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위기 속에서 은행은 문제의 원인이 아니라 해결 수단의 하나로 떠올랐다. 금융 업계는 2007~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본·유동성과 관련해 엄격한 규제를 적용받았다. 하지만 오늘날 많은 정부가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탓에 경제적 타격을 입은 가정과 기업에 유동성을 공급하기 위한 통로로 은행을 활용하고 있다.
게다가 각국 정부는 ① 경기 순응성을 완화하고 신용 경색을 막기 위해 은행에 엄격한 규제와 감독 기준 시행을 한시적으로 유예해 줬다. 결과적으로 은행은 금융위기 때 떨어졌던 평판을 회복할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은행은 여전히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왜냐하면 이번 위기가 부실 채권을 급격하게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팬데믹은 은행 수익성을 떨어뜨린 저금리와 ② 디지털 파괴(digital disruption) 현상을 심화할 것이다.
은행과 고객 모두 원격으로 근무하고 사업을 추진하는 일이 안전하고 효율적이라는 점을 깨달으면서 디지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많은 은행이 정보기술(IT) 관련 투자를 확대하면서 포화 상태의 오프라인 지점이 예상보다 빨리 불필요하게 될 것이다. 이는 금융업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중형 은행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비용이나 투자 여력이 없기 때문에 더욱 열악한 상황에 놓일 것이다. 합병이 중형 은행에는 탈출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각국 정부가 국가 금융 시스템의 보호 조치를 강화하면서, 국경을 뛰어넘는 합병은 정치적 장애물 탓에 실현 가능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영국을 제외하면, 은행 ‘민족주의’가 심화해 온 유럽에서는 국내에서 합병이 이뤄질 수 있다.
게다가 팬데믹 이전부터 은행의 전통적 사업 모델을 위협했던 ③ 그림자 금융(shadow banks)과 신규 디지털 진입자의 영향력이 더욱 커질 수 있다. 미국에서 핀테크 기업은 주택담보대출과 개인신용대출 부문에서 눈에 띄게 영토를 확대했다. 그리고 신흥국에서는 중국의 알리페이와 같은 대형 디지털 플랫폼을 운영하는 ‘빅테크(big techs) 기업’이 결제 시스템 등 특정 부문을 거의 장악하다시피 한 상황이다.
코로나19와 싸우기 위해 시행한 이동 제한 조치가 디지털 전환을 불러왔는데, 이는 금융 업계의 변화가 놀랄 만큼 빠를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변화 속도가 빨라지면서 ④ 중앙은행 등에 디지털 화폐 발행을 부추길 수도 있다.
디지털화는 금융 서비스 시장의 진입 장벽을 낮춤으로써 경쟁을 심화하는 한편, 단기적으로는 기존 사업의 수익성을 저해할 것이다. 그러나 장기적인 영향은 예측할 수 없는데, 우위를 차지하는 시장 구조가 무엇인지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한 가지 가능한 결과는 소수의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가 서로 다른 금융 생태계에 있는 고객층의 접근을 부분적으로 통제하는 것이다. 소수의 지배적 플랫폼 사업자는 현재의 IT 대기업이나 은행 등 금융회사의 변형된 형태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고객은 그들의 요구를 플랫폼에 등록하고 금융 서비스 제공자는 그것들을 공급하기 위해 경쟁할 것이다. 플랫폼 사업자 간 경쟁 수위와 서비스 수준은 한 생태계에서 다른 생태계로 전환하는 비용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즉 비용이 많이 들수록 시장 경쟁은 덜 치열해질 것이다.
각국 금융 규제 당국은 자본 요건 규제를 완화하면서 이미 포스트 팬데믹 시대에 적응하고 있다. 게다가 디지털 파괴는 금융 규제 당국에 경쟁과 혁신을 촉진하는 것과 금융 거래 안정성을 보호하는 것 사이에서의 균형을 요구할 것이다.
이를 위해 금융 규제 당국은 공정한 경쟁의 장을 마련하고 신중한 규제와 경쟁 정책 그리고 데이터 정책을 조율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금융 시스템의 안정성과 완전성, 효율성과 경쟁력 그리고 개인정보 보호 사이의 균형을 모색해야 한다.
팬데믹과 그 여파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도입된 금융 시스템과 규제 개혁의 적응 능력을 시험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특히 그림자 금융과 관련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다. 유럽에서는 국가 재정의 중장기적 지속 가능성 관련해 중앙은행 개입의 한계점을 부각할 것이다. 공통의 보험 시스템 없이 불완전한 상태에 있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의 시험 무대가 될 것이다.
은행은 현재의 경제 위기를 극복하는 데 건설적인 임무를 수행함으로써 실추된 이미지를 쇄신할 기회를 얻게 됐다. 그러나 코로나19가 금융업의 디지털화와 구조조정을 가속하면서 그들의 미래는 더욱 불확실해질 것이다.
① 금융 회사가 경기가 좋아질 때 대출을 늘리고 경기가 나빠질 때 대출을 줄이는 속성을 말한다. 금융 회사는 호황기가 되면 전반적으로 위험에 대한 인식이 약화하면서 대출을 확대하고 불황기가 되면 리스크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면서 대출을 축소하게 된다. 문제는 이러한 상호작용이 실물경기 사이클을 더욱 확장해 금융 불안을 유발한다는 데 있다.
② 디지털 기술을 활용하는 기업이 기존의 산업이나 사업 모델을 혁신하고 파괴하는 것을 의미한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함께 나온 왓츠앱, 카카오톡 등 메신저 애플리케이션이 문자 시장을 무력화한 것이 디지털 파괴의 한 예다. 핀테크도 금융업에서 디지털 파괴를 지칭하는 말이다. 모바일 디바이스의 보급으로 기업과 고객 접점이 확대되면서 고객 지향적 금융 서비스가 확대되고 있다.
③ 은행과 달리 엄격한 규제를 받지 않는 비(非)은행 금융기관을 가리키거나 이런 금융기관에서 취급하는 비은행 금융 상품을 뜻한다.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그림자 금융 상품으로는 머니마켓펀드(MMF)·환매조건부채권(RP)·신용파생상품·자산유동화증권(ABS)·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헤지펀드 등이 있다.
④ 2019년 페이스북의 암호화폐인 리브라가 공개되면서 이에 위기를 느낀 각국 중앙은행은 디지털 화폐 개발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시작했다. 특히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달러화 중심의 국제 금융 질서를 재편할 목적으로 2014년부터 디지털 화폐를 연구하기 시작해 이 분야에서 상당히 앞서 있으며, 스웨덴은 올해부터 디지털 화폐 ‘e-크로나’를 본격적으로 테스트하고 있다. 여기에 유럽중앙은행(ECB)과 영국중앙은행(BOE)·일본은행(BOJ)·캐나다은행·스웨덴중앙은행·스위스국립은행은 올해 초 중앙은행의 디지털 화폐에 대해 공동으로 연구하는 그룹을 만들기로 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로 확산하면서 현금 사용이 줄고 온라인 결제가 급증하면서 많은 국가가 디지털 화폐 개발에 관심을 기울이는 추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