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 퍼스트(미국 우선)’ ‘중국 관세 폭탄’ ‘세계무역기구(WTO) 탈퇴 협박’까지… 파란만장했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독주가 끝났다. 50년 넘는 정치 경력을 갖춘 조 바이든 새 미국 대통령의 1월 20일 취임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미국 제46대 대통령인 바이든은 무너진 글로벌 다자협력 시스템을 재건하고, 글로벌 및 우리나라 경제에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이코노미조선’은 이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국제 통상 전문가인 정인교(59)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를 인터뷰했다.
1월 12일 인천 학익동 인하대학교에서 만난 정 교수는 “‘바이드노믹스(Bidenomics)’로 미국 우선주의가 강화될 것”이라며 “통상정책에서는 트럼프보다 더 센 보호무역주의를 시행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기업들도 바이든의 자국 기업 보호에 맞게 미국 생산 비중 확대, 미·중 사업 법인 분리 등의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바이드노믹스를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미국 우선주의 강화다. 바이든은 트럼프보다 더 강력한 미국 우선주의 정책을 펼칠 것이다. 바이든의 정책을 살펴보자면 4~5년 전 상황을 돌아봐야 한다. 트럼프가 2016년 선거운동 당시 내세운 보호무역주의 정책은 민주당의 전통적인 슬로건이었다. 공화당 소속의 트럼프가 보호무역주의를 내세우면서 민주당의 정체성이 흔들렸다. 민주당은 트럼프 집권기 동안 더 강력한 보호무역주의,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기 위해 고심해왔다. 통상 분야에서 트럼프와 정책 기조는 같지만, 자국 보호 조치를 더욱 강화할 것이다.”
우리나라 기업의 수출도 어려워질까.
“바이든은 ‘바이 아메리칸(Buy American·미국 제품 구매)’ 정책을 줄기차게 얘기해왔다. 미국 내에서, 미국 노동자들이 생산한 제품을 우대하겠다는 것으로, 사실상 미국에서 비즈니스를 하려면 미국에 투자하라고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셈이다. 지금까지 국내 기업은 우리나라에서 상품을 생산해 미국으로 수출하는 게 용이했는데 구조를 바꿔야 할 수밖에 없다. 기업들도 국내 부품 조달, 미국 내 생산 비중을 적절하게 섞어서 미국 정부 요건에 맞춰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바이든의 친환경 정책이 우리나라 기업들에 문제가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는 미국 관점의 친환경 정책이지 글로벌 환경 문제 해결과는 방향이 다를 수 있다. 우리 정부의 친환경 정책이 바이든 정책과 결을 같이할 것인가는 좀 더 두고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바이든 행정부의 대중 정책은.
“바이든 행정부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에 대만계 미국인 캐서린 타이 미국 하원 세입위원회 수석 무역 고문을 지명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언뜻 보면 이이제이(以夷制夷·오랑캐로 오랑캐를 다스림)라는 말이 생각나지만, 타이 내정자는 중국의 정치·경제 체제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인 데다 통상법 전문가다. 시진핑의 사회주의 시장경제 체제가 통상법 차원에서 무슨 문제가 있는가를 가장 잘 짚을 수 있는 사람이다. 미국 민주당과 일을 해 왔기에 바이든의 보호무역주의를 실행할 수 있는 적임자로 봤을 것이다. 바이든 행정부는 트럼프 정권에서 만든 안보조항 232조, 중국 기업의 대미 투자 제한, 중국 블랙리스트 규제책 등을 지속하고, 중국을 더 아프게 때릴 방안을 찾을 것이다. 특히 바이든과 타이 내정자는 앞서 중국의 인권 문제도 지적한 상황이다. 대만, 홍콩 등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 문제를 가지고 대중 압박 수위를 키울 가능성도 있다.”
미·중 갈등이 지속될까. 우리나라 기업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
“바이든 행정부는 우리나라, 일본, 인도 등 우방 국가와의 연계를 통해 대중 압박 수위를 높일 가능성이 크다. ‘우리(미국)와 거래하든지, 중국과 하든지 둘 중 하나를 택하라’는 압력을 넣을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나라 기업들은 미국, 중국을 동시에 거래해왔는데, 디커플링(탈동조화)이 구체화되면 양자택일해야 할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사에서 수출 전망을 밝게 봤는데, 구조적으로 어두운 측면이 있다. 미⋅중 관계에서 국내 산업계와 정부 모두 어중간한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오래 지탱하기는 힘든 구조다. 우리나라의 첨단 부품은 중국으로 많이 수출돼 왔는데 수출길이 막히고 있고, 전통 제조업 수출은 중국의 쌍순환 정책으로 수출 시장이 줄고 있다. 정책 당국과 기업들은 고민해야 한다.”
우리나라 기업들에 기회는 없나.
“미·중 경제가 분리되면서 수급을 하지 못하거나 수급이 달리는 품목 등에서는 기회가 있을 거다. 반도체 같은 첨단 품목 기업에는 상당한 기회가 될 수 있다. 향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종식되더라도 감염병에 의한 위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여 감염병 관련 사업을 하는 바이오 기업도 주목받을 전망이다.”
바이든이 무너진 다자협력 시스템을 복구할 가능성은.
“미국이 세계무역기구(WTO)를 정상화시킬 것으로 기대하지 않는다. 미국이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CPTPP)에 복귀할 것이라는 분석이 있는데, 현 상태로는 미국이 가입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현재 미국-멕시코-캐나다 협정(USMCA) 규정이 선진화돼 있기 때문에 CPTPP를 업그레이드하고 명칭을 고쳐 가입할 수도 있다. 사실 미국이 다자통상체제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미⋅중 갈등에 있다. 현재의 규범으로는 미국의 대중국 조치에 대한 정당성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대중 압박을 지속하려면 현재의 WTO 무시(고사) 정책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 중국의 미국 제소에 대해 WTO가 중국 손을 들어 주는 경우가 많다는 점과도 직결된다. 결과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미·중을 뺀 나머지 지역과의 교역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현재 문재인 정부가 CPTPP 가입을 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또한 우리나라는 비교적 자유무역협정(FTA)을 잘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지만, 남미, 중앙아시아와의 FTA는 진전이 더디다. 이 부분에서는 더욱 속도를 내야 한다.”
바이든의 경제정책 우선순위는 무엇일까. 변수는 없나.
“바이든의 최우선순위는 코로나19 방역이다. 보건 문제지만, 동시에 경제 문제다. 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한 봉쇄조치를 취하면서 미국 경제는 최악의 상황에 빠졌다. 코로나19를 막고 경제를 살리지 못하면 올해 미국 경제는 낙관할 수 없다. 코로나19 종식, 집단면역 형성에 앞으로의 경제 상황이 달린 셈이다. 현재 미 민주당이 백악관과 상·하원을 장악하는 이른바 ‘블루웨이브’가 현실화하면서 정치적 리스크는 상당히 줄었다. 하지만 트럼프가 지난 대선에서 7000만 표 이상을 얻었고, 트럼프 지지자들이 상당히 응집력이 강하다는 것은 리스크다. 바이든은 ‘모든 미국인의 대통령’이 될 것임을 공표했지만, 미국 국민의 49%는 공화당 지지자다. 하나의 미국으로 통합하지 못하면 정치적 리스크가 발목을 잡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