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지 비투비 대표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공공정책학 석사, 전 플레시먼힐러드 코리아 공공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전 내셔널지오그래피 근무 / 사진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김윤지 비투비 대표
미국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공공정책학 석사, 전 플레시먼힐러드 코리아 공공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전 내셔널지오그래피 근무 / 사진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행동경제학자 댄 히스의 ‘업스트림’은 하류로 떠내려오는 아이들에서 시작한다. 허우적대는 아이들을 구조하던 중 갑자기 한 사람이 자리를 떠난다. “어디로 가느냐?”라는 질문에 그가 손을 들어 가리킨 곳은 강의 시작 지점이었다. ‘누가 왜 아이를 흘려보내는지’ 상류에 가서 해결하겠다는 것. 이 단순한 우화에 대한 충격은 컸다. 문제를 보는 시야와 해법을 단번에 확장시켰다고나 할까.

그리고 얼마 뒤 나는 우리 사회 혁신가들을 지원하는 카카오 펠로우십 선정위원회에 참여해서, 이 우화의 실제 모델을 발견하게 되었다. 말 그대로 떠내려오는 아이를 구조하기 위해 강의 상류로 달려간 사람. ‘버려진 아기’로 명명되던 ‘베이비박스’를  ‘맡겨둔 아기’로 새롭게 인식한 ‘베이비박스 프로젝트’의 창립자, 비영리 스타트업 비투비의 김윤지 대표가 그 주인공이다.

“아기가 잉태되고 베이비박스로 와서 보육원으로 보내지는 과정을 ‘강’이라고 봤다. 그런데 베이비박스에 아기를 버린 부모들의 30%가 다시 찾으러 온다. 그들은 아기를 버리러 온 게 아니라 맡기러 온 거였다. 어린 부모들은 대부분 청년 빈곤층이었고 주변에 도움을 구하다 최후에 베이비박스를 선택한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만나러 강의 상류로 갔다. 아기를 구하려면 부모를 구해야 했다. 이 가슴 아픈 대물림을 끊기 위해. 물의 흐름을 바꾸기 위해.”

연민이 배인 반듯한 어조로 김윤지가 말했다. 그는 2009년부터 5년간 베이비박스로 온 아기들과 부모의 상담일지 512건을 분석해서 데이터를 추출했다. 일명 ‘베이비박스 프로젝트’를 통해 부모들은 대개 10~20대 빈곤 청년이며, 원가정 해체와 주거 불안, 장애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임신과 출산 후 한쪽 파트너가 도망가버린 경우도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30%의 부모가 아기를 데려간다는 사실에서 긍정의 실마리를 찾았다. 김윤지는 하버드대 케네디스쿨 공공정책 대학원에서 석사를 마쳤으며, 내셔널지오그래피, 오바마 미국 대통령 선거 캠프를 거쳐 플레시먼힐러드 코리아에서 공공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로 일했다.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 운영하는 베이비박스. 사진 비투비
주사랑공동체교회에서 운영하는 베이비박스. 사진 비투비

강의 상류로 가서 당신이 본 것을 이야기해달라. 누가 아기를 버리나.
“처음엔 나도 ‘베이비박스’로 온 아기를 돌보는 봉사 활동을 2년 정도 했다. 그러나 문득 순수하게 궁금해졌다. 이 아기들의 부모는 어떤 사람일까? 사회에서는 ‘성적 문란’ ‘혼외 임신’으로 낙인만 찍는데, 다른 사정이 있지 않을까? 그래서 상담일지를 분석했다. 부모들은 대개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이었다. 가정 폭력, 빈곤, 이혼이 겹쳐진 위기 가정의 아이들이 주거 부정으로 헤매다 길거리에서 임신을 한다. 성 지식이 없어 임신 8개월이 될 때까지 모르는 경우도 있었다. 신기한 게 제주도에서 8명이 왔다. 태어난 아기를 버리지 않고 16시간 힘들게 배를 타고 베이비박스가 있는 인천까지 온 거다. 그 어린 부모들은 베이비박스를 아기를 버리는 ‘쓰레기통’이 아니라 ‘임시보호소’로 생각했다. 안전하다고 본 거다. 거기서 밝은 점을 봤다. 30%의 부모가 다시 아기를 키우겠다고 찾아갔다는 데서 희망을 본 거다. 이 수치를 높일 수는 없을까?”

임신 사실을 아는 순간, 외면당하고 고립된 청년 부모들은 인터넷 검색부터 한다. 그러나 그들을 도울 정보는 여기저기 흩어져 있고, 이용 방법도 어렵다. 김윤지는 온라인 바다의 상류에 구명 튜브를 띄웠다. 위기 임신이 됐을 때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고 어디로 가야 할지, 모든 정보와 자원을 하나로 모은 웹 플랫폼 ‘품(puum)’을 만든 것.

나는 품의 웹페이지를 열어 보고 가슴이 뭉클했다. ‘네가 뭘 필요로 할지 몰라서 아기를 키우는 데 필요한 건 다 준비해봤어’라는 따스한 카피로 문을 연 이곳에는 기저귀와 집, 아기와 머물 수 있는 시설, 수술비 지원 병원, 일거리와 먹거리 지원, 민간 단체, 동료 커뮤니티까지 일목요연하게 분류돼 있었다.  ‘사회라는 엄마의 품’에서 걱정 말고 같이 한번 키워보자고.

2020년 5월, 서비스 오픈 첫 3주 만에 2000명이 넘는 사용자가 접속했고 포스팅의 페이지 뷰는 8000건이 넘었다. 인터넷 모세 혈관을 따라 당장 도움이 절실한 1만2000명의 청년 부모들에게 링거처럼 맞춤 정보와 자원이 착착 흘러갔다.

데이터와 정보 검색 엔진 ‘품’으로 환경을 설계한 후 김윤지는 더 나은 솔루션을 위해 현장의 어린 부모들을 한 명 한 명 찾아나섰다. 한 사람의 미혼모를 구할 수 있다면 전부를 구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김윤지 비투비 대표. 사진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김윤지 비투비 대표. 사진 박상훈 조선일보 기자

데이터 밖으로 나와 굳이 한 명 한 명을 만나는 이유는 뭔가.
“그 한 명 한 명이 계속 영감을 준다. 가령 성민이는 고기잡이 홀아버지 밑에 자랐는데, 미혼모로 출산했다. 아버지는 딸에게 입양보낼 것을 강권했는데, 이 친구가 면담 후에 울면서 혼자 키워보겠다는 거다. 그 며칠 후 전화가 와서는 물었다. ‘일하고 싶은데 일자리가 있냐?’고. 미혼모, 미혼부들은 대개 청년 빈곤층이다. 결국 자립 지원이 함께 가야 하는 거다. 그때부터 롯데 유통 등 기업과 업무 협약을 맺고 일자리 지원에 나섰다.”

주로 어떤 사람을 돕나.
“더 어려운 사람보다 ‘지금 하려고 하는 사람’ 위주로 간다. 그 사람이 긍정의 끈이 된다. 지원받고 성공한 사람이 단톡방에 ‘이렇게 했더니 좋더라’라는 경험담을 공유하면, 다른 친구들이 그 밝은 점 주위로 몰려든다. 그 친구가 로프가 돼서 딸려온다. 품을 통해서 커뮤니티가 얼마나 중요한지, 더불어 커뮤니케이션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았다.”

일각에서는 아기를 학대하는 어린 부모들이 있고, 이런 사건들이 사회적 공분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짐승만도 못하다고 욕을 먹지. 그런데 그런 사건을 들여다보면 청년 부모들이 경계성 인격장애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어릴 때 가정 폭력 겪고 엄마가 동생만 데리고 떠난 후 자기도 집을 나와 떠돌이 생활을 하다 덜컥 아기를 갖는 거다. 언론에 보이는 모습 이전에 각자의 우주가 있다. 그런 경험이 다 학대로 이어지진 않지만, 뿌리를 따라가면 결국 대물림이다.”

임신 소식을 알리면 대개 친부모와 학교에서 연락을 끊고 도움을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더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가 아기를 키우고, 누가 포기하나.
“처음에는 경제적 여유가 있으면 키울 거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단 한 번이라도 누군가에 의해, 설사 할아버지 손에서라도 길러진 경험이 있으면 자기 아기를 잘 포기 안 한다. 반대로 가정이라는 DNA가 없으면 포기한다.”

당신은 데이터를 정말 휴머니즘적으로 쓰는 것 같다. 데이터와 웹 디자인을 설계할 때, 어떤 부분에 신경을 쓰고 있나.
“사용자경험(UX) 디자인을 할 때 페르소나(타인에게 파악되는 자아) 실험이라는 걸 한다. 유저 전이 매핑인데, 내가 만난 미성년자, 청소년 부모를 유형별로 감정 이입해보는 거다. 그런 상상력을 통해 주거, 경제, 기초생활 수급, 의료, 교육…, 생애 주기별로 자원을 어떻게 매핑할지 시뮬레이션한다. 그러다 보면 빈구석이 보인다. 집이 생겼어도 세간이 없는 경우가 많다. 민간 기업에서 지원해서 즉석밥, 참치캔이 들어가도 둘 곳이 없어 빨간 대야에 쌓아두기도 한다. 18세 청년 부모에게 기저귀, 분유만 너무 몰리는 것도 안 된다. 어느 시기에 어디에 가면 뭘 받을 수 있는지 그림이 나와야 하는데, 그건 당겨봐야 보인다.”

아이를 직접 키우기로 결정해도 경제적 자립까지는 먼 길이다.
“맞다. 그래서 베이비박스라는 부표가 소중하다. 그걸 중심으로 청년 빈곤, 한부모 가정, 장애인 가정까지 한 사회의 포용성 정도가 가늠이 된다.”

기나긴 과정이라 성공과 실패의 이분법으로 보지 않는다고 했다.

실패를 정의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
“정성껏 도와줬더니 아기 둘 낳고 나가면 실패일까? 아니다. 그것도 한 뼘 진도를 나간 거다. 아기를 1년간 키운 경험이 쌓인 거잖나. 평생 기초생활수급에 의지하다, 일하고 싶대서 연결해주면 잠수도 탄다. 이틀 만에 우울증으로 그만둔 40대 미혼모도 있었다. 출근하면 당장 자원이 끊기니까. 그런 사례도 실패가 아니라 ‘자원을 세밀하게 연결하기 위해 수사망을 좁히는 과정’일 뿐이다.”

어떻게 그렇게 낙관적일 수 있나.
“내가 발견한 건 오해였다. 복지와 수급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오해, 일을 하면 지원이 끊겨 더 힘들어진다는 오해다. 취업하면 더 많은 수당과 돌봄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걸 사례로 보여주면 된다. 다행히 우리는 정보를 잘 다룬다. 정부와 민간의 다양한 자원을 선명하고 쉬운 언어로 전달할 수 있다.”

100억원이 있다면 무얼 하겠나.
“나는 진짜 100억원이 필요하다(웃음). 한부모 가정에서 취업할 때, 첫 3개월 돌봄 지원이 절실하다. 정서 지원, 주거 지원, 느슨한 커뮤니티 공동체…. 꼭 필요한데 비어 있는 자원이 많다.”

그 열정의 근원은 아기에 대한 사랑인가.
“글쎄. 본질적으로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머리부터 발끝까지 쓰임이 되고 싶다. 그 일이 아기를 키우는 부모에게 사회적 자원이 잘 흐르도록 돕는 거다. 그렇게 거창하지 않다. 레스토랑 셰프가 맛난 음식을 대접하는 것처럼, 뮤지션이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처럼. 모든 일하는 사람의 마음과 다를 바 없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좋은 일 하시네요’다. ‘왜 하느냐?’는 질문에는 이미 편견이 깔려 있다. 이거 하나는 정직하게 말할 수 있다. 상류로 거슬러 가서 어린 부모들을 만났을 때, 나는 단 한 번도 그들을 불쌍하게 여겨본 적이 없다. 그 상황이었다면 나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다. 나는 그분들을 진심으로 용감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