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백화점은 모든 플라스틱 소재 포장재를 종이로 바꿔나가는 ‘올 페이퍼 패키지’를 운영하고 있다. 고급 선물용 포장재를 라탄에서 종이상자로 바꿨고, 그 속에 들어가는 완충재도 비닐에서 종이로 대체했다. 온라인몰에서 주문받은 상품을 배송할 때는 생분해성 포장 봉지를 쓴다. 현대백화점은 이를 통해 연간 70t의 플라스틱과 50t의 스티로폼 사용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2022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6년 배출 예상량(BAU·온실가스 감축 조치를 하지 않았을 때 예상되는 배출 총량) 대비 40% 감축하고, 폐기물 재활용률을 95%까지 끌어올린다는 계획을 세웠다. 중국·미국·유럽 등 해외 사업장의 재생에너지 사용률 100%를 달성하고, 용·폐수 재활용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이 모든 노력을 담은 프로젝트가 SK하이닉스의 ‘2022 에코(ECO) 비전’이다.
유엔(UN) 경제사회이사회 특별협의지위기구인 UN SDGs협회는 유통과 반도체 분야에서 친환경 경영에 충실히 임하는 이 두 기업을 ‘플라스틱 폐기물 저감 가이드라인(GRP·Guidelines for Reducing Plastic Waste)’ 인증 최우수(AAA) 등급에 선정했다. 올해 처음 도입된 GRP는 기후 변화 대응과 플라스틱 폐기물 저감에 앞장서는 기업을 인정하는 국제 환경 인증제도다. UN SDGs협회는 친환경 경영을 실천 중인 국내 기업 40여 곳을 올해 초부터 평가해 10개 회사를 최종 선정했다. AAA 등급 4개 기업, 우수(AA) 등급 6개 기업이다.
현대백화점과 SK하이닉스 외에 AAA 등급을 받은 두 곳은 KT와 현대그린푸드다. 이 중 KT는 5세대 이동통신(5G) 서비스에 인공지능(AI)·빅데이터·클라우드·사물인터넷(IoT) 기술을 녹여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받았다. 세계 최초의 에너지 통합 관리 플랫폼 ‘KT-MEG’는 KT의 대표적인 친환경 경영 사례다. 또 KT는 노사 공동 나눔 협의체(UCC·Union Corporate Committee)를 설립해 국립공원 등 주요 관광지와 오염 지역에서 ‘초록 지구 지킴이’ 캠페인 활동을 하고 있다.
현대그린푸드는 미세 플라스틱으로 가득 찬 기존 아이스팩 대신 물만 담은 에코 아이스팩을 도입했다. 아이스팩 봉투는 종이로 바꿨다. 배송에 쓰이는 상자는 국제산림협회(FSC) 인증을 받은 친환경 상자다. 식품을 소비할 때 발생하는 탄소 배출량을 줄이기 위해 저탄소 식단 개발에 투자한다는 점도 UN SDGs협회가 현대그린푸드에 GRP 최고 등급을 주는 데 일조했다. 고객과 지구의 건강을 모두 챙기겠다는 기업 전략을 UN이 인정한 것이다.
현대백화점그룹 60% 장악
AA 등급을 받은 기업은 패션 회사 한섬과 가구 회사 현대리바트, 물류 회사 CJ대한통운, 건설 기계 회사 에버다임, 유통 회사 CJ올리브영·현대홈쇼핑 등 6곳이다. 이 중 한섬, 현대리바트, 에버다임, 현대홈쇼핑 등 4곳은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다. AAA 등급을 받은 현대백화점과 현대그린푸드까지 합치면 10개 기업 가운데 무려 6개 회사가 현대백화점그룹 계열사다.
한섬은 손잡이를 포함한 쇼핑백 재질을 친환경 소재로 전환하고, 온라인 쇼핑몰 배송 상자에 재활용할 수 있는 종이 충전재를 넣기 시작했다. 또 재활용 양모(recycled wool), 비스코스(viscose), 천연 면(organic cotton) 등을 쓰거나 식물에서 추출한 실로 만든 의류 제품을 선보였다. 최근에는 사과 껍질로 만든 스니커즈를 출시해 국내외에서 큰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현대리바트는 친환경 포장 완충재 ‘허니콤’을 사용하는 ‘스티로폼 사용 제로화’ 캠페인을 실시해 7개월 동안 스티로폼 포장 폐기물 23만 개(약 7t)를 절감했다. 이는 서울 시민 7240명이 1년 동안 배출하는 스티로폼 폐기물에 해당한다. 현대리바트는 지속 가능한 산림 활용의 일환으로 4.15㏊에 5000그루 이상의 나무가 심어진 ‘탄소 중립의 숲’도 운영하고 있다.
CJ대한통운은 폐도로나 오염된 공터 등을 친환경 재생 공간으로 바꾸는 에너지 숲을 조성한다. 또 연간 배송되는 12억2000만 개의 택배 상자 송장에 미세먼지 줄이기 메시지를 삽입하는 캠페인을 하기도 했다. 캠페인 아이디어는 사람들이 택배 배송을 받으면 송장부터 확인한다는 사실에서 얻었다. 이 회사는 최근 환경부와 전기화물차 보급 확대를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2030년까지 모든 화물차량을 전기화물차로 전환할 계획이다.
에버다임은 행동반경이 정확한 친환경 건설 기기를 제작하고 있다. 건설 현장에서 먼지와 폐기물 발생을 최소화하기 위한 투자다. 에버다임은 친환경 약제를 쓰는 공기압축포 설비 도입에도 적극적이다. 기존 가스 소화 설비는 화재 상황 시 꼭 필요하지만 대기오염의 원인으로도 꼽혀왔기 때문이다.
CJ올리브영은 O2O(온·오프라인 연계) 서비스 ‘오늘드림’의 포장재를 기존 폴리염화비닐(PVC) 소재에서 친환경 종이(크라프트지)로 교체했다. CJ올리브영이 2015년 도입한 스마트 영수증은 현재 구매 고객의 60% 이상이 이용한다. 고객 편의성과 환경 보호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셈이다.
끝으로 현대홈쇼핑은 배송 상자를 손으로 조립할 수 있는 핑거 박스로 대체했다. 이렇게 하면 비닐 테이프를 쓰지 않아도 된다. 핑거 박스는 지난해 처음 도입돼 지금까지 30만 개가 사용됐고, 올해부터는 연간 100만 개씩 사용될 예정이다. 또 현대홈쇼핑은 ‘아이스팩 재사용 캠페인’을 전개해 유통 업계 최초로 대통령 표창을 받았다. 고객에게 제공된 아이스팩을 무상 수거하고, 10개 수거 시 포인트를 적립해준다.
UN SDGs협회는 지난해 ‘지속가능개발목표경영지수(SDGBI)’를 발표할 당시 환경 부문 평가 점수가 높았던 해외 기업 21곳에 대한 GRP 인증도 이번에 실시했다. 네슬레, 나이키, 인텔, 보잉, PWC, 아디다스 등 6개사가 AAA 등급을 받았다. 스테파노스 포티우 UN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UN ESCAP) 환경개발국장은 “기업이 플라스틱 오염 방지를 위해 늘 하던 방식을 뛰어넘을 때가 왔다”며 “GRP는 기업의 노력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플라스틱 폐기물 저감 가이드라인(GRP) UN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UN 해양 정상회의, UN 파리기후변화협약, 기후 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 보고서 등 UN의 주요 환경 협약과 정상회의 보고서를 기반으로 수립됐다. 석유화학·반도체·통신·유통·관광 등의 산업군을 대상으로 친환경 노력을 평가해 상위 40% 기업과 하위 60% 기업을 분류한다. 이 중 상위 40% 기업은 세부 기준에 따라 다시 최우수(AAA), 상위(AA+), 우수(AA), 인증(AA-) 등 4개 등급으로 나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