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는 전문용어로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라고 한다. 심리학자 루이스 코졸리노에 의하면 왕따는 진화사적으로 역사가 오래된 원시적 충동의 일종이다. 사진 셔터스톡
‘왕따’는 전문용어로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라고 한다. 심리학자 루이스 코졸리노에 의하면 왕따는 진화사적으로 역사가 오래된 원시적 충동의 일종이다. 사진 셔터스톡

얼마 전 어떤 대학에서 진화심리학 특강을 했다. 주로 중년 이상의 전문직 여성으로 이뤄진 대학원생들이었다. 나중에 들은 얘긴데, 학생 A가 결석을 했는데 이유가 놀라웠다. A는 평소 끌리는 주제여서 특강을 꼭 듣고 싶었지만, 다른 학생들이 만장일치로 반대해서 결국 타의에 의해 결석해야 했다. A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한 사실이 알려졌다는 것이다. 문제는 A가 일시적인 격리와 함께 당국에서 검사를 받고 이미 음성 판정을 받았다는 점이다. 그래도 동기들은 A와 함께 수업받는 것을 거부했다. A에게 수업에 나오지 말라고 법에도 없는 일종의 린치(lynch), 즉 사적인 형벌을 가한 셈이다. 코로나19 시대 새로운 집단 따돌림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이런 일은 인간들에게만 일어나는 것일까? 아니다. 일본원숭이는 일본 전역에 서식한다. 위도상 사람을 빼고는 가장 북쪽에 서식하는 영장류다. 대개 30~40마리가 군집 생활을 한다. 길고 굵은 털은 맹추위에 체온 유지를 하는 데 큰 몫을 한다. 일본원숭이는 온천욕을 하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온천욕을 통해 체온 손실도 막고 생존과 번식에도 도움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온천욕은 아무나 할 수 없다. 서열이 높은 원숭이만 입욕이 가능하고, 서열이 낮은 원숭이는 그 새끼들까지 온천에 범접하지 못한다. 이를 어기는 원숭이에겐 온천을 지키는 원숭이들의 집단 린치가 기다린다. 따뜻한 온천 내부 온도와 한겨울 외부와의 기온차를 생각하면 참으로 가혹한 차별이다.

일본 교토대 연구팀은 서열이 높은 암컷 원숭이는 온천에서 목욕을 더 오래 하고 그만큼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도 낮아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서열이 높으면 이점도 많지만, 서열을 지키기 위해 더 공격적이고 에너지 소모량도 더 많아질 수밖에 없는데, 대신 더 오래 온천욕을 함으로써 이를 보상받는다는 것이다. 서열이 낮아 입욕조차 못 하는 원숭이들의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가 높을 것은 자명하다.

몇 년 전 대학생이 된 지인의 아들 B의 중학생 시절 이야기다. 당시 B는 일군의 동급생들로부터 집단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다. B와 B의 부모의 아픈 마음에 감정이입이 되면서, 나는 B를 집단 괴롭힘에서 구하는 일에 적극적으로 개입한 적이 있다.

우리는 사건을 극단으로 몰고 갈 생각은 없었다. 가해 학생들의 재발 불가 약속과 함께 경징계를 받는 선에서 합의해 준 것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B의 상처는 지금까지 B를 괴롭히고 있다. 하지만 당시 가해자 부모들의 반응은 놀라움을 넘어 분노를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가해 학생들은 B에게 명백한 폭력과 성적 수치심까지 유발하는 공격적 행동을 몇 달 동안 지속적으로 해왔다. B의 물건을 빼앗거나, 때리고 조롱하고 성적으로 모욕했다. 근거 없는 소문도 퍼뜨렸다. 다른 애들이 B에게 접근하거나 교류하는 것 자체를 교묘하게 체계적으로 차단하거나 방해했다.

이 모든 사실이 명명백백하게 밝혀지고 가해 학생들이 사실을 시인했다. 하지만 부모들은 그냥 어린 시절에 흔히 있을 수 있는 별일 아니라는 식으로 넘어가려 했다. 자신들의 아이가 아동 범죄자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제 자식의 안위만 중요할 뿐, 피해 학생의 아픔은 안중에 없었다. 가해 학생들의 반성에도 진심이 담겨있지 않았다. 그 부모에 그 자식들이었다.

이런 일을 두고 우리는 ‘왕따’라고 부른다. 왕따는 전문용어로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라고 한다. 심리학자 루이스 코졸리노에 의하면 왕따는 진화사적으로 역사가 오래된 원시적 충동의 일종이다. 일본원숭이의 사례가 이를 방증한다. 왕따는 사회적 동물이 사회적인 지배를 확립하고 유지하기 위해 일어난다. 가해자는 의도적으로 제삼자가 보는 앞에서 자신의 위상을 과시하고, 서열을 지키기 위해, 희생양에게 어떤 공격적 행동을 한다.

왕따는 단순히 가해자와 피해자 두 사람의 문제가 아니다. B처럼 지속적으로 행해진 왕따나 집단 따돌림은 피해자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 왕따를 당한 사람이 겪는 심리적 고통은 신체적 고통이나 진배없는 아픔을 가져다준다.

왕따를 당한 사람들의 대뇌 반응을 조사한 연구가 있다. 놀랍게도 그들이 심리적 고통을 지각하는 부위와 신체적 고통을 지각하는 부위가 같았다. 바꿔 말하면 왕따를 당할 때 사람들이 고통을 느끼는 부위와 면도칼로 팔을 쭉 그어 피가 철철 흐를 때 고통을 느끼는 대뇌 부위가 같다는 말이다.

또 다른 연구에 의하면 왕따 피해로 우울, 불안, 무딘 정서, 수면장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등이 야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증상들은 주의력, 집중력을 떨어뜨리고 기억력을 손상시킨다. 왕따를 당한 피해자는 스트레스 호르몬의 일종인 코르티졸 수준이 높아지면서 단기기억을 담당하는 대뇌 해마의 기능이 손상된다.

루이스 코졸리노는 이를 ‘포식자 스트레스’라고 부른다. 예를 들어 사하라사막에 주로 서식하는 아프리카들개(들개)의 예를 한번 들어보자. 들개도 나름 용맹한 편에 속해서 거친 사막에서 잘 적응해 나가는 편이다. 하지만 천적인 사자나 하이에나를 만나면 사정이 달라진다. 특히 들개가 상처를 입고 무리에서 버려졌다면 치명적이다. 그는 십중팔구 포식자인 사자나 하이에나의 먹잇감이 될 것이다.

상처 입고 무리로부터 버려진 들개의 마음이 어떠할까? 바로 사자 무리 앞에 노출된 다친 들개처럼, 왕따당한 채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무기력하게 절망하고 있는 이들의 마음을 포식자 스트레스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법적으로 보장된 수업권을 거부당하고, 동료들의 왕따로 인해 출석도 못 하는 A. 그는 설혹 용기를 내어 특강을 한 번 들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다음에 그를 기다리고 있을 집단 따돌림의 공포에 질려 숨도 크게 쉬지 못할 것이다. B는 대학생이 된 지금도 PTSD에 시달리며 정신과 진료를 받고 있다. 혹한에 따뜻한 온천을 목전에 두고 후환이 두려워 추위에 떠는 일본원숭이처럼 말이다.

루이스 코졸리노의 말처럼 아무리 사회적 배제가 원시적 충동의 일종이라 해도, 우리 인류는 그 원시적 본능을 제어할 새로운 신경회로를 만들어야 한다. 그것은 사람을 다른 동물과 다르게 구별시키는 전두엽의 대뇌피질을 활성화하는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만물의 영장이 이런 원시적 충동을 제어할 제대로 된 법적, 제도적 장치 하나 못 만들어낸다면 우리가 원숭이보다 나을 게 뭐란 말인가.


▒ 김진국
문화평론가, 고려대 인문예술 과정 주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