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영화 ‘세 얼간이’의 주인공들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IMDB
인도 영화 ‘세 얼간이’의 주인공들이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IMDB

평생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사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좋아하는 일을 하면 먹고살기 힘들고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행복하지 않다고 한다. 어떤 사람들은 능력이 닿는 한 출세 빠른 길을 택하고 자식에게도 부와 성공이 보장된 길을 가라고 다그친다. 좋아하는 일을 고집하며 성공하는 사람도 있지만 좋아하지도 않고 잘하지도 않는 일을 하며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많다. 그래서 세상은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아 부와 명성을 얻는 인생을 최고의 복이라 여긴다.

란초, 파르한, 라주 세 명의 친구는 천재들만 다닌다는 인도의 명문 공과대 재학생이다. 태어나는 순간 “내 아들은 공학자가 될 거야!” 하고 공언한 아버지에 의해 운명이 결정된 파르한은 사진작가가 되는 게 꿈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부담감에 짓눌린 라주는 실패하면 안 된다는 두려움에 갇혀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그 결과 꼴찌에서 1, 2등을 다투는 그들과 달리 언제나 톱을 차지하는 란초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왜 1등인지 알아? 난 기계를 사랑하거든. 공학이 바로 내 열정이야.”

엄청난 부잣집 아들이라는 소문이 진짜였는지 란초는 남의 인정이나 학점, 미래의 성공에는 관심이 없다. 오직 배우는 것, 그 자체를 즐거워한다. 기계란 기계는 다 뜯어봐야 하고 궁금한 게 있으면 이해될 때까지 꼬치꼬치 따져 묻는다. 권위에 도전받는다고 느낀 교수들은 수업 시간에 쫓아내기도 하지만 란초는 아무렇지 않게 다른 강의실에 들어가 청강을 하며 다양한 지식을 섭렵해간다. 낙천적인 란초는 아무리 어렵고 곤란한 일이 닥쳐도 웃으며 말한다. “올 이즈 웰(All is well·다 잘될 거야).”

학생들에게 바이러스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총장에겐 기성세대에게 반항하는 것 같은 란초가 눈엣가시다. “인생은 경쟁이며 남보다 빨리 달리지 못하면 짓밟힌다”고 믿고 살아온 총장에게는 가르쳐주는 대로 의심 없이 받아들이고 뜻을 몰라도 녹음기처럼 암기해서 앵무새처럼 말하는 차투르 같은 학생이 최고의 모범생이다. 다른 데 마음 쓰느라 꼴찌를 맴도는 파르한과 라주, 엉뚱한 사건들을 일으키며 기존 제도와 관습을 어지럽히는 란초가 못마땅한 총장은 그들을 바보, 얼간이들(idiots)이라고 부른다.

란초는 의대생 피아를 만나 한눈에 반한다. 대학 총장의 둘째 딸인 데다 약혼자도 있던 그녀 역시 란초에게 호감을 느낀다. 란초는 늦은 밤 사랑을 고백하러 피아를 찾아가는데 밖에서 기다리던 파르한과 라주가 작은 소동을 일으키다 총장에게 발각된다. 그는 가장 나약한 라주를 정학시키겠다고 겁을 주고는 만약 란초가 주모자라고 증언한다면 용서하겠다고 말한다. 대학을 포기할 수도, 친구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도 없어 절망한 라주는 그만 창에서 뛰어내린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라주는 인생의 전환점을 맞는다. 오랫동안 자신을 짓눌렀던 두려움을 벗어던지고 휠체어를 탄 채 입사 면접을 보러 간다. “두 다리가 부러지고 나서야 제 발로 일어서는 법을 배웠습니다. 이 태도를 바꾸진 않겠습니다.” 라주는 회사를 위해 융통성 있게 소신을 굽힐 수 있겠냐는 질문에 “노”라고 답한다. 면접관이 말한다. “그동안 만난 수많은 지원자는 예스맨이 되던데 자네는 이상하군. 연봉 협상이나 해보세.”

파르한도 세계적인 사진작가에게 실력을 인정받아 함께 일할 기회를 얻는다. “재능을 따라가라”는 란초의 응원에 용기를 낸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꿈을 솔직히 이야기하고 아버지의 허락과 격려를 받는다. 란초 역시 친구를 위해 일을 벌였다가 퇴학의 위기를 겪지만, 눈앞에 닥친 문제들을 천재적으로 해결해보임으로써 끝내 총장을 감동시키고 최우수학생으로 졸업하게 된다. 그런데 무슨 일일까? 졸업장을 받아든 란초는 피아와 친구들에게 인사도 없이 모습을 감춘다.

5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프로 사진작가가 된 파르한은 이륙 직전 차투르의 전화를 받고 비행기에서 내린다.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던 라주도 소식을 듣고 부랴부랴 집을 나선다. 학창 시절 란초에게 당한 장난 때문에 원한이 깊은 차투르가 그의 소재를 알아냈다는 것이다. 차투르는 자신의 성공을 뽐내려고, 파르한과 라주는 그리운 친구를 만날 기대에 부풀어 란초를 찾아간다. 하지만 왕국이 부럽지 않은 저택에서 그들을 맞이한 건 란초의 이름과 란초의 졸업장을 가진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몇 년이나 같이 웃고 울며 공부했던 란초는 대체 누구였을까? 어떻게 총장 옆에 저택의 주인이 앉아 있는 졸업사진이 벽에 걸려 있을 수 있는가? 혼란스러워하는 파르한과 라주에게 주인은 어쩔 수 없이 놀라운 사실을 들려준다. 비밀을 지켜줄 것을 약속받고 란초의 진짜 주소도 알려준다.

마침 결혼식 날이었던 피아는 친구들에게서 란초의 소식을 전해 듣고 식장을 뛰쳐나온다. 그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란초가 결혼했으면 어쩌지? 그 녀석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어. 잘난 척하던 놈이 내 성공을 보고 배 아파해야 할 텐데. 네 명의 친구는 저마다 다른 이유로 가슴 설레며 인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란초를 향해 달려간다.


유쾌한 감동 담긴 볼리우드 영화

‘세 얼간이’는 라지쿠마르 히라니 감독이 2009년에 발표한 인도 영화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영화를 제작하는 봄베이(뭄바이)를 중심으로 한 인도의 영화 산업은 이른바 ‘볼리우드(Bollywood)’라고 불릴 정도로 할리우드를 압도한다. 러닝타임이 서너 시간 정도로 길고 코믹, 액션, 로맨스 등 여러 장르가 섞여 스토리가 진행되며 뮤지컬처럼 여러 배우가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이 꼭 나온다. 기성세대와 갈등하는 젊은 세대의 사랑과 결혼이 주요 테마인데 두 세대가 서로 화합하고 청춘남녀의 사랑과 우정도 유쾌한 감동으로 끝을 맺는다.

“너의 재능을 따라가면 성공은 뒤따라올 것이다”라는 내레이션으로 끝나는 ‘세 얼간이’도 사랑과 성공을 다 안겨주는 해피엔딩이다. 영화를 보고 나면 란초를 연기한 배우 아미르 칸과 인도 영화계의 여왕이라 불리는 카리나 카푸르가 궁금해지고 다른 인도 영화들도 찾아보고 싶어진다.

바보들이라지만 천재 공대생들의 좌충우돌 인생 성장기를 담은 코미디 영화인 걸 알면서도 왜 보는 내내 웃게 되고 공감하며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일까? 왜 영화가 끝나고도 ‘올 이즈 웰’을 자꾸 떠올리게 될까? 잊고 살았지만, 마음은 원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남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책임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운 인생을. 세상에 기여하면서도 좋아하는 일을 마음껏 하는 더 즐겁고 더 행복한 삶을.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