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 설명 전 세계 각국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시행했던 봉쇄 조치를 단계적으로 완화하고 있다. 동시에 코로나19 재확산 우려도 커지고 있다. 공공 생활 제한 조치를 완화해 생활 속 방역으로 전환한 독일은 양로원과 도축장에서 발생한 집단감염으로 확진자가 급증했다. 이탈리아는 전면적 봉쇄 완화 하루 만에 확진자가 폭증했다. 코로나19 발원지로 지목된 중국 후베이성 우한은 집단감염으로 일부 지역이 다시 봉쇄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이태원 클럽 집단감염 사태로 확진자가 속출했다. 영국의 저명한 케인스 연구자인 로버트 스키델스키는 코로나19 봉쇄 완화 조치는 사실상 스웨덴이 택했던 ‘집단면역’ 조치와 다를 바 없지만, 각국 정부가 이를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을 뿐이라고 지적한다. 또한 코로나19 사태는 의료 수준, 문화적 특성 등 각종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에 봉쇄 또는 봉쇄 완화 조치를 과학적 근거에 따라 결정할 수 없다고 본다. 이에 백신이 나오기 전까지 코로나19 확산 속도를 늦추기 위한 각국 정부의 정치적 판단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영국 경제·역사학자, 영국 상원의원, 워릭대학교 국제정치학 석좌교수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
영국 경제·역사학자, 영국 상원의원, 워릭대학교 국제정치학 석좌교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대유행은 인류 역사상 중대 위기 가운데 최초의 수학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각국 정부는 미분방정식을 푸는 것처럼 정책을 내놓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포함한 몇몇 문외한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각국 수장은 바이러스와 씨름하면서 맹목적으로 ‘과학’에 의존한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으면 ① 최대 55만 명이 사망할 수 있다는 악몽 같은 전망을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 연구팀이 내놓은 뒤인 3월 23일(현지시각) 영국 정부가 강력한 ‘록다운(lock down·봉쇄)’ 정책으로 돌아선 것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다.

이러한 모형화(modeling)는 실험을 할 수 있을 때 적절한 과학적 접근법이다. 그러나 나치 강제 수용소의 의사들이 아니라면, 사람에게 의도적으로 바이러스를 주입해서 실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대신 과학자들은 감염성 병원균의 정보를 기반으로 감염 패턴을 연구하고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한 정책 수단이 무엇인지 도출해낸다. 예측 모형화(predictive modeling)는 100년 전 영국의 병리학자 로널드 로스가 말라리아 연구 중에 고안했다. 로스는 조류(鳥類) 말라리아 연구를 통해 모기가 말라리아를 옮기는 매개체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로스가 정립한 말라리아 감염의 예측 모형은 향후 감염병 확산의 일반적 모형인 ② SIR 모형으로 발전했다.

유행병학자들은 무엇이 전염병을 유발하는지보다 무엇이 전염병 종식을 이끄는지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진다. 그들은 충분히 많은 사람이 전염병에 걸린 뒤 전염률이 떨어지면 전염병 확산이 자연스럽게 끝나게 된다고 본다. 이론적으로 바이러스가 번식할 숙주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는 이를 전문용어로 인구집단에서 ‘집단면역(herd immunity)’이 형성됐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정책 입안자 중 그 누구도 치명적인 전염병이 자연스럽게 퍼지도록 놔두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잠재적 사망자 수를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이다. 1918~19년 발생한 스페인독감은 5000만~1억만 명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사망률은 인구 대비 2.5~5%에 달했다. 코로나19 확산을 통제하지 않는다면 사망률이 어느 수준까지 치솟을지 알 수 없다.

현재 코로나19 백신이 없기 때문에 각국 정부는 ‘초과 사망(excess deaths·통상 일어난다고 기대되는 수치를 웃도는 사망)’을 막기 위한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많은 정부가 자국민 전체를 바이러스 감염 경로에서 떼어놓기 위해 봉쇄 정책을 시행했다. 그러나 유럽의 봉쇄 조치가 두 달째 이어지자 이 조치의 효과가 없었음이 드러나고 있다. 예를 들면 유독 가벼운 수준의 봉쇄 조치를 선택한 스웨덴이 엄격한 봉쇄 조치를 한 이탈리아, 스페인과 비교해 ③ 인구 대비 코로나19 사망률이 낮았다. 영국과 독일 모두 강력한 봉쇄 정책을 펼쳤는데, 독일은 현재까지(5월 18일 기준) 인구 100만 명당 96명의 사망자를 냈고 영국은 520명이었다.


스페인이 두 달간 이어진 봉쇄 조치를 완화하기 시작한 5월 11일(현지시각) 문을 다시 연 타라고나 지역의 한 실외 바에 앉아 있는 손님들에게 웨이터가 맥주를 나르고 있다. 사진 AFP연합
스페인이 두 달간 이어진 봉쇄 조치를 완화하기 시작한 5월 11일(현지시각) 문을 다시 연 타라고나 지역의 한 실외 바에 앉아 있는 손님들에게 웨이터가 맥주를 나르고 있다. 사진 AFP연합

독일과 영국의 결정적 차이는 의료 대응 체계에 있는 것 같다. 독일은 첫 번째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한 지 단 며칠 만에 확진자 및 접촉자 격리, 대규모 검사 등을 추진했고, 그 결과 초기 바이러스 확산 속도를 늦출 수 있었다. 반면 영국은 중앙정부의 비논리성과 의사 출신인 데이비드 오언 전 외무장관에 의해 국립보건원에 가해진 예산 삭감과 조직 분열 그리고 중앙집권화 등 소위 ‘구조적 반달리즘(vandalism·파괴행위)’ 탓에 발목이 잡혔다. 그 결과, 영국은 독일처럼 대응하기 어려울 만큼 의료 장비가 부족한 것으로 드러났다.

각국 정부가 코로나19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과학은 결정해주지 않는다. 과학적 예측과 실제 결과가 일치하면, 예측 모형은 검증된다. 하지만 유행병학에서는 특성이 알려진 바이러스가 제한된 인구 집단 내에서 자연스럽게 확산하고 백신처럼 단 한 번의 개입이 있을 때만 결과를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의료 수준, 문화적 특성 등을 포함해 너무 많은 변수가 예측 모형을 흔들고 이에 그것은 제정신이 아닌 로봇처럼 온갖 예측을 쏟아냈다. 유행병학 연구자들은 우리에게 코로나19 관련 일련의 정책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말해줄 수 없다. 그들은 “1년 정도 지나면 알게 될 것”이라고 말할 뿐이다.

따라서 결과는 정치에 달렸다. 코로나19의 정치는 명확하다. 정부는 감염병의 자연적 확산이라는 위험을 감수해선 안 된다.

정책의 기본은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 전염병 확산 속도를 늦추는 것이다. ‘곡선 완만화(flattening the curve)’의 진짜 의미는 의료 기관이 대응하고 백신이 개발되는 긴 기간에 사망자를 줄이는 것이다. 그러나 이 전략에 심각한 단점이 있다. 각국 정부가 백신이 개발될 때까지 자국민을 봉쇄할 수 없다는 점이다. 다른 것은 제쳐놓더라도 경제적 손실이 어마어마할 것이다. 그래서 정부는 점차적으로 봉쇄 조치를 완화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봉쇄를 완화하면 봉쇄를 통해 바이러스와 접촉을 줄일 수 있었던 장점이 사라진다. 그렇기 때문에 어느 정부도 명쾌한 출구전략을 갖고 있지 않다. 정치 지도자들은 봉쇄를 완화한다고 하겠지만 이는 곧 집단면역으로 간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이를 드러내놓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집단면역이 목적이라는 점을 인정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아직 ④ 얼마나 오래 감염이 면역을 보장할지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다. 난독증이라는 안갯속에서 이러한 목적을 조용히 달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감염되기 전에 백신이 나오기를 바라는 편이 나을 것이다.


Tip

영국 임페리얼칼리지런던 연구팀은 3월 16일(현지시각)  ‘코로나19 치사율과 의료 수요를 낮추기 위한 비약물적 중재의 영향’이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감염병 예측 모형으로 코로나19 확산을 예측한 이 보고서에서 아무런 개입이나 조치가 없다면 영국에서 사망자 55만 명, 미국은 220만 명이 발생할 것이라는 내용이 담겼다. 이 보고서는 공식 발표 전 미국과 영국 정부에 전달돼 두 나라가 방역 노선을 변경한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CNN은 이 보고서에 대해 “영국 유행병학자들의 불길한 보고서로 미국과 영국의 코로나19 대응이 바뀌었다”라고 전했다.

전염병 예측에 널리 쓰이는 수학식이다. 감염 위험이 있는 미감염자(S), 타인을 감염시킬 수 있는 감염자(I), 감염됐다가 회복된 완치자(R) 사이의 관계를 수식으로 나타내 인구수 변화를 예측하는 데 쓰인다.

5월 18일(현지시각) 기준 스웨덴의 코로나19 사망자 수는 3698명으로 노르웨이, 핀란드, 덴마크 등 이웃한 세 나라를 합친 것(1081명)보다 월등히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스웨덴은 인구 100만 명당 사망자 수가 364.28명으로 이탈리아(527.74명), 영국(510.21명)만큼은 아니지만, 미국(270.58명)을 비롯한 대다수 국가보다 많았다. 한편, 한국의 100만 명당 사망자 수는 5.13명이다.

5월 15일(현지시각) 비즈니스인사이더는 바이러스 확산을 막기 위해 50~70%의 항체율이 필요하지만, 스웨덴은 그 절반도 달성하지 못했다며 집단면역 정책은 사실상 실현 불가능하다고 보도했다. 스웨덴 보건기관은 스톡홀름 인구의 약 25%가 코로나19에 면역이 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그사이 약 3만 명의 감염자와 3500명 이상의 사망자가 나왔다. 스웨덴 외에도 대규모 확진자와 사망자가 나온 스페인, 프랑스, 미국의 항체율도 5%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와 관련해 전문가인 윌리엄 하너지 교수는 “대규모 감염과 사망이 의미 있는 집단면역을 만들어내지 못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