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남천일관의 달곰한 떡갈비. 사진 해남천일관
해남천일관의 달곰한 떡갈비. 사진 해남천일관

오늘날 우리가 밖에서 사 먹는, 외식(外食)으로서의 한식은 전라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는 데 이견이 없을 듯하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해남천일관’은 남도(南道) 한정식의 진수를 맛볼 수 있는 식당이다. 떡갈비로 유명한 전남 ‘천일식당(1924년 개점)’ 창업자 박성순씨의 딸 김정심씨가 1990년대 중반 서울에 문을 열었다. 박성순·김정심 두 분 모두 세상을 떠났고, 해남천일관은 이제 김씨의 큰딸 이화영씨가 운영하고 있다.

너무나 다양한 남도 별미를 두루 내기에 대표 메뉴를 꼽기 쉽지 않지만, 그래도 하나를 꼽아야 한다면 역시 떡갈비다. 소갈비에서 살을 발라내 가로·세로 1㎝ 크기 작은 주사위 모양으로 자른다. 고기 씹는 맛이 살도록 너무 잘게 다지거나 갈지 않는다. 양조간장과 육수, 설탕, 참기름을 섞어 만든 양념에 버무려 30분 정도 치댄다. 이렇게 치대야 고기가 서로 잘 붙어서 구울 때 떨어지지 않고 모양을 유지한다. 이틀 정도 양념에 담가 숙성시킨 뒤 먹기 좋은 크기로 나눠 둥그렇고 납작하게 모양을 잡아 석쇠에 올려 숯불에 앞뒤로 굽는다. 이렇게 구운 떡갈비는 짭조름하면서도 달콤한 양념 속에서 소갈비의 감칠맛이 배어 나오고, 숯불의 훈연 향이 입안에 남는다.

홍어는 호남 사람의 ‘소울 푸드’다. 잔칫상에 어떤 홍어가 나왔냐를 놓고 남도 사람은 “손님 접대를 하네, 못하네”라고 수군거린다. 홍어 삼합, 찜, 전 등 다양한 홍어 요리가 있지만, 홍어 전문점에서도 맛볼 수 없는 이 식당만의 독창적인 홍어 요리가 있다. 바로 홍어 만두다. 겉보기엔 무척 조신하고 얌전하다. 속이 비칠 정도로 얇은 만두피를 씹으면 홍어 특유의 냄새가 입안에서 폭발한다. 강렬하지만 거칠지 않고, 동시에 섬세하면서 세련된 맛이다. 이화영 대표는 “몇 해 전 ‘홍어로 만두를 빚어보면 어떻겠냐’는 지인의 제안에서 탄생했다”며 “자투리 살과 머리뼈 등을 곱게 다져서 잘게 다진 파·양파·김치 등과 섞은 소를 넣고 찜통에서 찐다”고 했다.

홍어 불고기도 이 식당에만 있는 음식이다. 얇게 썬 홍어 살에 고춧가루만 살짝 뿌려서 숯불에 굽는다. 홍어 고유의 맛이 고춧가루 매운맛 뒤에 살짝 숨어있다가 입안에서 은근하게 살아난다.


해남천일관의 고추김치. 토하젓에 버무렸다. 사진 해남천일관
해남천일관의 고추김치. 토하젓에 버무렸다. 사진 해남천일관
해남천일관의 양념게장. 사진 해남천일관
해남천일관의 양념게장. 사진 해남천일관

시간과 노력 들여야 맛이 나는 우리 음식

해남천일관에서는 12월 첫째 주 김치를 담갔다. 이 식당 김장김치는 고춧가루, 멸치젓, 청각 등 일반적으로 들어가는 부재료 외에 돼지고기가 첨가된다. 갈아서 익힌 돼지고기를 나머지 양념 속 재료와 섞어서 배추를 채운다. 김치가 익는 과정에서 돼지고기는 삭아 없어져 보이진 않지만, 고기 감칠맛이 김치에 더해져 깊고 풍성한 맛을 낸다.

고추김치는 이 식당 아니면 맛보기 힘들어진 전라도식 김치다. 통통한 조선무를 11월 말부터 20~25일간 바람과 햇볕에 말린다. 이 무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 삭힌 고추와 찹쌀풀, 토하젓에 버무린다. 그렇지 않아도 맛 좋은 겨울 조선무를 말렸으니 수분이 빠져 단맛은 더 짙어지고 식감은 더 좋아진다. 여기에 그냥 먹기에도 아까운 귀한 토하젓을 아낌없이 넣고 버무렸으니, 그 김치 맛이 나쁘려야 나쁠 수 없다. 무는 아작아작 씹히고, 고추장아찌는 질기지 않고 아삭아삭 상큼하다. 여기에 토하젓의 구수하면서도 달큼한 감칠맛과 고추 매운맛이 더해진다.

남도 사람이 맛있는 음식을 설명할 때 쓰는 ‘개미’란 표현이 어떤 맛인지 보여준다. 이 대표는 “2월 지나서 완전히 익으면 정말 맛있다”며 “따끈한 밥에 속만 비벼 먹어도 꿀맛”이라고 했다. 깊고 융숭한 맛. 고추김치는 귀한 재료에 시간과 정성이 더해져야만 완성할 수 있는 맛이다. 이런 노력과 시간을 들여야 제대로 맛이 나는 우리 음식이다.

“한식은 보이지 않게 손이 엄청나게 가는 음식이에요. 하지만 드시는 분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음식이기도 하지요. 들이는 공에 비해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취급해서 어떨 때는 속이 상해요.” 그런데도 이런 우리 음식을 고집하고 지켜나가는 식당이 남아 있다는 건 감사하고 다행한 일이다.


해남천일관 ★★

주소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13길 21, (02)568-7775

분위기 2층 주택으로 가정집에서 식사하는 분위기다. 모든 좌석이 크고 작은 룸으로 구성된, 한국인이 가장 선호하는 전형적인 접대·회식 분위기다. 주말에는 상견례나 부모님 생신·회갑 등 가족 모임이 많다.

서비스 친근하지만 정중하다. 연륜 있는 한정식집에 기대하는 바로 그 서비스다.

추천 메뉴 이 식당 음식을 제대로 맛보려면 저녁에 와서 천일 코스(12만원·3인 이상 주문 가능)를 선택해야 한다. 새끼갈치 무침, 대갱이 같은 식전 먹거리에 이어 토란 들깨탕(여름에는 해삼 냉콩국), 반지 김치, 홍어 삼합, 육전, 돼지 삼겹살 숯불구이와 감태 말이 찰밥, 우거지 조림, 홍어 만두(전복찜으로 변경 가능), 굴과 꼬막(여름에는 토종닭과 닭죽), 떡갈비, 계절 탕, 게장(또는 생선구이), 보리굴비, 찬과 진지 등이 끝도 없이 나오는 대표 상차림이다. 저녁 특별 메뉴(8만원)는 천일 코스에서 핵심 메뉴는 그대로지만 몇 가지가 빠진다. 점심 특선(4만원)은 돼지 삼겹살 숯불구이·굴비 한상·떡갈비 한상 세 가지가 있다. 전, 잡채, 실치 무침, 백김치, 묵 무침, 조림(또는 볶음이나 찜, 구이), 찬과 진지 등이 딸려 나온다. 음식 구성이나 가짓수는 그때그때 나오는 재료에 따라 달라진다. 주말 가족과 상견례 특선(각 7만원)도 있다.

음료 일반적인 한정식집 수준. 와인 리스트는 따로 없다.

영업 시간 오전 11시 30분~오후 10시, 일요일 휴무

예약 권장

주차 편리, 발레 파킹 서비스

휠체어 접근성 계단을 올라가야 함

★ 괜찮은 식당
★★ 뛰어난 식당
★★★ 흠잡을 곳 없는 식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