다른 모델들도 있었다. 하지만 미우라, 쿤타치, 디아블로, 무르치엘라고, 아벤타도르로 이어지는 수퍼카의 최상위 라인업은 여전히 람보르기니의 아이콘 역할을 하고 있다.

이후 1980년대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수퍼카 전쟁이 시작됐다. 그리고 1980년대 수퍼카 전쟁에서 가장 선두에 나선 자동차 메이커는 페라리다. 페라리는 1950년대부터 각종 모터스포츠 이벤트에서 두각을 나타냈고 이미 250 GTO와 250 LM을 통해 성능과 전통을 정립한 상태였다. 하지만 페라리가 더 현대적인 수퍼카를 내놓은 것은 1984년 출시한 페라리 288 GTO라고 봐야 한다. 288 GTO는 V8 트윈터보 엔진을 장착한 수퍼카로 기술 경쟁이 가장 치열했던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기도 하다. 이후 페라리는 F40, F50, 엔초 페라리, 라 페라리, 라 페라리 아페르타로 이어지는 수퍼카 라인업의 전통을 이어 가고 있다.

포르쉐도 1980년대 수퍼카 경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자동차 회사다. 1986년 포르쉐는 수평대향 트윈터보 엔진(실린더가 상하로 움직이는 보통엔진과 달리 수평으로 마주 보며 동력을 얻는 엔진)을 탑재한 959를 출시했다. 뒤쪽에 엔진이 있는 포르쉐의 전통을 계승하고 주행 안정성을 위해 사륜구동을 채택한 959는 총 345대만 제작됐다. 첫 모델의 최고 시속은 317㎞로 당시 출시된 자동차 중 가장 빨랐다. 포르쉐는 일반도로용 자동차 중에 가장 빠른 차라는 타이틀을 위해 959에 그들이 가진 모든 기술력을 집대성했는데 이는 이후에 등장하는 모델에도 적용됐다. 포르쉐 959의 대항마로 페라리는 F40을 공개했다. F40은 페라리의 설립자 엔초 페라리가 959의 기록을 깨겠다는 목표를 가장 뚜렷하게 반영한 모델이며, 페라리 마니아들 사이에서 가장 인기 높은 모델이기도 하다.


부가티의 부활을 알린 베이론. 시론, 디보, 라 브아튀르 누아르, 센토디에치로 이어진다. 사진 황욱익
부가티의 부활을 알린 베이론. 시론, 디보, 라 브아튀르 누아르, 센토디에치로 이어진다. 사진 황욱익

맥라렌 F1으로 끝난 20세기 수퍼카 전쟁

미우라가 수퍼카의 기원으로 불리는 것처럼 1992년에 등장한 맥라렌 F1은 20세기 수퍼카 전쟁의 종결자로 불린다. 천재 엔지니어 고든 머레이와 피터 스티븐스가 디자인한 맥라렌 F1의 최고 시속은 무려 386.4㎞다. 이 기록은 2000년대에 들어서야 깨졌다. 완벽에 가까운 파워트레인과 공기역학 중심의 디자인은 일반적인 자동차와 그 성격 자체가 달랐다. 맥라렌 F1은 106대만 제작됐으며 맥라렌 F1 GTR(경기용 차량 28대)과 LM(프로토 타입 포함 6대)이 가장 희소가치가 높다. 맥라렌 F1 이후 웬만한 자동차 회사들은 수퍼카 제작을 포기하거나 프로젝트 자체를 폐기하는 일이 늘어났다. 영업이익에만 집착하는 경영진이 자동차 회사를 장악하기 시작하면서 수퍼카 제작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을 생각했을 때 채산성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런 영향으로 인해 맥라렌 F1을 기점으로 수퍼카 시장은 사라지는 듯했다. 친환경을 강조하는 사회 분위기와 경기 불황의 여파 때문에 더 이상 소모적인 기술 경쟁을 원치 않았던 것도 수퍼카 경쟁이 줄어든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21세기가 시작되자 전통적인 수퍼카를 생산하던 회사들은 또 한 번 전쟁을 시작한다. ‘내연기관을 가진 올드보이들의 마지막 경쟁’이라 불린 이 전쟁에는 포르쉐 카레라 GT, 메르세데스-벤츠 맥라렌 SLR, 페라리 엔초 페라리, 람보르기니 무르치엘라고, 파가니 존다, 코닉세그 CC, 부가티 베이론, 마세라티 MC12 등이 등장해 치열한 접전을 펼쳤다. 특이한 점은 과거의 수퍼카 전쟁처럼 속도나 기록에 대한 경쟁은 살짝 버려두고 자신들이 가진 철학을 내세운다는 점이다. 자동차 기술이 상향 평준화한 21세기에도 수퍼카 전쟁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과거의 시끌벅적하고, 소모적이며, 기술집약적인 경쟁 대신 이제는 효율성을 강조한 하이브리드 시스템과 전기차들이 과거 내연기관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혹자는 이런 변화에 대해 ‘내연기관이 아닌 동력원을 가진 차가 과연 수퍼카라는 기준에 부합할까?’라는 의문을 던지기도 한다. 시대가 변했으니 경쟁 도구도 변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예전처럼 자동차 회사들의 뜨거웠던 열정이나 불꽃 튀는 경쟁을 볼 수 없다는 건 자동차 마니아에게는 아쉬운 부분이다.


▒ 황욱익
자동차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