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세븐이 운영하는 편의점 세븐일레븐은 11월 29일부터 자율주행 배달 로봇 ‘뉴비’를 활용한 근거리 배달 서비스를 도입하고 서울 서초동 소재 매장에서 시범 운영에 들어갔다. 편의점 업계에서 그동안 ‘마곡 LG사이언스파크’나 ‘역삼동 GS타워’ 등 특정 건물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배달 로봇이 도입된 적은 있지만, 야외에서 자율주행 방식으로 움직이는 모델을 도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뉴비는 인공지능(AI) 모빌리티 스타트업 뉴빌리티가 개발한 자율주행 로봇이다. 국내 자율주행 로봇 기업들이 콘셉트 구상 혹은 초기 연구 단계에 머물고 있는 상황에서, 뉴빌리티는 상용화에 가장 가까운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븐일레븐은 시범 운영을 일주일여 앞둔 11월 24일 미디어 대상 뉴비 시연회를 진행했다. 뉴비는 바퀴 4개의 차륜형 로봇으로, 전면 폭 56㎝, 측면 폭 67㎝, 높이 70㎝의 박스 형태 디자인을 하고 있었다. 차체 무게는 약 50㎏으로, 최대 25㎏까지 적재가 가능하다고 했다. 최고 속력은 시속 7.2㎞로, 사람으로 치면 빨리 걷는 속도와 비슷하다. 뉴빌리티 관계자는 “최고 속력을 더 올릴 수 있지만, 안전 문제로 제한을 걸어둔 상태”라고 했다.
뉴비의 구동력은 바퀴마다 하나씩 연결된 모터에서 나온다. 별도의 조향장치는 없으며, 바퀴에 부착된 모터의 회전수(RPM)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좌우 회전한다. 이 때문에 회전할 때는 속도가 느려지고 다소 버벅거리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카메라 기반 자율주행 시스템을 탑재한 뉴비는 스스로 길을 찾고 돌발 상황에 대처했다. 이동 경로상에 갑자기 사람이 나타나는 돌발 상황이 벌어지자, 일단 멈춘 후 장애물이 없는 경로를 찾아 우회해 이동했다. 인도 턱 등 도로상 장애물은 바퀴 지름(20㎝)의 80%인 16㎝까지 오를 수 있도록 설계됐다.
편의점 매장에서 목적지인 서초센트럴아이파크 단지 내 어린이집까지 100여m를 이동하는 데 3분 남짓 소요됐다. 돌발 상황 연출 등을 제외하면 주문품 탑재부터 도착까지 2분 정도 걸렸을 것으로 추산된다. 뉴빌리티 측은 “인천 송도에서는 500m 권역에 대한 자율주행 로봇 배송을 하고 있는데, 건당 15분가량 소요된다”고 말했다.
자율주행 로봇은 아직 혼자서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한다. 기술 한계가 아니라, 규제 때문이라고 뉴빌리티 측은 강조했다. 회사 관계자는 “신호등 신호를 스스로 인식하고 초록 불일 때 건너는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면서도 “현행법상 자율주행 로봇이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무조건 인간 오퍼레이터(작동자)가 개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규제 때문에 뉴비는 현재 길을 건너지 않는 범위에서만 배달이 가능한 상태다.
이와 관련, 뉴빌리티의 이상민 대표는 자율주행 로봇 상용화를 위한 우선 과제로 규제 해소를 꼽았다. 자율주행 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는 수준으로 개발을 마쳤지만, 법적 체계가 미비해 상용화가 더뎌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도로 위의 물체를 자동차와 보행자로 가르는 이분법적인 기준을 손보지 않으면 관련 산업 발전에 제한 요소가 될 것”이라며 “미국과 영국, 일본은 자율주행 로봇을 ‘개인배달기기(PDD·Personal Delivery Device)’로 정의하고, 사람에 준하는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규제를 완화해 국내 자율주행 로봇 산업의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고 했다.
자율주행 로봇으로 배달을 시키면 구매자는 아파트 건물 밖으로 나와 QR코드를 인증하고 물건을 수령해야 한다. 로봇이 아파트 건물 안에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호출해 문 앞까지 배송할 수 있는 인프라까진 아직 갖춰지지 않았다.
이 대표는 아파트 문 앞 배송 서비스에 대해 “아파트 건설사와 협력해야 하는 과제”라며 “시스템적으로는 엘리베이터 호출 및 문 앞까지 배송할 수 있는 기술도 확보한 상태”라고 했다.
그는 지금까지 확보한 자율주행 기술과 관련해선 “최근 송도에서 갑작스러운 공사로 길이 막혔는데, 뉴비의 AI가 스스로 판단해 대안 경로를 찾고 배달을 완료했다”면서 “관제사의 지시가 아닌 AI가 상황을 인지하고 대안을 찾을 정도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하드웨어 기술에 대해서는 “폭우 상황 시 안정성은 지난여름 장마철에 확인했다”면서 “폭설 상황에 대해선 올겨울 시범 운영을 통해 확인할 예정이다. 아무래도 차륜형 모델이다 보니 제동 문제 등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했다.
경제성은 있을까. 이에 대해 이 대표는 “뉴비의 생산 단가는 대당 500만원 수준”이라며 “시범 운영 중인 모델은 프로토타입으로 제작 비용이 더 들었지만, 양산형 모델을 생산하면 비용이 줄어들 것”으로 기대했다.
현재 뉴빌리티는 자영업자가 월 50만원 정도의 비용을 내고 사용하는 렌털형 모델이나 배달 건당 2000원가량 수수료를 받는 사업 모델을 구상 중이다.
이 대표는 “현재 배달 서비스 비용은 건당 최소 5000원으로, 이 중 일부는 고객이, 나머지는 업주가 부담하는 형태”라며 “뉴비의 1일 기대 배달 건수는 15건인데, 이를 비용으로 환산하면 일 7만5000원, 한 달이면 210만원이 넘는다. 이 비용을 50만원으로 줄여주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부적으로는 뉴비에 버스처럼 광고를 붙여 수익을 내 자영업자의 임대료 부담을 줄여주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덧붙였다.
세븐일레븐은 3개월간 뉴비 집중 테스트 기간을 갖고, 서비스 운영 반경을 확대할 계획이다. 뉴비 운영 대수와 운영 매장도 늘려 배달 주문건에 즉각 대응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아울러 세븐일레븐은 자율주행 배달 로봇 외에도 드론 물류 배송 솔루션 스타트업 파블로항공과 협업해 드론 배송 서비스도 시범 운영할 예정이다.
업계에서는 무인 배달 시스템 개발 과정에서 자율주행 로봇과 드론의 역할이 구분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자율주행 로봇은 도심지에서 단거리 배달을 여러 번 나갈 수 있는 반면, 드론은 시외 지역에서 일회성 장거리 배달을 하기 적합하기 때문에 역할이 나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드론 배달은 도서 산간 지역에서 용이하지만, 배터리 효율이 문제”라면서 “라스트마일(배달 마지막 단계) 물류 수요가 많은 도심지에서는 안전성 등 리스크를 고려했을 때 자율주행 로봇이 안전성과 사업성이 낫다고 본다”고 말했다.
세븐일레븐 DT혁신팀의 최병용 선임책임은 “근거리 배달은 편의점의 대표 서비스로 서서히 자리 잡고 있으며 향후 그 수요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 “차세대 배달 서비스 모델을 성공적으로 구축해 가맹점주의 운명 편의성을 증대하고, 수익성도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