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피아의 세계를 실감 나게 그린 걸작 ‘대부’의 주인공 비토 콜레오네(말론 브란도 분)가 의뢰인의 얘기를 듣고 있다. 사진 IMDB
마피아의 세계를 실감 나게 그린 걸작 ‘대부’의 주인공 비토 콜레오네(말론 브란도 분)가 의뢰인의 얘기를 듣고 있다. 사진 IMDB

남자로 살면서 지켜내야 할 두 가지가 있다. 자기 사람들과 인간의 자긍심이다. 그러나 내 사람을 지키겠다고 다른 사람을 팔아 돈을 벌고 폭력과 배신과 살인을 일삼으면 인간의 자존심은 버리는 것. 그래서 매춘과 마약과 도박 사업에 손을 대면 아무리 큰 부와 힘이 있어도 세상은 그들을 어둠의 일원으로 치부한다.

마이클은 뉴욕에서 가장 큰 세력을 가진 마피아 보스, 비토 콜레오네의 막내아들이다. 패밀리라 불리는 막강한 조직을 가진 집안 덕에 남부러울 것 없이 자유롭게 살아가고 있지만, 마이클은 아버지의 인생에 동의하지 않는다. 조직을 계승할 형이 있으므로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앞으로도 아버지와 그의 조직이 저지르는 범죄는 자신과 관계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아버지처럼 살지는 않으리라, 그의 가슴 한쪽에서는 아버지의 인생을 경멸하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이클은 비토가 저격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충격을 받는다. 비토와 경쟁하던 조직들이 마약 사업으로 영역을 확장하려 방법을 모색하던 시기였다. 엄청난 수익을 보장할 건 분명했지만 중독시켜 사람을 망가뜨리는 마약을 정치권이 공개적으로 동의하지 않을 거라 예상한 비토는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성공적인 사업 확장을 위해 비토의 정계 인맥이 반드시 필요했던 라이벌들은 차라리 그를 제거하기로 한다. 콜레오네의 후계자 소니를 보스의 재목으로 인정하지 않았던 그들은 비토가 죽는다면 가장 막강했던 조직이 무너질 것이고 비토와 연결되어 있던 정치 세력은 자신들과 손을 잡을 거라 계산한 것이다. 그러나 비토는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졌고 마이클이 기지를 발휘한 덕에 그들의 2차 암살 시도도 실패한다.

“제가 아버지를 지킬 거예요. 제가 아버지 곁에 있을 거예요.” 마이클은 사경을 헤매던 아버지에게 약속한다. 아마도 마이클은 그때 자신의 인생이 아버지의 삶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무슨 일이든 마다하지 않았던 아버지, 세상이 뭐라 욕을 하든, 평생 어떤 더러운 일들을 해왔든 그는 든든한 가장이었고 인자한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가 세상의 바람막이가 되어준 덕분에 자신은 티끌 하나 묻지 않은 귀공자처럼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쓰러진 지금, 진창을 뒹굴든 온몸에 피를 뒤집어쓰든 가족과 조직을 지켜내야 한다고 마이클은 결심한다. 비토의 목숨이 경각에 달한 시기, 조직을 장악하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던 소니와 달리 마이클은 이성적으로 계획을 세우고 냉철하게 복수를 실행한다. 그는 아버지를 죽이려 했던 적들을 직접 처단한 뒤 경찰이 마피아와 결탁해 벌어진 사건이라고 언론을 이용해 세상에 알림으로써 자신의 첫 번째 살인을 정당화한다.

피는 피를 부르고 복수는 복수를 부른다. 이번엔 소니가 저들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무참히 살해당한다. 장남을 잃은 비토는 있는 힘을 다해 몸을 추스르고 일어나 조직의 대표들과 화해의 자리를 마련한다. 소니의 복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무의미한 전쟁을 끝내자고 제안한다. 그들의 바람대로 정계와 연결, 마약 사업의 안전도 보장하겠다고 약속한다. 대신 마이클의 털끝 하나도 건들지 말 것을 다짐받는다.

그렇게 마이클은 콜레오네의 수장이 된다. 비토는 자신의 뒤를 이은 마이클이 대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프다. 그는 누구보다 사랑하는 막내아들이 음지의 세계에 들어오길 원치 않았다. 마이클만은 떳떳한 양지에서 살아가기를, 손에 피 묻히지 말기를, 상원의원이나 주지사가 되어 높고 환한 곳에 서기를 간절히 바랐던 것이다.

일선에서 물러난 비토는 모든 사건의 숨겨진 배후가 누구였는지를 알려 경계토록 하고 잔혹한 세계에서 패밀리를 지켜낼 수 있도록 사업에서 알아야 할 여러 가지 것들을 마이클에게 조언해준다. 그렇게 생애 처음으로 잠시 한가한 시간을 보내던 비토는 조용히, 파란만장했던 생을 마감한다.

마이클은 아버지의 자리에 앉고 나서야 세상을 움직이는 그림자 정치의 원리를 이해한다. 아버지도 힘을 가진 다른 사람들, 가령 대통령이나 국회의원들과 다를 게 없었다고 생각한다. 직접 내 손으로 죽이느냐, 세상을 향해 선량한 척 웃는 동안 남을 시켜 죽이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

마이클은 비토 콜레오네가 없는 패밀리를 당장이라도 끝장내려는 경쟁 조직들과의 한판 승부를 치밀하게 준비한다. 먼저 죽이지 않으면 죽게 되는 암흑의 세계, 마이클은 하이에나처럼 달려드는 적들로부터 가족과 조직을 지켜낼 수 있을까? 새로운 시대를 열고 아버지의 바람대로 세상의 양지에 패밀리를 세울 수 있게 될까?


마피아의 세계 실감 나게 그린 걸작

마피아의 세계를 실감 나게 그린 마리오 푸조의 동명 소설을 각색,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이 1972년에 발표한 영화다. 비토에서 마이클로 세대교체가 되는 과정이 1편에, 아메리칸 드림을 품고 미국에 온 이탈리아 이민자 비토가 마피아의 대부가 되어가는 과거 이야기가 2편에 담겨 있다. 모든 걸 다 이룬 것 같지만 쓸쓸한 노년의 마이클이 비극적 종말을 맞이하는 3편으로 시리즈가 완결된다. 비토는 말론 브란도가, 마이클은 알 파치노가 연기했다. 살벌한 내용과 달리 감미로운 주제곡도 유명하다.

어둠의 세계는 없다고 믿고 싶지만, 영화에 출연할 배우를 결정하는 데도 비토의 입김이 작용했던 것처럼 ‘대부’가 만들어지던 당시, 실제로 영화 사업을 장악하고 있던 조직의 압력 때문에 마피아라는 말 대신 패밀리로 고쳐 써야 했다고 한다. 지금이라고 다를까?

그러나 ‘대부’가 전설적인 영화로 평가되는 것은 범죄조직의 미화에서 끝나지 않고 삶의 본질을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족을 지키기 위해 평생 노력했으나 가족은 몰랐으면 하는 세상의 뒷모습, 자식을 위해 일했으나 자식만은 대물림하지 않기를 바라는 세상의 이면. 그런 삶의 무게에 짓눌리면서도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한평생 고독했을 아버지를 어느덧 쓰디쓴 가슴으로 이해하게 되는 아들, 그렇게 또다시 ‘아버지의 삶’을 묵묵히 살아가게 되는 세상 모든 아들의 쓸쓸하고도 장엄한 이야기. 이것이 앞으로도 많은 사람이 이 영화를 찾게 될 진짜 이유가 아닐까?


▒ 김규나
조선일보·부산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소설 ‘트러스트미’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