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샌타바버라캠퍼스(UCSB) 교수인 나카무라 슈지는 2014년 청색 발광다이오드(LED)를 개발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2021년 세상을 떠난 아카사키 이사무 교수와 현 나고야대학 교수인 아마노 히로시가 공동 수상자였다. 수상 당시 나카무라 슈지는 도쿄 지방법원으로부터 청색 LED 발명에 대한 200억엔(약 2000억원) 직무발명 보상 판결을 받아내, 일본과 아시아권에서는 이미 유명인사였다.
그는 2000년 초 미국 UCSB 교수로 임용돼 일본을 떠났는데, 당시 그가 남긴 말이 일본 사회에 충격을 줬다. “나는 일본을 사랑했지만, 일본의 시스템에는 실망했다. (중략) 기술자들이여, 일본을 떠나라!”
나카무라 슈지는 기술 발명자에 대한 기업의 보상, 즉 직무발명 보상제도의 필요성과 보상 기준을 토론할 때 단골로 등장하는 인물이다. 그는 지금까지 200건 이상의 미국 특허와 175건 이상의 일본 특허를 등록했으며, 자기 연구 분야에서 550편 이상의 논문을 출판한 열정적인 연구자다. 그가 1979년 당시 무명의 벤처기업 니치아화학에 입사할 때는 도쿠시마대학에서 전자공학 학사와 석사를 취득한 후였다.
그의 연구 공간은 공장 냄새가 심하게 나는 소나무숲 안의 가건물 오두막이었는데, 연구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열악한 곳이었다. 필요한 장비는 연구원들이 스스로 만들어 썼다. 그나마 회사 설립자이자 사장이었던 오가와 노부오가 나카무라 슈지의 전폭적인 후원자가 되어 연구비와 미국 유학의 기회를 제공했다.
그런 지원에 힘입어 나카무라 슈지는 당시 대기업들도 어려워하던 청색 LED 개발에 도전했다. 당시 업계 연구자들은 셀렌(selen ide) 화합물을 기반으로 청색 LED 개발을 시도하고 있었다. 나카무라 슈지는 아마노 교수와 아카사키 교수의 연구를 이어받아 질화갈륨(GaN) 화합물을 기반으로 실험과 개량을 거듭했다. 그는 동료 교수에게 ‘실험의 신’이라 불릴 정도로 끊임없이 실험하며 길을 찾았다.
결국 그는 청색 LED 상용화에 성공했다. 청색 광선이 나오는 레이저 포인터를 손에 쥐고 있는 그의 사진은 그의 상징이 됐다. 21세기에나 가능하다 여겼던 청색 LED 개발을 1993년에 앞당겨 완료한 것이다. 청색 LED는 기존의 녹색 및 적색 LED와 빛의 삼원색을 구현해 모니터, 스마트폰, 신호등 등 응용 분야가 무궁무진했다.
나카무라 슈지의 발명이 소속 기업의 지속적 후원에 힘입은 것이 아니란 사실이 역설적이다. 그의 든든한 후원자였던 오가와 노부오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것이 변수였다. 그가 LED 부서 책임자로 임명됐을 때 그에게는 변변한 연구장비 하나 없었다. 그는 처음에 적색 LED 재료와 구조를 익히고 전기 반응 장치를 스스로 조립하며 일을 배워 나가야 했다. 심지어 회사는 나카무라 슈지의 연구 방향과 반대로 업무 지시를 해 연구를 방해하곤 했다.
그는 모든 악조건을 극복하고 결국 자신만의 힘으로 청색 LED와 자색 레이저를 개발했다. 그래도 나카무라 슈지는 니치아화학이 그의 연구 결과를 출원해 청색 LED와 자색 레이저 관련 약 80개의 특허를 일본과 미국에 등록하도록 했다. 이들 중 미국 특허 5건과 일본 특허 20건은 원천기술이다. 이는 니치아화학이 청색 LED와 자색 레이저 시장의 기술주도권을 확보했음을 뜻한다. 회사의 1998년 수익은 약 3억8300만달러(약 4638억원) 수준으로 성장했다.
20만원과 과장 승진이 전부였던 과학자에 대한 보상
그런데 회사가 나카무라 슈지에게 했던 보상은 2만엔(약 20만원)과 과장 승진이 전부였다. 실망감과 배신감에 힘들어하던 그를 2000년 초 UCSB가 파격적인 조건으로 교수로 영입했다. 그가 미국으로 떠난 후 니치아화학은 오히려 나카무라 슈지를 상대로 영업비밀 침해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격분한 그는 2004년 도쿄 지방법원에서 회사를 상대로 청색 LED 관련 직무발명 보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회사가 그에게 200억엔(약 2000억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비록 2005년 항소심에서 6억엔(약 60억원)으로 감액됐지만, 1심 판결의 보상금 액수가 충격적이어서 일본과 우리나라, 기타 주변국들에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장기 불황으로 고통받던 일본 경제 부흥을 위해 과학기술자 보호 차원에서 파격적 직무발명 보상이 필요했다는 분석도 있다. 아무튼 이 소송을 계기로 직무발명 보상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여러 나라에서 확산됐다.
우리나라 발명진흥법상 종업원 등의 직무발명에 대해서는 발명자가 권리를 가지는 것, 즉 발명자주의가 원칙이다. 다만 계약이나 근무 규정으로 사용자가 그 권리를 승계하도록 정할 수 있는데, 이 경우 종업원 등은 그 권리 승계의 대가로 정당한 보상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
미국의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은 특허제도가 ‘천재라는 불꽃 위에 이익이라는 기름을 붓는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그렇다면 직무발명 보상은 그 이익이라는 기름이 기업이나 기관이라는 램프를 통해 발명가, 곧 불꽃을 향해 정확히 흘러가도록 하는 제도로 이해할 수 있다. 직무발명 보상제도를 도입한 기업에는 세액 공제, 우수기업 인증제도 등 정부 차원의 다양한 지원 정책이 시행되고 있다. 소득세법상 직무발명 보상금을 근로소득에서 기타소득으로 개정하자는 제안이 있다. 이 또한 연구자들의 발명 의욕을 고취시키는 수단이므로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다.
2016년까지 우리 소득세법상 직무발명 보상금은 기타소득으로서 전액 비과세 대상이었다. 그러나 2017년부터 개정 소득세법은 직무발명 보상금을 근로소득으로 규정하고, 연 500만원까지만 비과세소득으로 인정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세 부담이 크게 가중되어 연구자들의 직무발명 의욕을 저하시킨다는 지적이 계속 있어 왔다. 직무발명 보상금을 예전처럼 기타소득으로 규정하면 500만원 정도로 비과세소득 한도를 두더라도 필요경비율 공제 등을 고려할 때 발명자들의 세 부담을 크게 경감시킬 수 있다.
직무발명 보상제도 도입이 발명자에게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현실적인 도움이 될까? 2014년 KAIST 지식재산대학원의 한 석사 논문은 우수 중소기업들의 직무발명 보상제도 도입 전후의 경쟁력을 비교했다. 그 결과 특허출원 건수, 영업이익, 매출 등 주요 경쟁력 지수가 대폭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 대상이 소수에 그쳤으니 일반화하기는 무리가 있다. 다만 직무발명 보상제도가 현실적으로 중소기업의 여러 경쟁력 지표를 극적으로 개선하는 사례들이 있음을 엿볼 수 있는 흥미로운 연구였다. 직무발명 보상제도 도입이 발명자뿐 아니라 기업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실마리를 제공한 셈이다.