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미술가 이중섭(1916~56)의 작품 ‘황소’와 박수근(1914~65)의 작품 ‘두 아이와 엄마’가 NFT(Non Fungible Token·대체불가토큰) 작품으로 출시된다고 발표돼 관심을 끌었다. 디지털 아트 NFT를 서비스하는 A사는 실물을 스캔해 컴퓨터 파일로 만들고 다시 NFT로 제작하는 작업을 거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권리자 측에서 저작권 동의를 한 적 없다고 반발했다. 진짜 원본을 스캔할 것인지 아닌지도 논란이 됐다. 결국 6월 해당 경매는 없던 일이 됐다. NFT 기술에 대한 높은 관심과 이를 둘러싼 저작권 침해 논란의 한 사례다.
자본주의 시장 체제에서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는 원칙적으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 재화가 주는 효용이 거래 가격에 반영되지만, 수요가 공급보다 많으면 가격이 오르고 반대의 경우에는 가격이 내린다. 이러한 점에서 동일한 재화를 무한대로 찍어 낼 수 있는, 즉 한계비용(재화나 서비스 한 단위를 추가로 생산할 때 필요한 총비용의 증가분)이 영(zero)인 디지털 재화의 세계에서는 기존 방식대로 재화의 가치를 산정하기 어렵다. 이론적으로 수요가 아무리 많아지더라도 공급이 무한정으로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세계(real world)에서 한계비용의 법칙이 온라인에 적용될 수 있도록 한 실마리를 제공한 것은 법률이나 제도의 영역이 아닌 기술의 영역이다. NFT 기술도 그중 하나다.
NFT를 알려면 그 시작점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요약하자면, 온라인상에서 탈중앙화된 방식이면서 동시에 데이터 관리 신뢰성을 높이기 위한 기술이 연구됐는데,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기술을 통틀어 분산원장기술(DLT·Distributed Ledger Technology)이라고 한다. 분산원장기술의 요지는 데이터를 서로 나눠 공유함으로써 거래 기록, 즉 원장(ledger)을 거래 참여자 중 누군가가 위조하더라도 그 위조 여부를 쉽게 확인하고 증명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분산원장을 구현하기 위해 여러 방식으로 연구가 이뤄졌다. 그중에서 전체 데이터를 쪼갠 블록들을 선형으로 결합하고 새로운 거래 기록이 생성될 경우 그 블록을 이전의 블록에 체인처럼 연결한 후 그 사본을 각 참여자가 나눠 저장하는 방식으로 위조 방지 및 원본 증명을 구현한 것이 블록체인(block-chain) 기술이다. 블록체인 기술의 특징은 중앙 서버 없이도 거래 이력이 투명하게 관리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몇 가지 기술을 덧붙여 각 데이터가 유일한 것임을 증명할 방법으로 고안된 것이 NFT 기술이다.
NFT 기술이 적용되면, 누구든지 그 NFT가 부착된 데이터가 원본(original)임을 입증할 수 있다. 누군가 동일한 데이터를 복제했더라도 그 데이터가 원본이 아니라 사본에 불과하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고, 원본과 구분된다는 점도 확인할 수 있다. NFT는 각 토큰(token)에 다른 가치가 부여되기 때문에 그 자체로는 화폐와 같은 교환 수단으로서 가치를 가질 수 없다. 따라서 교환가치로서 의미를 가지는 암호화폐(crypto currency)와는 그 성격이 다르다.
암호화폐처럼 빠른 성장 기대
NFT는 기술적으로 지속해서 발전하며 여러 가지 응용이 이뤄지고 있는 초기 단계에 있다. 다만 암호화폐 관련 시장이 급격하게 커진 만큼이나 NFT 시장도 빠르게 확대될 전망이다. 실제 지난 한 해 동안 NFT 결제액이 1억달러(약 1192억원)가량이었던 것에 비해 올해 들어 8월까지 거래액은 이미 10억달러(약 1조1920억원)를 넘겼다고 한다.
세계 최대 경매 업체인 크리스티에서 올해 3월 디지털 아티스트인 마이크 윈켈만(Mike Winkelmann)의 ‘Everydays: The first 5000 Days’가 6930만달러(약 826억원)에 거래되면서 화제를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NFT는 누군가의 창작물 또는 이와 관련된 개인의 노동의 결과물인 경우가 많다. NFT의 대체 불가능성이 가장 잘 투영될 수 있는 분야가 이처럼 하나하나가 독창적인 가치를 지니는 저작물의 거래와 관련되는 것은 어쩌면 태생적으로 예견된 것이기도 하다.
NFT 시장은 이미 다양하게 전개되고 있다. 그중 NFT 기술을 이용해 미술 저작물의 거래를 중개하는 시장이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오픈 시(Open Sea)’ ‘슈퍼레어(SuperRare)’와 같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NFT 오픈마켓은 기본적으로 이러한 유형의 디지털 작품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디지털 파일에 NFT 기술을 더할 경우 작가는 자신이 판매하는 디지털 작품, 즉 디지털 파일의 원본, 또는 원본이라고 부르는 것을 1만 개로 판매를 제한할 수 있고, 심지어는 단 1개의 작품만을 판매하는 것으로 제한할 수도 있다.
물론, 별도의 암호 등이 걸려있지 않은 디지털 파일의 경우, 이를 NFT 기술이 첨가되지 않은 상태에서 복제해 즐길 수 있고, 그 향유하는 내용은 NFT 기술이 부착된 원본과 다를 바가 없다. 그렇다고 해서 NFT 기술이 무의미하거나 한때의 ‘거품’으로 폄하될 것은 아니다. 디지털 파일임에도 사본이 아닌 원본으로서의 가치가 의미 있는 경우 매우 유용하게 적용될 수 있는 기술이기 때문이다.
‘민팅’을 둘러싼 저작권법 논란
작품을 NFT화하는 것을 뜻하는 ‘민팅(minting)’은 저작권법 측면에서 보면 오프라인에서 존재하는 작품을 NFT화된 디지털 파일로 제작하거나 또는 온라인으로 존재하는 디지털 파일에 NFT로서의 성격을 부여하는 프로세스다. 이 과정은 반드시 원저작권자에 의해 이뤄져야 하거나 적어도 원저작권자의 이용 허락에 따라서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NFT화하는 행위 자체가 저작권법상 침해 행위가 될 수 있다. 실제 한국 저작권법상 저작권 침해 행위가 발생하는 경우 민사상 책임은 물론 형사상 책임까지도 질 수 있다. 나아가 NFT 역시 암호화폐와 동일한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NFT 자체가 향후 가상자산으로서 금융 관련 법령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는 점 역시 사전에 고려해야 한다.
또한 오프라인에 원본이 존재하는 경우, NFT 기술을 통해 원본을 증명하는 것이 그 원본 자체를 증명하는 것이 아니라 오프라인으로 존재하는 원본 증명서의 진실성을 증명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결국 오프라인의 원본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원본임을 NFT를 통해서 증명한 자가 원본의 진정한 권리자인지 아닌지는 NFT 기술이 보장해 주지 않는다. 이런 경우에는 NFT는 그 자체가 자산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디지털 원본 증명서 내지는 원본의 권리를 표창하는 증서가 될 것이다. 또한 누구나 기술적으로는 NFT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그로 인해 오히려 원본의 가치가 하락하는 부작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서두에서 말한 ‘황소’ 등의 사례처럼 NFT 작품 자체가 디지털 파일에 대한 소유권 인증 및 위변조 방지는 가능하지만, 오프라인 작품에 대한 원본성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고 라이선스를 부여하더라도 그 라이선스가 정당한 권리자로부터 확보된 것인지 여부도 증명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도 주의해야 한다. 최근 떠오르고 있는 개념인 메타버스(metaverse·현실과 가상이 혼합된 세계)의 세상에서도 NFT 기술은 주목받고 있다. 완벽한 복제가 가능한 온라인 세상에 NFT 기술은 희소성이라는 경제학의 원칙이 적용될 기회를 마련해 줬다.
또한 원본의 가치를 유지할 방법을 제공함으로써 창작자의 특별한 기여가 가미된 저작권 산업에 새로운 기회가 부여됐다고도 볼 수 있다. NFT 기술이 우리 일상을 얼마나 바꿔 놓을 것인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나라의 저작권 산업 역시 이러한 새로운 기회를 잘 활용해 한 단계 도약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