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신용점수 조회 화면. 사진 박소정 기자
개인 신용점수 조회 화면. 사진 박소정 기자

우리나라에 KCB·NICE라는 국민 신용점수가 있다면, 미국에는 ‘파이코 점수(FICO Score)’가 있다. 파이코 점수의 신뢰도가 최근 시험대에 올랐다. 상환 이력 정보에 초점을 맞춰 산정하는 이 점수가 사회 초년생이나 흑인·히스패닉계 등 금융 소외 계층의 ‘진짜 신용도’를 측정하지 못한다는 문제의식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파이코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새 신용평가모형(CSS·Credit Scoring System)을 적용하려는 움직임이 일었다. 비금융 데이터와 인공지능(AI) 기술이 접목된 CSS를 운영하는 핀테크 업체와 연계해 대출 기회를 넓히는 변화를 보인다.

우리나라 금융권도 적극적으로 CSS 개발 사업에 뛰어들고 있다. 금융 당국이 가계대출 총량 규제를 가하면서도,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는 적극적으로 장려하는 정책적 특수성 탓이다. 대출 시장에서 새로운 성장 동력을 찾아야 하는 은행들에 ‘신용평가 차별화’는 새해 주요 과제가 될 전망이다.


‘낡은 신용평가 타파’는 세계적 추세

미국은 핀테크 업체 주도로 개발한 CSS가 급부상하고 있다. 2020년 나스닥에 상장해 폭발적인 성장을 보이는 업스타트(Upstart)홀딩스가 대표적이다. 업스타트는 신용평가 때 약 1000개 이상의 데이터 정보를 함께 분석한다. 통상 5~8개 정도의 금융 정보를 분석하는 전통 금융사와 비교된다.

업스타트의 CSS에선 개인의 대학·전공 등 교육 수준이나 고용 기록, 생활비, 통신 비용 등이 함께 고려된다. 예를 들어 간호사란 직업을 가진 대출 신청자의 경우, 실직자가 거의 없는 직군이기 때문에 신용도가 유리하게 책정되는 식이다.

업스타트는 이런 신용평가를 기반으로, 뉴저지 금융기관인 크로스리버뱅크(Cross River Bank) 등 30개 이상의 대출 기관에 대출을 중개해주고 있다. 전통 CSS를 적용했을 때보다 27% 더 많은 대출 승인이 이뤄졌고, 차주들이 지불한 평균 이자율은 16%가량 낮아졌다.


생존 문제 된 국내 은행의 CSS 개발 

우리나라 은행들도 CSS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여기에는 우리 금융 당국의 기조도 한몫했다. 은행들은 강화된 가계대출 총량 규제에 따라 과거보다 제한적인 대출을 내주는 현실 속에서 포용금융의 일환으로 중·저신용자 대출 확대도 동시에 주문받고 있다. 

은행들로선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 대출이 가능한 중·저신용자를 적극적으로 발굴해야만 하는 처지에 놓였다. 중·저신용자 대출 승인율을 높이기 위해 CSS를 고도화해야 하는 것이다.

국내 리딩뱅크인 KB국민은행은 올해 역점 사업으로 CSS 개발을 꼽았다. 이재근 신임 국민은행장은 “CSS를 정교화해 7·8등급 고객도 발굴할 수 있느냐가 앞으로 은행 간 성과를 차별화하는 요소가 될 것”이라고 언급했다. KB국민은행은 최근 비금융 정보를 활용하는 대안 신용평가 모델 개발 업체 발굴에 나섰다. 

이색적인 CSS도 출현하는 추세다. 카카오뱅크는 교보생명·문고·증권 등 교보 3사와 업무 제휴를 하고, 도서 구매 이력 같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대안 CSS를 개발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국내 1호 비금융 신용평가(CB)사인 ‘크레파스솔루션’은 스마트폰 충전 주기, 운영체제(OS) 업데이트 주기, 애플리케이션(앱)·인터넷 사용 시간, 메시지 수신 대비 발신 비율 등을 성실성의 척도로 평가해 신용평가에 활용한다. 

이처럼 CSS 개발 경쟁이 본격화한 가운데 신용평가의 ‘편향성’ 등을 고려한 활용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