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설명 중국은 세계 시장에서 ‘아프리카 대출 왕’으로 불린다. 중국은 2000년대 들어 아프리카 국가들을 상대로 ① 공적원조개발(ODA) 사업을 진행했다. 빈곤 국가인 앙골라 등에 자금을 지원하며 도로·철도·공항 등 인프라를 구축, 아프리카의 경제개발을 도왔다. 이를 통해 중국은 단기적으로 아프리카의 석유·철광석 등 지하자원을 확보했다. 장기적으로 아프리카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는 중국의 ‘세계 경영’ 포석이었다. 아프리카에 대한 지원은 2013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②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가 시작되며 확대됐다. 중국의 공격적인 공적 자금 지원은 상환 능력이 부족한 아프리카 국가들을 ‘빚더미 함정’에 빠뜨리는 부작용을 초래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생 탓에 경제 악화를 겪는 아프리카에 부채 리스크는 더욱 큰 짐으로 다가오고 있다.
폴라 수바키(Paola Subacchi)이탈리아 볼로냐대 경제학 교수, 현 영국 퀸메리대 글로벌경제정책연구소 의장
폴라 수바키(Paola Subacchi)
이탈리아 볼로냐대 경제학 교수, 현 영국 퀸메리대 글로벌경제정책연구소 의장

중국에 많은 빚을 진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이 코로나19 사태로 경제가 악화되자 딜레마에 빠졌다.

노벨평화상 수상자이자 에티오피아 총리인 아비 아흐메드가 지난해 4월 한탄했듯이, 아프리카 지도자들은 빚을 갚거나 자원을 재분배해 국민의 목숨을 구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다. 후자를 택할 경우, 그들은 아프리카에 가장 많은 개발원조를 해주는 중국을 상대해야 하는 또 다른 문제와 대면하게 된다. 아흐메드는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에티오피아가 코로나19에 대응하기 위해선 30억달러(약 3조3000억원)가 필요하고, 동시에 “중국의 채무상환 유예가 필수적”이라고 했다.

실제로 중국의 채무 유예는 앙골라를 위기에서 구했다. 차드, 콩고공화국, 수단과 함께 앙골라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붕괴한 물가 때문에 심각한 재정 압박을 받고 있었다. 그러나 지난해 9월 앙골라는 중국개발은행(CDB)과 중국수출입은행을 포함한 3개의 주요 채권단과 향후 3년간 62억달러(약 6조8200억원)의 부채감축을 합의했다. 앙골라는 CDB에 145억달러(약 15조9600억원), 중국수출입은행에는 50억달러(약 5조5000억원)의 빚을 지고 있는 상태다.


아프리카, 코로나19로 재정 악화

지난해 10월 잠비아도 달러 표시 채권에 대한 4250만달러(약 470억원)의 이자를 지급하지 못했고, 국내총생산(GDP)의 절반가량에 해당하는 120억달러(약 13조2000억원)의 외채가 채무불이행 상태까지 놓일 위기에 있었다. 그러나 중국 채권단의 도움으로 재정 압박이 완화됐다. CDB는 이자와 원금 상환을 올해 4월까지 연기해줬다. 중국수출입은행은 1억1000만달러(약 120억원) 상당의 국가 대출 상환을 유예했다.

이런 중국의 조치는 세계 주요 20개국(G20)의 ③ 채무상환 유예 이니셔티브(DSSI·Debt Service Suspension Initiative)의 틀 안에서 이뤄졌고, 앙골라·잠비아 등 아프리카 국가들은 DSSI를 통해 중국에 대한 채무상환을 일시 중단할 수 있었다.

중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아프리카 등 개발도상국에 대한 대출을 꾸준히 늘려왔다. 중국 대출을 가장 많이 받은 50개국이 중국에 진 평균 부채 비중은 2005년 GDP의 1% 미만에서 2017년 15% 이상까지 증가했다.

이 현상은 위험을 수반한다. 중국 은행들은 다자개발은행보다 초기 대출자에게 더 부담스러운 대출 조건을 제시한다. 높은 이자율을 책정하고, 더 짧은 만기 조건을 정하는 경향이 있다. 지난해 4월 존 마구풀리 탄자니아 대통령은 중국이 자국에 자금을 대면서 ‘술주정뱅이나 받아들일, 말도 안 되는 조건’을 내걸었다며 전임자가 시작했던 100억달러(약 11조원) 규모의 프로젝트를 취소하겠다고 공언했다.

중국의 양자 대출은 정책은행과 국유상업은행에 의해 이뤄진다. 이들 금융기관은 대부분 중국 국가에 의해 통제되지만, 합법적 독립 주체로서 운영되고 있다. 주요 채권국 회의 ④ 파리 클럽(Paris Club)의 회원들과는 달리, 중국의 정책 및 국유상업은행은 개발자금 대출을 위한 담보를 요구할 때가 많다. 개발도상국에 대한 대출의 60%가 담보로 잡혀 있다. 한 국가가 채무 구제를 신청하면, 그 국가의 중국 채권자들은 담보로 잡힌 자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할 수 있게 된다.

게다가 중국 은행들은 국영도 민간도 아닌 모호한 지위에 있어 다른 국가에 대출해줄 때 비밀리에 재협상하는 경향이 있다. CDB가 잠비아와 채무상환 유예 합의를 한 게 정부 차원이 아닌 민간에서 자발적이고 시장원리에 따라 이뤄졌다는 게 중국 정부의 입장이다. CDB가 공식 양자 간 대출 기관으로서 DSSI와 함께해야 한다는 세계은행(WB)과 G20의 요구를 중국 정부는 거부했지만, CDB가 자율적으로 했다는 것이다.

확실한 것은 중국이 이 상황에서 전적인 책임을 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많은 빈곤 국가가 중국 채권단의 손을 잡게 된 것은 다른 채권자들의 적절한 자금 지원, 특히 인프라 투자 유치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잠비아 수도 루사카의 케네스 카운다 국제공항 부근에 있는 중국은행과 펩시코 광고판. 이 공항은 중국이 자금을 지원하고 건설했다. 사진 블룸버그
잠비아 수도 루사카의 케네스 카운다 국제공항 부근에 있는 중국은행과 펩시코 광고판. 이 공항은 중국이 자금을 지원하고 건설했다. 사진 블룸버그

빈곤국 채무 문제, 세계가 나서야

아프리카 국가들은 인구 증가, 경제 발전에 필요한 인프라를 구축하기 위한 자금이 부족할 때가 많다. 나아가 그들은 국제 자본 시장과 은행에 잘 접근하지 못한다. 그리고 주요 채권단은 이들을 도와주고 있지 않다. 2017년 파리 클럽에 속한 국가들이 대준 자금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공공 및 공공 보증 부채의 5%만을 차지했다.

반면 중국은 가난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정부 개혁이나 반부패 조치를 딱히 요구하지 않으면서 이들에게 자금을 지원하고 대출을 연장해줬다. 그 결과, 운영비가 많이 드는 여러 사업은 가혹한 대출 조건에 묶여 제대로 된 수익을 낼 수 없게 됐고, 중국의 손에 넘어가기도 했다.

빈곤국들은 코로나19 위기 동안의 부채 유예로 감염병 대응을 위한 자금을 풀어 잠시 숨통을 틀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이들 스스로 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다. 유예 기간이 종료되면,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다자간 기관이 개입해야 하는 채무불이행 파장을 촉발할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아프리카 등 빈곤 국가들의 채무 리스크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국제적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


Tip

선진국이 개발도상국이나 국제기관에 하는 원조다. 공공개발원조 또는 정부개발원조라고도 불리며 주로 증여·차관·배상·기술원조 등으로 이뤄진다.

중국과 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70개국 이상을 도로·철도·해상 인프라로 연결해 경제권을 형성하는 중국의 전략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3년 9월 카자흐스탄 방문 때 처음 주창했다. 2016년 중국 주도로 출범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은 ‘일대일로’ 국가의 자금줄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2020년 10월 13일 아프리카 국가들의 채무상환을 유예했다. 이날 중국 외교부는 중국수출입은행이 아프리카 11개 국가와 채무상환 유예 합의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중국의 이런 조치는 세계 주요 20개국(G20)의 저소득국 채무상환 유예 이니셔티브(DSSI)에 의해 이뤄진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지난해 4월 G20은 DSSI를 출범하고, 코로나19 사태로 어려움을 겪는 아프리카, 아시아 등 73개국에 대해 채무상환을 유예하는 혜택을 부여하도록 권고했다.

국가 간 채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채권국들의 비공식 협의체다. 채무국이 공적 채무를 정상적으로 상환할 수 없는 경우 재조정을 논의하는 역할을 한다. 주요 목적은 다자간 협력을 통해 채권국들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데 있다. 상환 기간 연장, 채무탕감, 이자율 조정 등 채무재조정을 통해 채무국의 외채 상환 부담을 줄여 상환 능력 회복을 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