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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덕룡 KDI 초빙연구위원 전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윤덕룡
KDI 초빙연구위원 전 한반도평화연구원 원장

2000년대 초반 인도적 지원의 모니터링 요원으로 평양을 방문했을 때 있었던 일이다. 북한 안내원 한 사람이 내게 말을 걸었다. “교수 동무, 북조선의 경제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남조선이 우리보다 더 잘사는 건 알지만 우리는 그게 부럽지 않습니다. 남조선은 개인이 각자 잘살려고 하는 곳이어서 잘사는 사람도 있지만 비참하게 사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압니다. 공화국(북한)은 개인이 부자가 되는 것보다 나라가 잘사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래서 큰 부자도 없지만 그렇게 비참한 사람도 없습니다.” 한국의 빈부 격차를 문제 삼아 자신들의 체제를 옹호하고 선전하기 위한 발언으로 들렸다.

시기와 지역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빈부 격차는 항상 숙제다. 최근 세계화로 시장 규모가 커지면서 경제적 보상의 차이가 양극화하면서 빈부 격차도 심화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코로나19 같은 경제·사회적 위기도 영향을 미쳤다.

빈부 격차 확대의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 개입이 불가피하다. 문제는 시장과 정부 개입 간 적정 균형을 찾는 일이다. 이와 관련해 모범답안으로 인용되는 것이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다. 사회적 시장경제란 ‘사회적으로 책임지는 시장경제’란 뜻이다. 경제 운용은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수행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인간의 이기적 경쟁에 따른 시장경제 결과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경우 이를 수정할 수 있도록 한다. 언뜻 들으면 매우 모호하다. 그래서 시장경제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구성 원칙과 정부 개입이 필요한 규제 원칙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

우선 시장이 사회적으로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하려면 경쟁이 살아 있어야 한다는 점에 주목해 경쟁 질서의 7개 구성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수요와 공급을 조절할 수 있는 가격 체계, 둘째, 안정적인 통화 정책, 셋째, 자유로운 시장 진입 보장, 넷째, 생산 수단의 사적 소유, 다섯째, 생산 수단 소유자의 무한 책임 원칙, 여섯째, 계약의 자유, 일곱째, 경제 정책의 일관성이다. 정부는 이 원칙이 훼손되지 않도록 강력한 공권력으로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다.

현실 경제에서는 이윤 극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경쟁이 저해되거나 개인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다. 그래서 정부가 개입해야 할 규제 원칙 4개도 제시했다. 첫째, 독과점 행태 감시, 둘째, 시장의 결과가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으면 분배를 수정하는 소득 정책, 셋째, 원인 제공자 부담 원칙이 지켜질 수 있는 외부 효과에 대한 관리, 넷째, 희소성을 높이려고 가격이 오르는데 공급을 줄이는 것과 같은 비정상적 공급 행태에 대한 규제다.

독일은 개인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하되 경쟁이 활성화하도록 경제제도에 질서를 주고자 했다. 이런 경제 철학을 ‘질서자유주의’라 한다. 구체적인 원칙에 따라 시장과 정부 개입 간 균형을 모색하는 것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 제작한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수월성(秀越性) 외에 빈부 격차 문제가 드라마를 유행시킨 배경이라는 해석도 있다. 한국을 비롯한 각국에서 정부 개입으로 빈부 격차를 해소하라는 국민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중요한 것은 시장경제 메커니즘과 정부 개입 간 적정 균형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