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 외교학, 강원대 부동산학 박사, 스피드뱅크 부동산연구소장
11월 같은 비수기에는 부동산 대책이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11월 19일 정부가 24번째 부동산 대책을 내놓았다. 이번 대책은 갈수록 심각해지는 전세난 진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래서 ‘11·19 전세난 대책’으로 불릴 수도 있다. 이번 대책에 대해서는 시각에 따라 평가가 크게 엇갈린다. 특정 세력의 견해에서 벗어나 좀 더 균형적인 접근, 중심 잡기 차원에서 짚어보고자 한다.
공공이 나서 전세 공급 신호탄
이번 대책은 한시적 비상 대책 성격이 강하다. 수도권 30만 가구 아파트 공급 계획이 있는데. 이 아파트 입주가 본격화하는 시기가 앞으로 3년 뒤인 2023년이다.
그사이 공백을 메울 방법이 없을까? 정부는 다세대, 다가구, 빈 상가나 호텔, 비어있는 공공 임대 주택을 활용하겠다는 구상을 세우고 있다.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는 여유가 있는데 전세가 유독 모자라자 공공이 나서 전세를 직접 공급하겠다는 뜻이다. 공공의 전세 시장 개입이 본격화한 것으로 풀이해 볼 수 있다.
정부가 2년간 공급할 주택은 총 11만4100가구 정도로 내년 입주 물량의 45% 정도다. 적은 물량은 아니다. 부동산정보 회사 부동산 114에 따르면 2021년 전국 아파트 입주물량은 25만 가구다.
정부가 2022년까지 전국에 공급할 물량은 기존 임대 주택 공실 3만9100가구, 오피스텔과 빌라 등 매입 4만4000가구, 상가나 오피스, 호텔 리모델링 1만3000가구, 공공 전세 임대 1만8000가구 등이다. 지역은 아직 구체적으로 공개되지 않았다. 공급 물량 중 비어 있는 임대 주택(3만2200가구) 외에는 비아파트가 주류를 이룬다. 결과적으로 서울에서 공급되는 아파트 물량은 3532가구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정식보다 패스트푸드식 공급 정책
많은 사람이 이런 질문을 한다. “아파트가 모자라서 전셋값이 오르는데 아파트 공급은 왜 안 하느냐”는 것이다. 요즘 부동산 시장에서는 아파트 쏠림이나 편식 현상이 심하다. 이른바 ‘아파트 신드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인당 국민소득 3만달러가 넘어서면서 주거공간에 대한 기대치가 많이 올라갔다. 주차나 편의시설, 보안 등이 잘 갖춰진 주거시설 가운데 아파트만 한 곳이 없다. 아파트 핵심 수요층으로 떠오른 30대 밀레니얼 세대들이 아파트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파트 키즈’라는 점도 아파트 쏠림 현상의 요인이다.
하지만 아파트를 공급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린다. 땅을 사고 집을 다 지으려면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이 걸린다. 다세대·다가구주택이나 빈집, 비(非)아파트를 활용하면 이른 시일 내에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 아파트는 음식으로 따지면 정식이고 다세대·다가구 주택은 패스트푸드인 셈이다.
정부의 구상이 과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둘지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비선호 주택의 전세 공급을 늘리면 임대 주택 공급 주체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의 부채만 늘려 공기업 부실을 키울 것이라는 우려도 없지 않다. 주로 시장주의적으로 접근하는 전문가들 사이에서 고육지책(苦肉之策)을 내놓았다는 비판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중립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수요자들이 원하는 지역에서, 어느 정도 많은 물량이 얼마나 빠르게 공급될 것인지가 정책 실효성의 관건이 될 것 같다. 즉 전세 시장의 안정을 위해선 공급되는 지역, 물량, 속도 등 삼박자를 갖추는 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호텔을 둘러싼 논란, 제대로 읽기
빈 상가와 호텔, 숙박시설까지 활용하겠다는 정책은 전세난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물량이 많지는 않아 부분적인 효과 정도로 본다. 숙박시설 전세 정책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많지만, 모든 경제 현상이 그렇듯 호텔 등 숙박시설도 장단점이 있다.
우선 장점은 상업시설을 주거 용도로 바꾸면 순증 효과가 크다. 호텔은 도심에 위치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기 좋아 직주근접형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다. 주차 여건은 아파트 단지보다는 못하지만 다세대 및 다가구주택보다는 낫다. 무엇보다 세입자 명도에 따른 리모델링 지연 문제가 없다는 점은 가장 큰 장점이다. 상가 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면서 상가건물이나 오피스에서는 세입자에게 10년 영업 보장을 해줘야 한다. 상가건물이나 오피스는 세입자를 내보내고 리모델링하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호텔은 소유자가 직접 경영하거나 위탁 경영을 하고 있다. 한마디로 세입자가 없다. 오피스나 상가건물에 비해 비교적 리모델링에 속도를 내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점은 상업지역이나 준주거지역에 주로 위치해 자녀를 데리고 사는 3~4인 가구의 정주 공간으로는 힘들다는 점이다. 늘어나는 1~2인 가구에 맞춰 중소규모 오피스텔(100~300실)을 공급하는 효과 정도다. 아파트보다는 준주택으로 생각하면 무난할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요즘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숙박객이 줄면서 중소 관광호텔 사정이 어렵다. 호텔은 인테리어 트렌드가 자주 바뀌어 10년마다 완전히 뜯어고쳐야 한다. 리모델링 하려면 3.3㎡당 600만~700만원가량 들어간다. 이 때문에 20년 이상 된 호텔은 제법 매물로 나와 있다. 일부 개발업자들이 사들여 오피스텔로 바꾸기도 한다. 이번에 공공기관에 파는 호텔은 대로변 대형 호텔보다는 중소형 관광호텔이 주류가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호텔은 원래 살림집이 아니라 임시 거처다. 따라서 베니키아호텔을 개조해 만든 ‘숭인동 청년주택’처럼 리모델링을 하더라도 살기에 불편할 수 있다. 내부 평면을 더 개선해 주거 편의성을 도모하고 주거 비용도 낮춰야 할 것이다. 다만 정부 계획대로 월세가 아니라 전세로 싸게 공급한다면 도심에서 안정적인 주거 공간을 원하는 1~2인 수요층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전셋값 곧 잡힐까
이번 11·19 대책은 전세난의 부분 완충 효과 정도로 보고 싶다. 지금 전세 시장은 임대차 3법 이후 충격을 받는 상황이다. 지난 가을 이사철에 1차 고비를 겪었고 내년 겨울방학과 봄 이사철(2021년 1~4월)에 2차 고비를 맞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1989년에는 임대차보호 기간 변경(1년→2년) 후 전세 시장이 안정되는 데 서울 기준으로 4~5개월 걸렸지만 이번에는 더 시간이 걸릴 것이다. 임대차 기간을 1년에서 2년 늘리는 것과 2년에서 4년 늘리는 것은 차이가 있다.
물론 기존 세입자들은 전세 재계약을 통해 혜택을 받았지만 신규 진입자들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전세 수급이 꼬인 상황이다. 전세 매물이 없고 그나마 나오는 전세는 값이 껑충 뛰어 엄두가 나지 않는다. 정부가 아마도 내년 상반기까지 집중 공급(전국 4만9000가구, 수도권 2만4000가구)한다고 발표한 것은 이런 상황을 보고 판단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당장 공실인 공공 임대는 12월부터 입주자 모집을 시작한다.
지금 전세 시장 흐름을 고려하면 전세 시장 불안은 적어도 내년까지 이어질 것이다. 이번 대책이 전세 시장 혼란 기간을 줄여주는 정책적 효과를 거두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