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겔라 메르켈(왼쪽)과 올라프 숄츠 전·현직 총리가 12월 8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총리실에서 열린 이취임식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AP연합
앙겔라 메르켈(왼쪽)과 올라프 숄츠 전·현직 총리가 12월 8일(현지시각) 독일 베를린 총리실에서 열린 이취임식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사진 AP연합
윤덕룡 KDI 초빙연구위원 전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윤덕룡 KDI 초빙연구위원 전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비너스 효과(venus effect)’란 모델이 더 매력적이고 호감이 높을 때 이 모델을 모방하면 자신도 비슷한 모습이 될 것으로 기대해 학생들이 더 잘 따르는 경향이 있는 현상을 일컫는다. 사회적 측면에서 ‘비너스 효과’를 설명하는 다른 이론도 있다.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가 그린 ‘거울을 보고 있는 비너스’는 기존 작품들과 달리 비너스의 얼굴은 거울에 작고 흐릿하게 그린 반면, 옷을 벗은 뒷모습을 화폭 중앙에 그렸다. 비너스 자신이 볼 수 없는 나체의 뒷모습을 보고 있는 관람자의 시선을 통해 스스로가 관리하고 보여주고 싶어 하는 모습보다 남들이 보고 있는 모습의 중요성을 부각한 것이다. 정치인들이나 유명 연예인의 숨은 미담이나 사생활 에피소드가 더 감동을 주는 효과를 ‘비너스 효과’로 설명한다. 요즘 대선 후보들이 열심히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것도 이런 이유다.

독일 최초 여성 총리 앙겔라 메르켈이 16년간 집권을 마치고 얼마 전 공식 퇴임했다. 그는 2005년 1%에 불과한 기민당(CDU)과 기사련(CSU) 득표의 우위로 집권을 시작했다. 그러나 통일을 완성한 헬무트 콜 전 총리와 더불어 16년의 최장수 총리 기록을 남기게 됐다. 더구나 그의 퇴임은 국민의 압도적인 지지에도 불구하고 자진 사퇴를 결정했다는 점에서도 새로운 기록이다. 퇴임 전 설문조사에서 독일 국민의 80% 이상이 메르켈 전 총리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메르켈 전 총리는 대내외 정책에서 모두 집권 시기의 성과를 인정받고 있다. 대외적으로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극복, 2010년 유로존 재정위기로 인한 유로존 붕괴의 저지, 2015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공격 중단 유도, 시리아 내전에 따른 난민의 유럽 유입사태 해결 등을 꼽는다. 특히 2015년 난민사태 당시 100만여 명에 달하는 난민을 수용해 독일 정부의 윤리적 수준을 국제 사회에 보임으로, 나치 시대의 부담을 떨쳐내고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독일 국민의 지지율이 높아진 근본 이유는 경제 회복이다. 2010년부터 2020년까지 10년을 독일경제부흥기, ‘황금의 10년’이라 부를 정도다. 메르켈이 총리직을 시작하던 당시 독일의 실업률은 11%를 넘었으나 2020년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발발 전까지 4.5%로 하락했고 2021년에도 5% 내외를 기록하고 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도 2005년 3만2270유로(약 4290만원)에서 2021년 3만8180유로(약 5075만원)로 18.3% 성장세를 기록하고 있다. 이런 정책적 성과가 독일 국민의 메르켈에 대한 강력한 지지 배경이다.

대중이 메르켈에게 붙여준 별명은 ‘무티(Mutti·엄마)’다. 그는 총리가 된 후에도 총리 관저에 살지 않고 이전에 살던 베를린 시내의 월세 아파트에 그대로 살면서 퇴근 후에는 동네 슈퍼에서 장을 보는 평범한 이웃집 여성으로 살았다. 문패에는 자신의 이름이 아닌 남편의 이름이 붙어있다. 정원에서 자신이 먹을 채소를 길렀다. 언제 봐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 비슷한 의상을 입고 굽 낮은 평범한 구두를 신는 것도 독일 국민 모두가 안다. 친근하고 소박한 그의 일상의 모습 때문에 독일 국민은 그를 ‘무티’라고 부른다.

그가 ‘무티’라고 불리는 것은 외형적 생활 때문만은 아니다. 메르켈은 동독에서 목사인 아버지 아래서 자랐다. 그래서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과 신앙적 윤리의식이 누구보다 강하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고려해 자신의 신념을 양보하거나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굽히는 법이 없다. 난민수용 반대 압력에 굴하지 않았고 기후협약에 반대하는 미국과 타협하지 않은 것이 대표 사례다. 이런 그의 삶의 태도가 강인한 ‘엄마’의 모습으로 비친 것이다.

메르켈의 리더십이 ‘무티’ 리더십으로 독일 국민에게 각인된 것은 누구의 연출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거울을 보고 애써 꾸민 것도 아니다. 메르켈이 살아가는 뒷모습을 보면서 온 국민이 마음으로 ‘엄마’라고 부르게 된 것이 그의 정치적 성공을 만든 배경이다. 비너스 효과가 극대화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