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T코리아의 실적이 지난 몇 년간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은 사실입니다. 새로운 변화, 도약을 이끌겠습니다.”
글로벌 담배 제조업체 브리티시 아메리칸 토바코(BAT)코리아를 이끄는 김은지(44) 사장이 던진 포부다. 솔직하면서도 당찼다. 그는 올해 7월 13일 BAT코리아 최고경영자(CEO)에 올랐다. 국내 담배 업계 최연소이자, 첫 여성 CEO다.
담배 업계에 ‘여풍(女風)’이라, 과연 어떤 변화의 바람인지 궁금했다. 사장 취임 약 4개월 후인 11월 5일 서울 중구 프라자호텔에서 그를 만났다.
“담배를 피우나요?” 가장 궁금한 질문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아뇨”라는 답이 돌아왔다. 순간 ‘자사 제품을 소비하지 않는 CEO라, 과연 제품을 제대로 이해하고 소비자에게 팔 수 있을까’라는 짧은 생각이 들었다. 기자의 마음을 읽었는지, 김 사장이 바로 부연했다. “제가 담배를 피우지 않아서 주변 사람들이 엄청 고생했습니다. 맛, 목 넘김 등 담배를 피울 때 느낄 수 있는 모든 것을 물으며 다녔거든요. 동시에 회사 리서치 데이터를 철저히 분석해 소비자가 어떤 담배를 좋아하고 원하는지를 파악했습니다.”
대학에서 화학공학을 전공한 김 사장은 BAT코리아에 앞서 2000년부터 글로벌 생필품 업체 유니레버코리아에서 근무했다. 그러나 보다 많은 성장 기회를 원했고 2004년 업(業)이 완전히 다른 담배 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17년이 지난 2020년 7월 BAT코리아 사장에 오르면서 그의 계획은 차차 현실이 되고 있다. “이제 본격적인 도전의 시작”이라는 김 사장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장 취임하며 변화와 도약을 강조했는데 전략이 있다면.
“궐련형 전자 담배 ‘글로’의 판매 강화다. 이는 BAT코리아뿐만 아니라 BAT그룹 전체의 성장 방향이다. 그룹 차원에서 2030년까지 전자 담배 등 ‘잠재적 위해성 저감 제품군’ 소비자를 현재 1300만 명에서 5000만 명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지난 2017년 글로를 출시했고 올해 초에는 ‘글로 프로’를 선보였다. 글로 프로는 베이핑(전자 담배 흡입)까지 필요한 가열 대기 시간을 기존 40초에서 10초로 획기적으로 줄인 제품이다. 내년 초 이 제품군 소비자가 1400만 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우리의 계획을 보다 빨리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2030년까지 제품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도 제로(0)화를 목표로 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실적이 하락했다. 이유는.
“‘던힐’ 브랜드의 하락세가 가장 크다. 그러나 올해 들어 의미 있는 성장을 이뤘다. BAT코리아의 국내 담배 시장 점유율이 지난해 말 11.97%에서 올해 11월 현재 12.19%로 늘었다. 같은 기간 궐련형 전자 담배 시장 점유율은 5.15%에서 6.44%로 1.29%포인트 증가했다. 글로 프로의 소비자 반응이 좋았다. 물론 여기에 만족하지 않는다. 소비자 니즈를 분석하고 빠르게 제품을 보완하거나 새로운 상품을 출시하면서 잠재적 위해성 저감 제품 시장에서 리더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다.”
2030년에는 전자 담배 등 잠재적 위해성 저감 제품 시장이 얼마나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나.
“국내 담배 시장은 약 80%가 일반 담배이고 10% 이상이 전자 담배 등 비연소 담배다. 현재 다른 담배 업체들도 경쟁적으로 잠재적 위해성 저감 제품을 출시하고 있는데, 2030년에는 두 시장이 50 대 50 비율로 가지 않을까 생각한다. 소비자들이 건강에 해롭지 않은 제품을 원하기 때문이다.”
이날 BAT코리아는 ‘글로 과학 연구 성과 발표’ 간담회를 열고, 일반 담배에서 궐련형 전자 담배 글로로 완전히 전환한 흡연자가 3개월 만에 담배 연기에 포함된 유해 성분에 대한 노출이 현격히 감소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특히 측정된 다수의 유해 성분을 분석한 결과, 글로로 전환한 시험 참가 그룹의 유해물질 노출 저감도는 흡연을 완전히 중단한 금연 그룹과 유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식품의약품안전처가 2018년 궐련형 전자 담배에서 일반 담배보다 더 많은 타르가 검출됐다고 발표한 내용에 반하는 결과다.
이번 연구 결과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가 기존 일반 담배보다 덜 해로운 담배를 만들고 있다는 뜻이다. BAT는 소비자가 만족하면서도 덜 위험한 제품을 선택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이런 의미로 그룹 차원의 비전도 ‘더 나은 내일(a better tomorrow)’로 새롭게 정했다. 또 최근 궐련형 전자 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유해하다는 인식이 일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도 알리기 위한 차원이다.”
흡연자의 건강을 걱정한다는 것인가. 담배를 판매하는 업체인데 모순인 것 같다.
“당연히 소비자의 건강을 걱정한다. 담배 판매와는 다른 이야기다. 흡연 관련 질환을 현저히 줄여 소비자의 삶의 질을 개선한다는 것이다.”
앞서 한국필립모리스도 전자 담배는 담뱃잎을 태우지 않고 가열하기 때문에 일반 담배보다 유해 물질 발생이 현저히 줄어든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시장에선 BAT, 필립모리스 두 해외 담배 업체가 연합 전선을 구축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국내 업체인 KT&G의 경우 전자 담배를 생산·판매하고 있지만, 이 제품보다는 일반 담배 판매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필립모리스와 공동 대응에 나선 것인가.
“공동 대응에 대한 논의가 이뤄질 가능성도 있지만, 아직 그런 단계는 아니다. BAT코리아는 물론 그룹 차원에서 필립모리스와 이런 협의를 하지 않았다. 각 회사의 연구진이 연구 결과를 발표한 것이다. 물론 해외 담배 회사 연구진들과 세미나, 포럼 등에서 만나 다양한 논의를 하는 것은 사실이다.”
BAT코리아와 한국 시장은 BAT그룹 내에서 어떤 위치인가.
“한국은 BAT그룹의 주력 시장 중 한 곳이다. 현재 BAT는 200여 국가에서 비즈니스를 하고 있다. BAT코리아를 1990년 설립했고 2020년 현지 생산·판매, 나아가 수출을 목적으로 경남 사천에 담배 제조 공장을 건설했다. 이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은 국내 판매는 물론 일본, 인도네시아 등 아시아를 중심으로 15개국에 수출하고 있다. 지난해 3억달러(약 3351억원)를 수출했는데, 올해는 4억달러(약 4468억원)를 돌파할 전망이다. 한국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프리미엄 브랜드 ‘던힐’의 변신도 꾀하고 있다. BAT코리아 입사 후 처음으로 맡은 역할이 던힐 브랜드 매니저였다.
“2004년부터 던힐 브랜드 담당 과장으로 일했다. 당시 국내 담배 시장은 현재보다 경쟁이 덜했다. 현재는 일반 담배부터 독특한 향을 더한 가향 담배, 전자 담배 등 제품이 다양하다. 기업 입장에선 소비자를 공략하는 게 더 까다로워졌다. 입사 당시 던힐은 국내 시장에서 프리미엄 전략을 펼쳤고 통했다. 당시 프리미엄 공간으로 ‘핫’했던 서울 압구정동, 청담동 등에 국내 담배 업계 최초로 거리 매장을 열기도 했다. 그러나 2012년 이후부터 던힐이 하향세를 보였다. (비싸다는) 이미지가 고착화되고 소비자와 함께 나아가질 못한 것 같다. 이후 ‘브랜드에 생명력을 꾸준히 불어넣어야 한다’ 등 많은 것을 배웠다. 최근 던힐에 새로운 향을 입히고 포장도 모던하게 바꾸는 등 새로운 변화를 주고 있다.”
회사 경영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다면.
“소비자가 가장 중요하다. 제품 개발, 판매 등 우리의 모든 비즈니스 결정의 중심에는 소비자가 있다. 그들이 원하는 제품을 만들고, 그들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찾아가야 하고 그렇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