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25일 서울 성수동 ‘에디토리’ 매장에서 열린 영국 탄노이 스피커 전시회 전경. 사진 김문관 조선비즈 기자
지난해 10월 25일 서울 성수동 ‘에디토리’ 매장에서 열린 영국 탄노이 스피커 전시회 전경. 사진 김문관 조선비즈 기자

냄새를 잘 맡는 사람들이 있다. 특히 돈 냄새를. 지인에게 들은 그의 친한 형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 형은 회사를 관둔 후 의류 공장을 차렸다. 맨땅에 헤딩한 건 아니라서 그래도 벌이가 나쁘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러던 중, 재작년 말 중국에서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터졌다. 20대 때부터 주식 등 경제 흐름에 밝았던 그는 코로나19의 확산세를 유심히 살폈다. 얼마 후, 국내에 첫 확진자가 나왔다. 일일 확진자 수가 두 자리를 찍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두려움이 서서히 한국 사회를 덮치기 시작할 무렵, 그는 일생일대 결단을 내렸다. 공장 시스템을 모두 마스크 생산에 돌린 것이다. 그것도 제2차 세계대전 초기, 독일군이 마지노선을 돌파하는 듯한 전격전으로. 그 이후의 결과는 예상대로다. 몇 달이 지나지 않아 그는 말 그대로 돈방석에 올랐다. 위기는 곧 기회이며, 그림자가 있으면 빛이 있다는 불변의 진리를 다시 한번 깨달았다.

2년이 다 돼가는 코로나19 시대. 음악계는 말 그대로 위축되고 쪼그라들었다. 하지만 희망의 빛이 호롱불만도 못해 보이는데도 조용히 한여름의 볕이 내려쬔 곳도 있다. 바로 오디오 업계다. 작년 가을 무렵, 한 고급 오디오 취급 업체 사장을 만났다. “어려우시죠?”라는 질문에 그는 미안한 듯 대답했다. “사실 남들한테 미안해서 말은 못 하는데 이쪽 시장은 엄청 호황이에요.”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시행되면서 일상적으로 행해지던 많은 활동이 중단됐다. 자영업자들이야 고난의 행군을 겪었지만, 전 세계적으로 금융 자산의 가치는 폭등했다. 부동산, 주식, 가상화폐⋯, 가리지 않고 그랬다. 부동산으로 얼마를 벌었다더라, 비트코인으로 돈이 복사되는 체험을 했다더라⋯. 이런 이야기들이 쉽게 들려왔다. 이렇게 갑자기 많은 돈을 벌면, 소비의 폭도 커진다. 그런데, 거리 두기로 인해 소비할 수 있는 대상이 대폭 줄어들었다. 룸살롱 같은 고급 유흥업소들은 문을 닫았고, 1++ 등급 한우에 소주 한 잔을 하는 게 전부였다. 호화로운 해외여행은 돈이 있어도 불가능해졌다. 번 돈이 많아진 사람, 원래 많이 벌던 사람들 모두 마찬가지. 그 돈의 일부가 고급 오디오 시장으로 흘러들었다.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니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오디오 시장이란 게 그리 크지 않고,  정확한 통계를 알 수는 없지만 체감은 할 수 있었다. 중고가 오디오를 주로 들여놓던 편집숍이 있다. 올봄 언젠가 그곳을 방문했다. 더 이상 ‘중’고가 숍이 아니었다. 그냥 고가 오디오가 즐비했다. 몇천만원대 세트를 찾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는 것이다. 최근 강남 못지않은 고급 주거지로 떠오르는 이 지역에 이사 오는 사람들이 몇천만원짜리 세트를 다이소에서 물건 사듯 구입한단다. 조금 비현실적인 기분이 들었다.

봄이 지나고 여름이 됐다. 오랫동안 살던 집을 떠나 좀 더 넓은 곳으로 이사를 했다. 공간이 바뀌고 늘어나면 욕심이 생기는 법. 오랫동안 사용했던 오디오 시스템에 눈이 돌아갔다. 10여 년 전, “음악 평론가라면 좋은 오디오 하나쯤 있어야죠”라는 말에 ‘뽐뿌’가 끓어올라 몇 년에 걸쳐 하나하나 세팅을 했다. 있는 돈이 없으니 노력과 시간으로 버텼다. 중고 오디오 거래 사이트에 특급 형사처럼 잠복했다. 괜찮아 보이는 물건이 있으면 누구보다 빠르게 낚아챘다. 맘에 안 들면 되팔고 다른 물건을 또 사냥했다. 시시포스가 바위를 굴리듯 사고팔고 바꾸고 또 바꿨다. 나를 그 세계로 인도한 이는 웃으며 말했다. “예상대로 환자가 되셨네” 취미의 세계에 누군가를 끌어들이는 사람들이 그렇듯, 그 의미는 비웃음이 아닌 흐뭇함과 연대감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조촐하나마 (물론 환자가 아닌 정상인에게는 큰 비용으로 보일) 시스템을 갖췄다. 오랜 시간 안분지족의 마음으로 살았다. 억대 시스템을 갖춘 이의 집에 놀러 가기라도 하면 마음속 심연 어딘가에서 뭔가가 끓어올랐다. 그럴 때는 통장 잔고를 떠올렸다. 액체수소급 냉매였다. 이제 냉매를 처분할 때가 됐다. 돈은 없지만 여분의 공간이 생겼으니.

오랜만에 돌아온 강호는 참으로 많은 것이 변해있었다. 극소수의 영역이었던 턴테이블이 LP 붐과 함께 다시 활발히 거래되고 있었다. 스마트폰 시대가 되면서 무선 전송에 대한 수요도 커지고 블루투스로 만족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와이파이 전송 기기도 쏟아져 나왔다. 나 역시 CD보다는 블루투스나 스마트 기기 직결을 통해서 주로 음악을 듣고 있었으니 당연한 일. 하지만 아직 생소한 세계. 공부해야 할 게 많다. 그렇다면 어느 정도 지식이 있고 검증된 영역부터 손대는 게 좋다. 앰프를 바꾸기로 했다. 문제는 거기서부터였다. 과거, 내가 강호를 누비던 시절 쉽게 구할 수 있던 매물들이 씨가 말랐다. 거래 이력들을 보니 제법 이름 있는, 적당한 가격의 중고 매물은 나오는 족족, 마치 노른자위 아파트 청약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꾸준히 강호에 머물고 있던, 중고 오디오 시장 애널리스트급 환자에게 물어봤다. “코로나19 이후에 중고가 씨가 말랐어. 전통의 인기 매물은 당연하고, 그리 유명하지 않은 회사 것도 괜찮다는 평 있으면 바로 나가.” “이 바닥에도 큰손들이 많이 들어온 건가?” “아니, 사람들이 돈 쓸 곳이 없으니까 평범한 월급쟁이들도 많이 들어온 것 같아. 주식 시장으로 치면 개미들이 떼 지어서 들어온 거지.”

오디오는 자동차 못지않게 감가상각이 심한 세계다. 포장만 뜯어도 ‘수업료’라는 이름으로 가격이 쭉쭉 빠진다. 재테크와는 거리가 멀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시장이 활황이라니. 지난봄 고급 오디오 숍에서 다이소 고객처럼 쇼핑한다는 이들을 보며 느꼈던 약간의 비현실감이, 좀 더 생생하게 다가왔다. 해외 뉴스와 국내 뉴스의 체감 차이 정도로. 결국 나는 중고 거래를 포기하고 오디오 숍에서 원하는 기기를 살 수밖에 없었다.

비록 이 시장이 뜨거워지면서 원하는 매물을 원하는 가격에 구하기가 힘들어졌지만 한 편으로는 좋기도 하다. 그만큼 많은 사람이 코로나19 이전보다 더 좋은 소리로 자기가 좋아하는 음악을 듣고 있다는 얘기일 테니까. 나는 생각해왔다. 세상에 ‘막귀’란 없다고. 단지 좋은 소리를 경험할 기회가 그만큼 없었을 뿐이라고. 오디오에 처음 입문했을 때, 밖에서 술을 마시다가도 집으로 달려가곤 했다. 소리가 주는 황홀경이 자꾸 귀에 맴돌아서다. 이유야 어쨌든 이쪽에 입문한 이들, 즉 환자들이 늘어났다. 동병상련(同病相憐), 아니 ‘동병상축(同病相祝)’을 전한다.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일일공일팔 컨텐츠본부장, 한국 대중음악상 선정위원, MBC ‘나는 가수다’, EBS ‘스페이스 공감’기획 및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