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효 중인 오렌지 와인에서 포도 껍질을 보여주는 내추럴 와인 생산자. 사진 자로
발효 중인 오렌지 와인에서 포도 껍질을 보여주는 내추럴 와인 생산자. 사진 자로

요새 내추럴 와인이 인기다. 와인은 잘 몰라도 이왕 마실 거면 내추럴 와인을 마시겠다는 사람도 많다. 아무래도 건강에 더 좋지 않겠냐는 의견이다. 하지만 막상 내추럴 와인을 접하면 색이 뿌옇거나 시큼한 맛이 나서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내추럴 와인이 뭘까? 일반 와인과는 무엇이 다른 걸까?

내추럴 와인은 유기농 포도에 아무것도 더하지도 빼지도 않고 만든 와인이다. 최근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긴 하지만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8000년이라는 긴 와인의 역사에서 지난 100년간을 제외하고 인류는 줄곧 내추럴 와인을 마셔 왔다. 인공적으로 뭔가를 더하거나 빼서 와인을 만들 만큼 과학 기술이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1857년 파스퇴르가 효모를 발견하기 전까지 인간은 와인이 발효되는 원리조차 알지 못했다. 그렇다면 옛날엔 어떻게 와인을 만들어 먹었던 걸까?

효모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포도밭에도 있고 양조장에도 있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효모는 포도 껍질에도 붙고 포도즙에도 내려앉는다. 그래서 포도를 으깨서 즙으로 만든 뒤 얼마간 기다리면 자연스레 발효가 시작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이렇게 야생 효모를 이용해 와인을 만들었고, 지금 내추럴 와인도 바로 이 방식으로 만들고 있다.

그런데 자연에는 너무나 다양한 효모가 있다는 점이 문제다. 어떤 것은 발효를 돕고 향을 풍부하게 하지만, 발효를 늦추거나 중단시키고 불쾌한 냄새가 나게 만드는 것도 있다. 과거의 와인이 지금처럼 깔끔한 맛을 내지 못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1950년대에 들어서며 와인은 일대 혁명을 맞이했다. 발효에 도움 되는 효모만 골라 인공적으로 증식시킨 배양 효모가 등장한 것이다. 안정된 발효와 일관된 맛을 보장하기 때문에 일반 와인은 대부분 배양 효모로 발효한다. 하지만 내추럴 와인 생산자들은 배양 효모를 거부한다. 원하는 효모만 골라 와인을 만들어서는 진정한 테루아(terroir·포도를 길러낸 환경)의 맛을 담을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과학의 발달은 와인 맛의 조절도 가능케 했다. 포도가 충분히 익지 않으면 당을 추가하고 신맛이 약하면 산을 추가해 맛의 균형을 맞출 수 있게 됐다. 와인의 알코올 도수가 너무 높으면 알코올을 빼내고, 신맛이 너무 강하면 알칼리를 추가해 산도를 낮추기도 한다. 이 모든 인위적인 조정을 내추럴 와인은 금지한다.

같은 맥락에서 내추럴 와인은 정제와 여과도 거치지 않는다. 갓 만든 와인에는 과육, 포도 껍질, 효모 등 찌꺼기가 섞여 있다. 일반 와인은 젤라틴이나 계란 흰자 같은 청징제를 이용해 입자를 흡착시킨 뒤 필터링을 거쳐 색을 맑게 만들지만, 내추럴 와인은 입자를 가라앉히고 위에 뜬 맑은 부분만 병입한다. 그럼에도 색이 여전히 탁할 때가 많고 병 아래에 찌꺼기가 쌓인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보존제 첨가도 내추럴 와인과 일반 와인이 첨예하게 대립하는 부분이다. 와인의 산화를 막기 위한 보존제로는 아황산염이 쓰이는데, 이 물질은 와인이 발효할 때 자연적으로 생산되므로 내추럴 와인에도 10㎎/L 이하 극소량이 들어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와인의 변질을 막기 어려워 내추럴 와인도 35㎎/L까지는 아황산염 첨가를 허용하는 추세다. 일반 와인의 경우 유럽은 최대 210㎎/L, 미국은 350㎎/L까지 허용하고 있다.

사실 아황산염은 과자, 각종 소스, 말린 채소와 과일 등 가공식품의 보존제로도 흔히 쓰이는 물질이다. 건조 과일은 보존제 함량이 특히 높아 허용치가 1~2g/㎏에 이른다. 와인보다 훨씬 높다. 만일 아황산염이 걱정돼서 내추럴 와인을 마시고 말린 살구를 안주로 먹었다면, 완전히 쓸 데 없는 일을 한 셈이 된다.


내추럴 방식으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 펫낫을 따르는 모습. 사진 아베크와인
내추럴 방식으로 만든 스파클링 와인 펫낫을 따르는 모습. 사진 아베크와인

내추럴 와인 제대로 고르기

요즘 내추럴 와인 전문점이 눈에 많이 띈다. 들어가 보면 발랄하고 세련된 레이블에 눈이 즐겁다. 하지만 그곳에 있는 와인이 모두 내추럴 와인일까? 제대로 된 내추럴 와인을 구입하려면 다음 네 가지 정도는 알아두자.

첫째, 냉장 보관된 것을 구입한다. 내추럴 와인은 변질될 위험이 높다. 쉽게 말하면 효모가 살아 있는 생막걸리 같은 술이다. 따라서 유통에 각별히 신경 써야 하며 섭씨 14도 이하의 서늘한 온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구입한 뒤에도 냉장 보관은 필수다.

둘째, 내추럴 와인은 절대 맛이 시금털털하지 않다. 야생 효모로 발효하다 보니 일반 와인에 비해 맛이 약간 시금할 순 있지만, 불쾌할 정도로 시큼하고 텁텁하다면 잘못 만든 와인이거나 상한 와인일 수 있다.

셋째, 유기농 와인과 내추럴 와인은 다르다. 유기농 와인이란 유기농 포도로 만든 것이지 양조까지 내추럴 방식을 따른 것은 아니다. 일반 와인 중에도 유기농 와인은 얼마든지 있다.

넷째, 모든 오렌지 와인이 내추럴 와인은 아니다. 오렌지 와인은 화이트 와인처럼 청포도로 만들지만 껍질을 담근 채 발효해 색이 진하고 레드 와인처럼 맛에서 타닌이 느껴진다. 그래서 앰버(amber) 와인 또는 스킨 콘택트(skin contact) 와인이라고도 부른다. 내추럴 와인 생산자들이 오렌지 와인을 많이 만들긴 하지만, 오렌지 와인은 와인의 종류 중 하나일 뿐 반드시 내추럴 와인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쯤 되면 내추럴 와인이 복잡하고 고르기도 까다로워 슬슬 짜증이 나려 한다. 인증 마크 같은 것이 있어서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행히 최근 프랑스에서는 뱅 메소드 나튀르(Vin Méthode Nature)라는 인증을 새롭게 발표했다. 규정을 지켜 만든 와인에는 인증 로고를 붙일 수 있는데, 아황산염을 넣지 않은 것과 30mg/L 이하로 넣은 것 두 가지가 있어 쉽게 구분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내추럴 와인 인증을 만들지,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인증이 과연 생길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다. 생산자들의 자유와 창의력을 제한한다는 이유로 인증 제도 자체를 반대하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앞으로 내추럴 와인의 품질 관리가 어떤 방향으로 발전할지는 지켜볼 일이다.

마지막으로 모든 일반 와인이 첨가물을 다량 넣어 만든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밝혀두고자 한다. 일반 와인 중에도 첨가물 없이 유기농 포도를 야생 효모로 발효해 정제와 여과를 거치지 않고 최소한의 아황산염만 넣어 만든 것이 많다. 그리고 이렇게 건강한 와인을 만드는 움직임은 갈수록 확산하는 추세다. 내추럴 와인을 선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건강 때문이다. 그러나 내추럴 와인도 술이다. 건강을 생각한다면 적당한 음주가 정답이지 와인의 종류가 답일 순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