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 등 해외에서 ‘Buy now Pay later(BNPL·선구매 후결제)’ 슬로건을 내건 핀테크 기업이 주목받고 있다. BNPL은 이용자에게 무이자 혹은 저비용으로 제공되는 일종의 할부 구매 서비스로, BNPL 기업이 상점에 판매 대금을 선지급하면 소비자는 일정 기간 내 해당 금액을 나눠 납부하는 형태다. 사용자는 예상치 못한 지출에 대한 부담을 줄일 수 있고 신용카드를 이용하지 못하는 경우, 계좌 잔고가 없는 경우에도 구매 비용 분납을 할 수 있다.
후불결제 핀테크인 BNPL은 모바일·디지털 환경을 선호하는 ‘MZ 세대(밀레니얼+Z 세대·1981~2004년생)’ 덕분에 성장 가도를 달리고 있다. 클릭 몇 번에 간단하게 금융 서비스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BNPL 시장의 거래액은 2018년 285억달러(약 319조원)였으나, 지난해 352억달러(약 394조원) 정도 규모로 성장했다.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2025년까지 연평균 13% 이상 성장해 680억달러(약 761조원) 규모의 시장을 형성해 주요 핀테크 사업으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예상된다.
BNPL은 특히 신용카드 발급 문턱이 높은 국가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은 은행 계좌를 만들고 신용카드를 발급받는 데 꽤 긴 시간이 걸리고 절차도 복잡하다. 신용카드 발급을 위해서는 사회보장번호(SSN)가 있어야 하고, 소득증명을 제출해야 한다. 신용점수가 필요한 것은 물론이고, 약 200~1000달러(약 22만~110만원) 이상 일정한 금액의 보증금이 계좌에 있어야 한다. 금융거래의 이력이 짧아 신용이 없는 학생이나 사회생활을 갓 시작한 젊은이들은 카드를 발급받기가 상당히 어렵다.
북미뿐 아니라 호주의 애프터페이(Afterpay), 중국 알리페이의 화베이(花唄) 등 세계적으로 BNPL 서비스가 인기를 끈다. 이번 칼럼에서는 스웨덴에서 시작해 북유럽, 북미 등으로 사세를 확장한 클라르나(Klarna)를 소개하고자 한다.
17개국서 9000만 명 고객 모은 클라르나
클라르나는 2005년 2월 스웨덴 스톡홀름 경제대학 석사과정 학생 3명이 만든 BNPL 서비스 기업이다. 소비자들에게 무이자로 상품을 구매하게 해주고, 동시에 가맹점들에 결제 대금을 모두 선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한다. 가맹점으로부터 받는 수수료가 주요 수입원이다.
클라르나는 창업 초기 스타트업 오디션에서 꼴찌를 기록할 정도로 주목받지 못했으나, MZ 세대의 주목을 받으며 성장했다. 클라르나는 현재 17개국에서 9000만 명 이상의 고객, 25만 개 이상의 가맹점을 확보하고 있다. 하루 평균 200만 건 이상의 거래를 기록할 정도다. 현재까지 31억달러(약 3조4700억원)의 누적 투자금을 유치했고, 기업 가치도 310억달러(약 34조7000억원)에 달한다. 2019년 4월부터 2021년 3월까지 2년간 10개의 투자 라운드가 진행됐다.
클라르나가 인기를 끌게 된 가장 큰 요인은 편리한 결제 방식이다. 사용자는 은행 계좌 번호와 신용카드 번호를 알려주지 않아도, 복잡한 보안 프로그램을 설치하지 않아도 결제할 수 있다. 청구서를 받고 난 뒤 신용카드, 직불카드, 온라인 송금 등 원하는 방식으로 돈을 지불해도 된다. 자금 사정에 따라 결제일을 조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무이자 4회 할부 방식(구매 시점·2주·4주·6주 후 결제) △14·30일 내 무이자 일시불 결제 방식 △6~36개월에 걸쳐 장기간 나눠서 결제하는 방식 등이다. 다만 장기 결제 방식의 연간 할부 금리는 0~29.99%로, 리볼빙(revolving·일부 결제금액 이월약정) 계정을 통해 제공한다. 보통 노트북, TV 등 금액대가 높은 상품을 구매할 때 이 방식을 택한다. 대금을 지불하지 못하면 리볼빙 계정을 통해 개인 신용점수가 영향을 받는다.
고객에게 귀엽고 포근한 이미지로 다가선 것도 클라르나의 인기 요인 중 하나다. 클라르나의 핑크 로고는 MZ 세대에게 ‘부채’라는 부정적 이미지보다 ‘현명한 지출을 위한 수단’이라는 느낌을 줬다. 초기 투자자이자 미국 힙합계의 거장인 스눕독(Snoop Dogg)이 클라르나 광고에 출연하면서, 더욱 친근한 이미지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유통업계와 소상공인도 클라르나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다. 클라르나는 가맹점으로부터 거래 한 건당 0.3달러를 고정비로 받고, 결제 금액의 5.99%를 수수료로 받는다. 비자, 마스터 등 대표 카드사의 고정비(0.05달러)와 수수료(1.29%)에 비해 높은 금액이다. 하지만 가맹점 입장에서는 고객 유입에 효과적인 편이라고 평한다. 클라르나를 통해 다수의 사용자를 앱에 유입시킬 수 있고, 간단한 결제 방식으로 고객 구매 횟수와 구매 금액이 늘어나는 효과를 얻기 때문이다.
후불결제에 ‘카드대란’식 리스크 우려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확산으로 온라인 쇼핑 수요 증가는 클라르나의 실적을 개선하기도 했다. 클라르나의 2020년 거래액은 530억달러(약 59조3600억원)로, 전년(350억달러) 대비 51% 성장했다. 같은 기간 순영업수익도 7억5300만 달러(약 8400억원)에서 10억8700만달러(약 1조2100억원)로 44% 증가했다.
BNPL 서비스가 가져올 수 있는 리스크를 어떻게 풀어갈지가 클라르나의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사용자의 신용과 서비스 리스크 관리를 지속적으로 강화하지 않으면 2000년대 초 한국이 겪은 카드대란 같은 사태가 일어날 수 있다는 우려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영국의 개인 금융 포럼 ‘고 펀드 유어셀프(Go Fund Yourself)’의 앨리스 태퍼(Alice Tapper)는 “젊은이들이 BNPL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부채를 떠안고 있다”며 BNPL 규제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캠페인 목적은 해당 업체의 서비스를 중단하거나 BNPL의 편리성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라 정보 제공을 통해 소비자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바스티안 시에미아트코프스키 클라르나 대표는 이에 대해 “클라르나의 디폴트 비율은 1%도 되지 않는다”며 반박한다. 그는 “지금 당장 신용카드를 신청하면 약 5000파운드(약 785만원)의 한도를 받고, 사용자는 그 돈을 다 쓰고 빚더미에 올라앉아 리볼빙(일부 결제 금액 이월 기능)하기 시작한다”며 “BNPL은 이용자가 책임감 있게 납부할 수 있을 경우에 서서히 단계적으로 결제액을 증가시킨다”고 했다. BNPL로 빚더미에 앉는 인원이 신용카드를 남용하는 사람보다 적다는 주장이다.
BNPL 모델은 여러 우려를 뒤로하고 하나의 트렌드가 됐다. 우리나라도 금융위원회가 2021년 2월 18일 네이버페이의 소액 후불결제를 혁신 금융 서비스로 지정해 4월 중 처음으로 후불결제를 선보인다. 네이버를 시작으로 다양한 전자상거래 업체가 BNPL서비스에 뛰어들며 BNPL 시대가 열릴 것이다. 핀테크를 통한 기술의 혁신, 규제 완화가 거대한 금융 산업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소비자와 금융기관에 어떤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지 기대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