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까지 1달러짜리(약 1200원) 막걸리만 마실 겁니까? 서양 와인은 100달러, 1000달러 주고도 잘 마시면서, 왜 막걸리는 100달러 하면 안 됩니까?”
해남 땅끝마을에 자리한 해창주조장 오병인 대표는 작년에 내놓은 신제품 해창 18도 막걸리(출고가 11만원) 때문에 롤러코스터(?)를 수없이 탔다. ‘전통을 내세워 터무니없는 비싼 값에 막걸리를 팔고 있다’ ‘10만원이 넘는 막걸리가 페트병이 웬 말이냐’는 비난도 많았지만, ‘세상에, 이렇게 맛있는 막걸리는 처음 맛봤다. 마치 유산균 덩어리를 마시는 것 같다’는 격려도 많이 받았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인스타그램에서 해창 막걸리를 ‘인생 막걸리’라고 추켜세웠고, 신세계가 운영하는 고급 슈퍼마켓에서는 해창 막걸리가 없어서 못 팔 정도라는 얘기도 들렸다.
최근 해남 해창주조장에서 만난 오 대표는 기자를 보자마자 도자기 병을 내놓았다. 그런데 그의 말이 가관이다. 이번에는 110만원짜리 막걸리, ‘해창 아폴로 21도’를 출시한다고 했다. 금 한 돈을 들여 병 앞쪽에 글자(해창)도 새긴다고 했다. 재룟값만 70만원이 넘는다고 하니, 막걸리에 금 글자 새긴 도자기 병이 어울릴까? 납득이 잘 되지 않았다.
그의 말을 더 들어봐야 할 것 같았다. “100만원이 넘는 제품이라서 본인이 마시려고 살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고, 대부분 선물용으로 살 것으로 본다. 금 한 돈이 붙어 있는 도자기 병은 소장 가치도 있을 것이다. 사실 선물용 와인은 100만원 정도면 얘깃거리도 안된다. 하지만 막걸리가 100만원이 넘으면 주목을 받지 않겠나 싶다.” 이쯤 되면 오 대표가 전통주 양조인이기보다는 탁월한 마케터가 아닌가 싶었다.
오 대표의 ‘고가 마케팅’은 ‘한국 최고의 막걸리를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런 그의 자부심 대부분은 술 재료에서 나온다. 그가 만드는 막걸리는 찹쌀 80%, 멥쌀 20%를 쓴다. 해창 막걸리 6도, 9도, 12도, 18도 막걸리, 다 마찬가지다. 찹쌀은 양조장 근처 논에서 수확되는 유기농 찹쌀을 쓴다. 오 대표는 “단맛과 함께 감칠맛도 찹쌀에서 비롯된다”며 “단맛을 극대화하기 위해 물도 최대한 적게 넣는다”고 말했다.
해창 막걸리의 ‘기분 좋은 단맛’ 비결은 하나 더 있다. 해창주조장은 고두밥을 쪄서 식힌 뒤 물, 누룩과 같이 버무려 발효 공정에 들어가기 전에 다른 양조장에서는 하지 않는 공정을 하나 더 한다. 선풍기로 식힌 고두밥을 찬물로 다시 한 번 씻는 과정을 꼭 거친다. 막걸리의 단맛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다. “쌀로 고두밥을 찌면 밥 겉면에 전분 가루가 묻어 있다. 이대로 술을 만들면 다소 텁텁한 맛이 나는데, 이런 텁텁한 맛을 줄이려고 고두밥을 다시 한 번 물로 씻는 과정을 거친다. 밥맛이 없을 때 뜨거운 밥을 찬물에 말아 먹는 이치와 비슷하다. 이건 누구한테서 배운 게 아니고 스스로 터득한 것이다. 어느 다른 양조장에서도 고두밥을 찬물로 다시 씻는다는 얘기는 듣지 못했다.”
해창 막걸리는 기본이 삼양주다. 한 번의 밑술, 두 번의 덧술로 막걸리를 만든다. 해창 6도, 9도, 12도, 15도 막걸리를 이렇게 만든다. 그러나 알코올 도수가 18도 되는 ‘해창 18도’는 좀 다르다. 두 번이 아닌 세 번의 덧술을 한다. 사양주인 셈이다. 덧술을 한 번 더 해서 효모 활동을 최대한 오랫동안 지속시켜 알코올 도수를 더 높인다. 사양주인 해창 18도는 그래서 도수 낮은 해창 막걸리보다 발효 시간이 더 길다. 저온 발효와 숙성에만 두어 달 걸린다. 해창 18도를 제외한 술들은 발효와 숙성에 20일 걸린다. 세 배 차이가 난다.
해창주조장 오 대표의 양조 이력은 그리 길지 않다. 지금의 양조장을 인수해, 막걸리를 내놓기 시작한 것은 2007년 즈음. 그러나 1927년 이곳에 터를 잡은 일본인이 청주를 빚었고 해방 후 2대, 3대 주인(오 대표는 4대 주인)도 막걸리를 빚었으니, 이곳 해창주조장 양조 역사는 192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원래 해창 막걸리를 즐겨 마셨다. 그 인연으로 양조장 대표가 이제 나이가 많아 양조장 운영이 어렵다고 직접 맡아서 해달라고 제안했다. 당시 은퇴 후 인생을 고민하던 때라 덜컥 양조장을 인수했다. 양조 경험이 없는 사람이 정직한 재료(쌀, 누룩, 물만으로 만들고 일체의 감미료를 첨가하지 않는다)로 막걸리를 만들다 보니, 힘든 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해창주조장은 현재 6도, 9도, 12도, 15도, 18도 제품을 만든다. 6도는 식당에서, 15도 제품은 일부 골프장에서만 취급한다. 또 18도는 연말에만 소량 생산한다. 그래서 9도와 12도 제품만 대형마트나 인터넷에서 손쉽게 구입할 수 있다. 그중 가장 많이 팔리는 주력 제품은 해창 12도 막걸리다.
오 대표가 요즘 가장 심혈을 기울이는 제품은 ‘해창 아폴로 21도’다. 아직 출시하지 않은 신제품이다. 그런데 가격이 무려 110만원이란다. 막걸리 한 병에 100만원이 넘다니, 도대체 누가 이걸 사서 마시겠나 싶었다.
해창 아폴로 21도는 도자기 병을 쓴다. ‘11만원 하는 해창 18도는 프리미엄 막걸리 이미지에 어울리지 않게 유리병도 아닌 저렴한 페트병을 쓴다고 욕 꽤나 먹었는데, 그에 대한 반작용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금껏 막걸리를 도자기 병에 담아 출시한 사례는 보지 못했다. 해창 아폴로 21도는 도자기 병을 쓰는 데 그치지 않고 금 한 돈으로 ‘해창’ 글자를 도자기 병에 새길 예정이다. 도자기 병 사용, 24K 금 한 돈으로 글자 새기기 등 패키지 재료비만 70만원이 넘는다.
해창 아폴로 21도 술 재료는 해창의 다른 막걸리와 차이가 없다. 그러나 제조 공정엔 더 정성과 시간을 기울였다. 발효와 숙성을 6개월 이상 오래 해, 맛이 부드럽고, 고유의 향이 나도록 했다. 발효만 두 달 정도 걸린다.
증류식 소주도 곧 나온다. 해창 18도를 증류한 술이다. 35도, 45도, 60도 세 가지 알코올 도수의 소주를 내놓을 작정이다. 소주 이름은 팔만대장경을 본떠 ‘대장경’이라 지었다. 우리나라에 증류주 기술을 전해준 나라가 몽골인데, 몽골의 침략을 불심으로 막기 위해 만든 것이 ‘팔만대장경’ 아닌가. 소주 개발에서도 오 대표의 ‘마케팅 DNA’가 여지없이 발휘될 전망이다. 해창 60도 대장경 소주를 올해 일 년 동안 소주잔 하나와 패키지로 묶어 2320만원에 팔 예정이다. 그냥 소주잔이 아니다. 24K 순금으로 만든다. 그것도 무려 금 50돈이 들어간다. 잔 하나 제작비만 2000만원 남짓 든다. 즉, 금 50돈으로 만든 소주잔 하나를 포함해서 대장경 60도 소주 가격이 2320만원이다. 잔 안쪽에는 계량 단위 금이 음각돼 있어, 바텐더들의 ‘원픽’이 될 것으로 오 대표는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