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베이징의 대표적 쇼핑가로 꼽히는 왕푸징 거리. 미국 명품 보석 브랜드 ‘티파니’와 이탈리아 명품 브랜드 ‘프라다’ 매장 사이에 덴마크 완구 브랜드 ‘레고’ 매장이 자리를 잡았다. 이 매장 안에는 각종 고궁과 유적, 판다와 용 등 중국의 상징을 레고 블록으로 구현한 모형으로 가득 찼다. 이 매장은 중국 현지 문화와 레고 제품을 결합해 호평을 받는다.
2020년 12월 초 왕푸징 거리의 레고 매장이 사람들로 붐볐다는 소식을 전한 블룸버그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와 온라인 시장 경쟁 심화 등 이중고를 겪으며 완구 업계가 실적 악화를 겪고 있다”며 “하지만 레고 그룹은 중국 오프라인 매장을 확대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고 보도했다. 레고 그룹은 내부적으로 2032년이면 전 세계 어린이 20억 명 가운데 3분의 2가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어린이일 것으로 보고, 시장 선점을 위해 현지 오프라인 영역 확대에 나서고 있다. 레고는 올해 안에 중국 85개 도시에 300개 매장을 확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는 2019년 초 중국 매장의 2배에 달하는 수치다.
레고 그룹은 지역별 매출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중국은 레고 그룹의 주요 시장 가운데 한 곳으로 성장했다. 하지만 현재 중국의 부모들은 어린 시절 레고를 가지고 놀았던 세대가 아니다. 이 때문에 중국에서 어린이는 물론 부모들이 레고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 그리고 레고라는 브랜드를 알리는 공간으로서 오프라인 매장의 중요성이 크다. 레고 그룹에서 아시아 지역 판매를 담당하는 신디 치우는 블룸버그와 인터뷰에서 “중국에서 특수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매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레고 그룹의 중국 오프라인 영토 확장 계획에는 테마파크인 ‘레고랜드’도 포함된다. 오는 2023년 개장을 목표로 중국 남부 쓰촨성에 중국 최초, 세계 최대 규모의 레고랜드를 건설 중이다. 2020년 6월 착공한 중국 레고랜드에는 다른 나라 레고랜드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놀이 기구와 에펠탑, 자유의 여신상과 같은 세계적인 랜드 마크, 만리장성과 같은 중국 명소를 레고 블록으로 구현할 계획이다.
‘언택트(비대면)’가 뉴노멀이 된 시대, 레고 그룹은 큰 틀에서 오프라인 매장을 온라인 구매로 유인하는 공간으로도 활용한다는 전략이다. 레고 그룹은 중국 온라인 판매를 늘리기 위해 추가 할인, 특별 할인, 멤버십 프로그램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한다. 그 덕에 레고 그룹의 중국 온라인 시장 영향력은 완구 업체 가운데 독보적이다. 2020년 5월에는 중국 고전문학 ‘서유기’를 모티브로 한 상품 출시 행사의 하나로 ‘라방(실시간 라이브 스트리밍)’을 진행했는데, 무려 1000만 명 이상이 시청했다. 중국 전자상거래 플랫폼 ‘티몰’에서 레고 그룹의 팔로어는 390만 명으로 업계 최고 수준이다. 실적에서도 드러난다. 전자상거래 및 마케팅 회사 WPIC에 따르면 2020년 11월까지 1년간 레고 그룹의 티몰 매출은 46억위안(약 7673억원)에 달했다.
중국에서 레고 그룹의 골칫거리였던 ‘짝퉁 레고’ 문제가 해결 수순에 접어들면서 레고 그룹의 중국 영토 확장에 한층 더 탄력이 붙은 모양새다. 중국에서는 ‘구디’ ‘지에고’ ‘레핀’과 같은 레고 모방품 브랜드가 수두룩했다. 레고 그룹은 이 브랜드들을 대상으로 법정 소송을 벌인 끝에 2020년 9월 승소 판결을 받았다. 당시 상하이 법원은 레핀 브랜드 관계자 등 9명에게 6년 이하의 징역과 9000만위안(약 150억원)의 벌금을 선고했다. 레고와 유사한 브랜드명과 로고를 사용한 레핀 브랜드는 그간 짝퉁 레고 425만 박스를 판매했는데, 불법 수익액 규모가 무려 3억3000만위안(약 550억원)에 달했다. 상하이 법원은 “이러한 범죄는 매우 심각하고 사회에 엄청난 해악을 끼친다”라며 “짝퉁 완구가 이미 시장에 퍼져 기업의 지식재산권을 침해하고 명성과 경제적 이익에 손실을 입히고 시장 질서를 어지럽힌다”라고 봤다. 레고 그룹은 해당 판결을 계기로 중국 짝퉁 레고 소탕에 고삐를 죄는 방침을 밝혔다.
골칫거리 ‘짝퉁 레고’ 몰아내
중국의 높은 교육열도 레고 판매에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중국의 치열한 교육 시스템에 대비할 목적으로 자녀에게 레고를 선물하는 중국 부모들이 많은 것이다. 레고 블록을 가지고 놀면서 손근육과 창의력을 발달시킬 수 있다는 기대심리가 중국 부모들에게 있다는 분석이다.
레고 그룹은 코로나19 충격에도 2020년 상반기 눈에 띄는 실적 개선세를 보였다. 판매량과 영업이익이 모두 두 자릿수 성장률을 기록했다. 2019년 상반기와 비교해 레고 그룹의 2020년 상반기 판매는 14% 늘었고, 매출은 7% 증가한 39억덴마크크로네(약 6983억원)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11% 뛰어 수익성도 개선했다. 지역별로 미국, 서유럽, 아시아, 중국에서 두 자릿수 판매 증가세를 보였다. 시리즈별로는 ‘테크닉’ ‘스타워즈’ ‘클래식’ ‘디즈니 프린세스’ ‘해리포터’ ‘스피드 챔피언스’ 등이 골고루 판매 상위권에 들었다.
레고 그룹은 전자상거래 시스템과 제품 혁신을 위한 장기적 관점의 투자가 효과를 발휘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레고 그룹이 리뉴얼한 전자상거래 플랫폼 ‘레고닷컴(lego.com)’의 2020년 상반기 접속자 수는 1억 명으로 전년도 같은 기간의 2배 이상이었다. 레고 그룹의 최고경영자(CEO) 닐스 B. 크리스티안센은 “우리는 강력한 제품군으로 모든 연령대의 소비자를 유혹할 수 있었고, 경쟁력을 강화한 전자상거래 플랫폼과 민첩한 글로벌 공급망 운영 덕에 온라인 수요를 소화할 수 있었다”라며 “오프라인 매장 파트너사와 협력해 온라인으로 많은 고객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전자상거래 경쟁력을 강화하고 고객에게 환상적인 오프라인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투자를 계속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美에선 공항 입점 매장 늘려
레고 그룹은 미국에서 공항을 중심으로 매장을 늘리고 있다. 2020년 12월 초 솔트레이크시티 국제공항에 세계 최초의 공항 입점 매장을 열었다. 현지 오프라인 매장 파트너사인 마셜 리테일 그룹과 함께 올해 공항 입점 매장을 12곳으로 늘리는 계획을 세웠다.
코로나19 확산으로 항공·여행업이 고사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레고 그룹의 공항 매장 확대 전략은 선뜻 이해하기 어렵다. 하지만 레고 그룹은 위기 속 기회를 포착했다. 해외여행이 거의 불가능해지자 풍선 효과처럼 국내 여행 수요가 많이 늘어난 점에 주목해 공항 매장을 확대하는 전략을 세운 것이다. 이는 실적으로 즉각 나타났는데, 솔트레이크시티 국제공항에 있는 레고 매장의 개장 직후 일주일간 실적에서 코로나19의 그림자를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가 종식 국면에 접어들고 해외여행이 정상화하면 레고 그룹의 미국 판매가 날개를 달 수 있다. 레고 그룹은 코로나19 사태 추이를 예의주시하면서 미국 유동인구가 많은 대형 공항에도 입점한다는 방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