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적인 석학 로버트 라이시 미국 UC버클리 교수는 2010년 집필한 저서 ‘위기는 왜 반복되는가’에서 2020년 미국 대선에서 포퓰리즘적인 대통령 후보가 승리할 것으로 예측했다. 그의 예측과는 달리 포퓰리즘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고배를 마셨다. 그런데 라이시 교수의 예측은 오히려 2016년 당시 트럼프 후보의 당선으로 더 앞당겨 이미 실현됐다고 보는 것이 옳다.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포퓰리즘 후보의 미래다. 최근 미국 대선은 포퓰리즘 후보가 계속해서 국민의 선택을 받지는 못한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리고 포퓰리즘의 패배를 보고 많은 사람이 안도했다. 집단지성에 대한 신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미국 사회는 사회적 분열로 고통을 받았다. 다양한 이슈에 의해 사회가 갈라졌다.
4년간 사회적 갈등과 분쟁에 지긋지긋해진 유권자가 포퓰리즘 반대를 선택한 것이 이번 선거의 내용이다. 많은 사람이 이번 미국 대선 결과를 ‘조 바이든 민주당 대선 당선인의 승리’라고 부르기보다 ‘반(反)트럼프의 승리’라고 부르는 이유다.
바이든은 선거 직후 승리가 점쳐지자 기자회견에서 민주당의 대통령이 아닌 모든 미국인의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다짐했다. 갈라진 미국을 다시 회복시키길 원하는 유권자와 국민에 대한 답변이었다.
실제 그가 내놓은 공약들은 사회 통합을 지향하고 있다. 사회안전망을 강화하기 위해 전 국민의 의료보험을 지향하는 소위 ‘오바마케어’를 확대하고 보험료를 인하할 계획이다. 교육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지역대학의 학비를 없애고 가계소득 12만5000달러(한화로 연봉 약 1억5000만원)의 중산층까지 공립대학 학비를 감면한다. 생애 최초 주택 구입 시 정부의 보조금을 제공하고 세액을 공제하는 프로그램도 제시했다. 국내에 일자리를 증가시키고 산업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인프라 개선 프로그램들도 제시했다. 미국 사회를 다시 통합하려는 것이 바이든 정부 공약의 주요 목표다.
바이든의 대외공약들은 국제 사회와의 갈등 해소와 재결합도 지향하고 있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했던 파리기후협약, 세계보건기구(WHO) 등에 대한 복귀를 선언했다. 대량살상무기(WMD) 확산저지, 핵확산 방지 등 글로벌 리스크를 감소시키는 전략으로 돌아갈 것을 약속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등 다자무역협정에도 다시 참여할 것으로 전망된다.
유세 중에도 동맹 중시 정책을 강조해온 덕에 동맹 관계 강화와 주요 국제기구에서 미국의 글로벌 리더십의 회복이 예상된다. 중국과의 갈등도 수시로 세계 경제를 혼란에 빠뜨렸던 노골적 분쟁의 형태보다는 영향력 경쟁의 모습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커 보인다.
미 대선이 포퓰리즘 정치에 일차적으로 패배를 안겼지만, 포퓰리즘 정치의 종말을 고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트럼프는 이번 선거에서 4년 전 획득한 6300만 표보다 1000만 표가 더 많은 7300만 표를 얻었다. 높아진 투표율 때문에 7860만 표를 획득한 바이든에게 졌지만, 격차는 2.7%포인트에 불과했다. 트럼프에 대한 지지표가 4년 전보다 증가한 것은 백인 저소득층, 국제화로 일자리를 상실한 근로자 등 미 국민의 사회적 분노가 감소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성장과실 분배의 일부 계층 집중, 부의 양극화 현상 심화, 일자리 감소 등이 국민의 분노를 증폭시킨 지 오래다. 국가에 대한 비난은 ‘헬조선’ ‘망한 나라’ 등의 표현으로 회자한 지 오래다.
그런데 주택 가격은 올해 공동주택 공시가격 전국 평균치가 전년 대비 5.98% 상승했다. 강남권을 비롯한 일부 지역 고가주택 가격상승률은 30%가 넘는다. 올해 2분기 서울지역 실업률은 5.3%로 전년 동기의 4.8%와 비교해 0.5%포인트가 상승해 사상 최대를 기록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영향이 있기는 하지만, 분노의 원인 가운데 해결된 것은 없다. 오히려 악화일로다. 우리나라야말로 트럼프보다 더한 포퓰리즘 정치가 극성하게 될 가능성이 큰 환경이다. 국민의 분노를 근본적으로 해소해줄 정책이 어느 때보다 긴요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